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혁의 말이 끝나자 다섯 명의 시선이 모두 서아에게 쏠렸다. 서아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움켜쥐고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출근길에 맨발로 비를 맞고 있는 할머니가 계
시기에 도와드리고 경찰에 신고했을 뿐이에요.”
“사진 찍히는 건 모르셨고요?”
민 기자가 제일 먼저 물었다.
서아는 입술을 조금 내밀고 기죽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와중에 누가 저를 찍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우혁이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제 왜 이 아가씨가 우리 집에 있게 된 건지 설명하겠습니다. 은서아 씨는 여러분도 다 아시는 유명 감독인 은장환 피디님의 따님입니다.”
“첫사랑 연가의 은장환 피디님이요?”
민 기자가 묻자 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첫 주연했던 드라마 첫사랑 연가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은서아 양을 만났는데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저희 집에 살면서 일하도록 했습니다.”
“그럼 이분이 입주 가사도우미를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임 팀장의 질문에 우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자 민 기자의 얼굴이 난처하다는 듯 일그러졌다.
“진짜요?”
“네, 진짜입니다.”
“하아, 참……. 이거 누구도 믿을 이야기가 아닌데요.”
“왜요?”
“톱스타와 미모의 여성이 한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미모의 여성은 톱스타의 가사도우미다. 그러니까 믿어 달라.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말이잖아요.”
민 기자의 말에 장 대표도 우혁도 허공을 바라보며 우물쭈물거렸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믿을 사람이 없는 말 맞다. 그럼에도 우혁은 사람들이 왜 진실을 믿지 않겠느냐고 화를 내고 싶었다.
“우선은 서아 씨를 이 집에서 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임 팀장의 말에 서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인가 보다. 그녀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혁이 준 월급도 그녀가 이 집에서 보낸 시간도 죄다 비현실적이었다. 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우혁이 테이블을 쾅 쳤다. 커피가 반쯤 차 있는 잔이 달그락거리며 흔들렸다.
“그건 안 됩니다. 나는 서아 씨한테 우리 집에서 일하고 월급 받아 그 돈으로 파리 유학 갈 수 있게 해 준다고 약속했어요.”
민 기자가 팔짱을 끼고 우혁과 서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럼 서아 씨가 다칠 텐데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강우혁과 같이 사는 가로수길 천사를 가사도우미라고 믿지 않을 겁니다.”
초콜릿 티라미수가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 없다는 듯 연신 티라미수를 먹던 한 변호사가 서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서아 씨 의견 같은데요. 서아 씨가 이 집에 계속 있고 싶은 건지 아니면 떠나고 싶은 건지 말이에요.”
한 변호사는 그 말과 함께 자기가 지금까지 먹어본 티라미수 중에 제일 맛있다며 칭찬을 덧붙였다.
“맞아요. 저희 대책도 서아 씨가 이 집에 남는 것과 떠나는 것에 따라 달라지니까 그것부터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 아닌 서아 씨가 결정해야 하는 게 옳고요.”
장 대표가 처음 입을 열었다. 우혁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런 말을 하는 장 대표를 쏘아보았다. 사람들은 서아의 답을 기다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떠나면 대책이 훨씬 간단하겠지요?”
“그렇습니다. 신인 여배우도 아니니까 그냥 은 피디님 따님으로 알고 지냈다 해명자료 내면 그만입니다.”
서아가 침을 꼴깍 삼키며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이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제발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서아는 눈을 질끈 감고 숨을 몰아쉬며 내뱉듯 말했다.
“그냥 여기 있고 싶습니다.”
우혁의 입에서 갑자기 휴 소리가 나왔다. 그녀가 떠나길 바랐던 사람들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대책 회의를 시작해야겠습니다. 먼저 한 변, 서아 사진을 함부로 올린 사람 초상권 침해로 법적 책임 물을 수 있나요?”
“알다시피 초상권 침해는 형사문제가 아니고 민사 쪽입니다. 그런데 칭찬하느라 올린 사진은 명예를 훼손한 것도 아니고 책임을 묻기가 좀 그렇습니다. 설혹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해도 벌금 삼십이 면 끝입니다.”
“그럼 사진 올린 사람은 그냥 넘어가야 한다 이 말이군.”
“네. 그렇습니다.”
대책 회의가 시작되자 서아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 서아가 연기자 지망생이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색출해서 명예 훼손으로 고발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문제는 그녀와 우혁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였다.
임 팀장은 사실대로 가사도우미라고 설명하자고 했지만 민 기자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했다. 서아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놓인 빈 잔과 접시들을 모아 치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사이 장 대표가 그녀를 찾아왔다.
“사진 보니까 서아 씨 모습이 정말 천사 아닌가 싶더라고요.”
“대표님까지 왜 그러세요. 그러잖아도 속상한데.”
서아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한숨을 쉬었다.
“결과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서 그렇지 오늘 서아 씨의 선행은 천사 맞아요. 그리고 사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더 많고요.”
“고맙습니다.”
서아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자 장 대표는 당치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그녀를 말렸다.
“제가 이 집에 남고 싶어 하는 거 싫으시지요?”
서아가 말간 눈으로 민석을 올려다보았다. 민석은 잠시 숨을 멈추고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우혁을 케어하는 소속사 대표 입장에서 보면 확실하게 서아는 이 집을 떠나야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석은 서아가 남고 싶다고 했을 때 우혁처럼 대놓고 좋아할 수 없었지만 틀림없이 반가웠다.
“아니요.”
“정말요?”
서아가 확인하듯 묻자 민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아 씨가 떠난다고 할까 봐 살짝 겁을 집어먹었어요.”
“와, 다행이다.”
서아가 송곳니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었다. 물기가 어린 눈을 반짝이며 웃는 모습을 보자 민석의 가슴 언저리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민석이 엉겁결에 손을 뻗자 서아가 재빨리 손바닥을 펴서 짝 소리가 나게 부딪쳤다.
손바닥 부딪치는 소리가 민석의 몸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때 거실에서 우혁이 커다란 목소리로 서아를 불렀다.
“은서아! 이리 와서 내 말 좀 들어봐.”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거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