잠에 취해 몽롱한 서아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귀여웠다. 우혁은 그런 자신이 너무 낯설어서 하마터면 자기 뺨을 자기가 칠 뻔했다.
“세 시.”
“몇 시라고요?”
“세 시라고.”
“헉, 출근하는 날인데 벌써 세 시라고요?”
우혁은 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너, 학교 다닐 때 낮잠 자고 나서 다시 학교 간다고 가방 메고 나섰지?”
“그게 무슨 소리…….”
그제야 서아는 지금이 오후 세 시가 아니라 새벽 세 시라는 걸 깨닫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깜짝 놀랐잖아요.”
“놀란 건 나다. 아니 한밤중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잠이 안 와서요.”
서아가 타르트 접시를 우혁 쪽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목에 수건을 두르고 젖은 머리를 한 우혁을 보고 당신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주제에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자다가 목이 말라서 나온 거야.”
“누가 뭐래요? 이거나 먹어 보세요.”
우혁은 손을 뻗어 타르트 하나를 집어 들고 베어 물었다. 바삭한 쿠키가 먼저 씹히고 달콤한 사과조림과 호두가 혀를 감싸 안았다. 새콤하고 달콤한 맛은 새벽 네 시, 텅 빈 그의 위를 자극했다. 순식간에 하나를 모두 먹어 치우고 다시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우혁이 먹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던 서아가 입을 열었다.
“어때요?”
“달다.”
우혁은 두 번째 타르트를 입에 밀어 넣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말했다.
“그것밖에 할 말이 없어요?”
“응.”
입을 앙다문 서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타르트 접시를 들어 올렸다.
“왜 그래?”
“먹지 마요. 이제 보니 이런 디저트를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아닌데 잘 먹는데.”
“그런데 고작 달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
“달으라고 먹는 디저트에 달다고 하는 게 뭐 잘못인가?”
우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지만 서아는 이미 타르트 접시를 들고 싱크대로 향한 뒤였다. 서아가 냉장고에 타르트를 집어넣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우혁은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 턱을 고인 채 그런 서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실은 그냥 단 게 아니라 달콤했다. 그러고 보니 퇴근하는 서아에게서는 항상 달콤한 냄새가 났다. 서아가 만들던 과자에서 묻혀온 그 달콤한 향기에 취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서아가 만든 타르트에서는 그런 맛이 났다.
그걸 다 말해버리고 나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네 꿈을 이뤄주겠다고 큰소리치며 너를 데리고 들어온 내가 다른 마음을 품으면 안 될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밤을 새운 민성훈 기자가 아침 9시 팩트 뉴스 홈페이지에 배우 강우혁과 가로수길 천사 은서아의 데이트 사진이 실린 열애 기사를 올렸다. 지난밤 온라인상에서 가로수길 천사의 실체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며 싸우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11시쯤 강우혁의 소속사 JK401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알아가는 단계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순식간에 강우혁 열애설이 포털 사이트를 점령했다. 일부에서는 오늘 판결이 나는 전직 대통령의 재판을 덮기 위한 정치권의 작업이라며 믿을 수 없어했다.
“서, 서, 서아 씨 이거 무슨 소리야?”
서아가 출근하자 흥분한 알라메종 김 사장이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빠가 강우혁 씨 데뷔작 감독이었습니다. 그게 인연이 돼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럼 지난번에 강우혁 씨가 우리 매장에 왔던 것도 서아 씨 때문이었던 거야?”
서아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네.”
“맙소사. 맙소사.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어제는 서아 씨가 가로수길 천사가 되더니 오늘은 강우혁이 여자 친구라니. 세상에.”
김 사장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쩔 줄을 모르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호들갑을 길게 떨 여력도 없이 알라메종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좌석이 금방 차고 웨이팅 줄이 길어졌다. 줄을 선 사람들은 가로수길 천사에 대해 궁금한 듯 매장을 기웃거렸다.
매장 직원들은 밖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당황해서 사장님을 불렀다. 서아를 붙들고 있던 김 사장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활짝 웃으며 써프리즈 모아(surprise moi)를 외쳤다.
서아 곁으로 다가온 은지는 그런 김 사장의 불어를 흉내 내며 입술을 오므리고 써프리즈 모아를 따라 했다. 서아가 곁눈질을 하며 은지를 바라보자 은지는 가볍게 윙크했다.
“나는 네가 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런 뉴스 사실 하나도 안 이상해.”
은지가 정말 평온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자 서아가 더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나도 놀랍고 이상한데 어떻게 네가 안 이상해?”
“나는 전부터 네가 우리처럼 평범하게 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넌 자기가 오리인 줄 아는 백조 같았으니까.”
“내가 백조라고? 에이!”
서아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하지만 은지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서아의 어깨를 툭 치고 돌아섰다. 은지를 낙천적이고 단순한, 놀기 좋아하는 친구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의외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오리인 줄 아는 백조라고?”
서아는 멍한 표정으로 매장 밖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매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아가 어디 있는지 찾는 눈치였다. 고객들의 니즈를 재빨리 파악한 김 사장은 호들갑스럽게 서아를 불렀다.
“서아 씨, 서아 씨, 설마 그만둘 거 아니지? 그동안 강우혁이랑 사귀면서도 여기 다녔으니까 계속 다닐 거지?”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저 계속 다닙니다.”
서아가 갈아입은 위생복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아우, 벌써 옷을 갈아입고 야단이야. 서아 씨 부탁인데 당분간 매장에서 일하면 안 될까?”
“네? 매장에서요?”
“저 손님들이 서아 씨 보러 오는 거잖아. 그런데 서아 씨가 제과실에 파묻혀 있으면 손님들이 아쉽잖아.”
김 사장은 눈을 반짝이며 서아가 당연히 응할 거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김 사장은 서아가 디저트를 만드는 일에 대해 가지는 애착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서아가 그저 월급을 받기 위해 마카롱의 꼬끄를 만들고 크림을 휘핑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사장님, 제가 말씀드렸는데 잊으신 모양이네요. 저는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을 가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원하는 일은 디저트를 만드는 거지 호객행위가 아닙니다.”
“뭐워? 호객행위? 말이 너무 심하잖아.”
“죄송합니다.”
서아가 허리를 굽히고 재빨리 돌아서 제과실로 향했다. 제과실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대박이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서아는 개의치 않고 크림 만들 재료를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