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는 고향이다. 대학까지 청주에서 나왔고 서른 두어 살까지 살았으며 동생 부부와 부모님이 그곳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청주 갈 일은 숱하게 있음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 가보지 못했다. 청주는 가족 모임을 하러 가는 곳이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곳이지만 미술관을 가는 곳은 아니었다. 지난 주말 치매 때문에 목욕탕에 혼자 다니지 못하는 엄마를 모시고 세신을 한 뒤 짬을 내서 국립 현대 미술관의 <수채: 水彩 물을 그리다> 전을 다녀왔다.
청주에는 KT&G의 전신인 연초제조창이 있었다. 경기도로 이사 와서 궁금하게 여긴 것이 여기는 담배 농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청주 인근의 음성이나 진천에는 담배 농사를 많이 지어서 음성에 사시던 할머니는 겨울마다 담배 조리를 하러 다녔는데 그게 부업으로 꽤 괜찮았던 일로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앞집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의 엄마가 연초제조창을 다녔다. 엄마는 직장에 다니고 아빠가 전업주부였는데 살림을 반들반들하게 잘하고 아이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어서 다들 공부를 잘했다. 그 친구는 우리 아빠가 오늘 고추장 담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었다. 동생은 당시를 기억하며 우리 동네에는 레즈비언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집도 있었고 전업주부 아빠도 있었는데 다들 그러려니 한 게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7, 80년대가 타인의 삶에 더 너그러웠던 때가 아닌가 싶다.
청주시에서는 그 연초제조창이 이전하고 남은 엄청나게 넓은 대지와 공장을 이용해서 문화제조창이라는 첨단문화산업단지를 조성했다. 그곳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 공예관을 비롯해서 쇼핑센터와 공연장, 카페까지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와 있다. 청주에 가면 일단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야 하다 보니 집에서 차로 오 분 거리인 문화제조창을 가볼 엄두도 내보지 않았다. 내가 미술관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으면 아마도 계속해서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실제 국립현대미술관을 관람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쇼핑센터 입구에서 향수와 방향제 시향 행사가 있었다. 거기서 만다린 계열의 향수를 손목에 뿌리고 돌아선 순간 나는 갑자기 내가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최근에 써본 적이 없는 만다린 향수는 주변 공기를 아니 나를 바꿔놓는다. 향수의 힘은 실로 놀라워서 나는 영화 속의 인물처럼 홀로 도도하게 걸어 미술관에 들어가는 여주인공이 된다. 현실과 상상은 다르지만 상관없다. 미술관 입구에는 거울이 없고 나는 잠시 투명한 수채화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다. 내 꿈을 깨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채화의 특징은 빛이 비쳐 반사되는 물의 반짝임처럼 투명하고 빛나는 순간이 작품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투명과 투명이 만나 색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고, 순간의 시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으며, 자연의 인상에 대한 섬세한 민감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수채화 99점을 소개합니다.’
미술관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큐레이터에게는 그림에 대한 안목과 함께 글쓰기의 자질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미술관에 반복적으로 다닐 수 없으므로 그림들은 나에게 공연장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순간적이다. 실제로는 3월21일부터 9월7일까지 전시되지만 내게 허락된 것은 오늘 하루뿐이니 이 아름다운 수채화들은 음악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그걸 붙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전시 안내 책자다. 잡을 수 없는 그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현재성의 한계를 안내 책자를 읽으며 극복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큐레이터들은 잡지에 글을 쓰는 에디터들의 보그 병신체를 쓰지 않고 대단히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설명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채: 水彩 물을 그리다’ 전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 초보자는 이제 미술관 전시의 방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양평군립미술관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는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1부는 ‘색의 발현’으로 최초로 수채화가 도입되면서 직접 보고 그리는 사생 중심의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환상적 서사’라는 제목으로 일률적 교육에 묻혀 독창성을 잃어버린 수채화의 한계를 깨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 비해 조금 더 추상화되고 강렬해진다. 그리고 3부에서는 ‘실험적 추상’으로 1970년대 중반 등장한 단색화 경향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전형성에서 시작해 그 전형성이 만든 관습을 깨고 좀 더 새로운 시도로 나아가는 서사를 보여주는 것이 소설이 발단 전개 위기를 거쳐 절정과 결말로 나아가는 구성과 같은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채화는 뭐니 뭐니 해도 이중섭 아닌가. 그가 동양화의 몰골법을 수채화의 농담으로 적용해 그린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한다. 그 간결한 천진함은 화가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러한 성향 때문에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야 했을지 느껴진다. 이중섭은 붓질을 통해 삶을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내며 존재 자체로 그림이 되었다. 그의 그림이 가진 아우라는 결코 다른 사람이 카피할 수 없는 이중섭의 것이다. 미술품의 가치는 소유자들의 이력을 통해서 형성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걸 사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명품이 단순히 제작비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복잡한 이면이 있는 것처럼 그러한 가치 형성도 비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삶과 그림이 분리될 수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2부에서 마주한 김명숙의 무제 시리즈는 무시무시한 그림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그 짙은 어둠을 생각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나가서 한국 공예관에 있는 개인전 그림들을 보았다. 개인전에는 팬시한 그림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거실에 걸어 놓으면 기분 좋을 파란 하늘과 푸른 들판, 연인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나는 계속 김명숙의 무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집에는 절대 걸 수 없고 회사 로비에도 관공서나 어떤 시설에도 걸기에 부담스러워 판매될 것 같지 않은 그림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자살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가서 본 자신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시지포스의 공부였던 제목이 무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무리 돌을 올려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지포스의 허무는 화가를 어디까지 끌고 갔던 것일까?
3부에서 이제 나는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인식해간다. 나는 추상적인 그림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형태의 그림을 좋아한다. 곽인식의 무제가 그런 그림이었다. 166X100cm 캔버스를 가득 채운 농담을 달리한 푸른색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어딘가 익숙하다. 그렇다 이 타원형의 점들은 한강의 ‘노랑무늬영원’의 양장본 표지였다.
노랑은 태양입니다. 아침이나 어스름 저녁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태양이에요. 신비도 그윽함도 벗어던져버린, 가장 생생한 빛의 입자들로 이뤄진, 가장 가벼운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보려면 대낮 안에 있어야지요. 그것을 겪으려면. 그것을 견디려면, 그것으로 들어 올려지려면…… 그것이, 되려면 말입니다.”
「노랑무늬영원」에서
아직 팔목 안쪽에서는 만다린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있지만 나는 12시를 넘긴 신데렐라처럼 꿈에서 깰 시간이다. 강풍이 불고 비가 오는데 집은 멀다. 엄마를 맡겨놓고 외출했던 아버지가 늦게 돌아오시는 바람에 예상보다 지체됐다. 목욕을 다녀온 뒤 엄마를 어린아이처럼 식탁에 앉혀놓고 김밥을 싸면서 물었다.
“엄마, 네 명 중에 키우면서 제일 속 썩인 자식이 누구야?”
나의 질문을 이해 못 하는 엄마는 당신이 자식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예뻤는지만 말씀하신다.
“나는 지금도 누워서 너희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보고 싶어 해.”
김밥을 마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