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추락한 천사

by 은예진

회원이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강우혁과 가로수길 천사 이야기가 게시판을 덮었다. 서아의 사진이 한나절 동안 온라인을 휩쓸고 나자 여기저기서 이 여자가 강우혁과 같이 다니는 걸 본 적 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올라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주로 마트에서 봤다, 백화점에서 봤다는 글부터 가로수길에서 봤다는 글도 있었다. 서아의 입에서 ‘맙소사’라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서아는 맨발의 할머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뿐인데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우혁은 어떤 전화도 받지 말고 아니 핸드폰 전원을 꺼버리고 꼼짝하지 말고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서아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우혁의 이름을 검색했다.


우혁이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채 공항을 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댓글에는 가로수길 천사가 강우혁 소속사 신인 연기자인데 관심 얻으려고 쇼를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쓰여 있었다.


오후 내내 찬양 일색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서아를 헐뜯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한 적 없는데 자기들이 관심을 가지더니 제멋대로 서아를 유명세에 미친 연기자 지망생으로 만들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서아의 이가 저절로 딱딱 소리가 나게 부딪쳤다. 아무리 진정하려 애를 써도 진정이 되지 않아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철커덕 소리가 나며 현관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우혁이었다.


경직된 우혁의 얼굴을 보자 서아는 그 자리에서 땅으로 꺼지든지 하늘로 솟구쳐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잖아도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우혁은 잡아먹을 것처럼 사나운 표정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야, 은서아!”


우혁의 뒤로 장 대표와 함께 낯선 남자 두 명과 전문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지적인 외모의 젊은 여자가 따라 들어왔다.


서아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덜덜 떨리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우혁을 바라보았다.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떨고 있어?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네?”


서아는 자기가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넌 좋은 일을 한 가로수길 천사 맞아.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겁에 질려 떨고 있어?”

“그래도 강우혁 씨가 저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리게 됐잖아요.”


우혁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모두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은 걸 참느라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그게 왜 너 때문이야? 내가 스타가 아니었으면 너는 그냥 가로수길 천사로 끝날 일인데 내가 스타라 이런 일

이 생긴 거잖아. 넌 하여간 그 사고방식부터 뜯어고쳐야 해!”


우혁은 서아의 이마를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치더니 뒤따라온 사람들을 향해 손짓했다.


“어서 들어와 앉아요. 대응은 빨리할수록 유리하니 어서 시작합시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이 각자 노트북을 켜며 어수선하게 자리를 잡았다. 서아가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자 장 대표가 재빨리 그녀를 데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여자분은 저희 회사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변호사고 젊은 친구는 연예계 전문 매체 기자입니다. 그리고 한 명은 저희 회사 직원이고요. 잠시 뒤에 인사가 있을 거지만 미리 제가 알려드리는 겁니다. 뭐 좀 내갈 게 있을까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듯 눈만 깜박이고 있던 서아가 갑자기 냉동실을 열어 비스퀴가 들어 있는 틀을 꺼냈다.


“마침 제가 화보 촬영 끝난 기념으로 초콜릿 티라미수를 준비해둔 게 있거든요. 이거 제가 해서 내갈게요.”

“그럼 저는 커피를 내려야겠네요. 우혁이처럼 핸드드립은 못하니까 그냥 간편하게 캡슐로 내려야겠습니다.”


민석이 커피 캡슐을 꺼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서아는 틀에 달라붙은 비스퀴(biscuit)에 도치로 열을 살짝 가해 꺼내놓았다. 크렘 앙글레즈(creme anglaise: 소스 크림)에 젤라틴을 넣고 다크 초콜릿 커버춰(chocolate couverture: 카카오 함량이 높은 고급 초콜릿)에 깔루아(kahlua)를 넣어 섞었다. 생크림을 넣자 초콜릿 가나슈(ganache)가 부드러운 갈색을 띤다. 비스퀴 안에 가나슈를 듬뿍 넣어 올리고 마카롱과 초콜릿으로 장식해서 카카오 가루를 뿌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민석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아의 빠른 손놀림을 바라본다.


“대박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만들어요?”


서아는 초콜릿 티라미수를 만드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과정에 몰두해 있었다. 민석이 감탄하자 그제야 정신이 들어 현실로 돌아왔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민석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서아의 어깨를 툭툭 치고 커피를 든 채 앞장섰다. 테이블에 놓인 초콜릿 티라미수를 본 변호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서아는 커피와 함께 초콜릿 티라미수를 나누어 각자의 앞에 놓아주었다.


다들 말없이 커피를 마시고 티라미수를 맛보더니 저절로 흐음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자, 우선 인사부터 해야겠네요. 여기 이 달콤한 티라미수를 내온 여자분이 오늘 포털을 휩쓴 가로수길 천사 은서아 씨입니다.”


변호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청하의 파트너 변호사 한가영이라고 합니다.”


서아는 조심스럽게 가영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은서아라고 합니다.”

“사진보다 훨씬 더 예쁘시네요. 사람들이 연기 지망생이라고 오해할만하네요.”

“아니에요.”


서아가 황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고개까지 흔들었다.


“저는 팩트 뉴스 기자 민성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JK401의 팀장 임종우라고 합니다.”

“이제 자기소개가 끝났으니 대책 회의를 시작해봅시다. 우선 오늘의 주인공 은서아 씨한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정확하게 들어봅시다.”

이전 23화24. 가로수길  천사강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