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서관으로
수전 매그새먼, 아이비 로스 지음
매번 다른 시의 미술관을 찾아다닐 수 없으니 쉬는 타임에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서관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신간을 읽는 방법은 ‘희망도서 신청’이 있다. 앱을 통해 희망도서 신청을 넣어 놓았더니 2주 정도 걸려 책이 들어왔다는 문자를 받았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는 없으나 관내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은 ‘상호대차신청’을 하면 되고 내가 오늘 빌린 책처럼 4월 18일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면 희망도서를 신청하면 된다. 대출 중인 책은 예약을 걸어 놓아야 하는데 베스트셀러인 경우에는 예약이 많아서 순번을 기다리기 어렵다. 아쉽지만 베스트셀러는 도서관 이용이 쉽지 않다.
시립 미술관 탐방을 시작할 즈음 우연히 유튜브 채널에서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책 소개 프로그램을 봤다. 이 책은 미술관과 미술관 사이에서 읽을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희망도서 신청을 해놨다. 페이지 수가 365페이지에 달하고 책값도 이만이천 원이나 하는 제법 묵직한 책이다.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신선한 내용이어서 막힘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수전 매그새먼은 존스홉킨스대학의 뇌과학자이고 아이비 로스는 구글 디자인 아티스트다. 뇌과학자와 디자인 아티스트의 조합이라니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지 대략 짐작되었다. 예술이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적으로 파고들 것이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제목에는 미술관을 등장시켰지만 실제로 이 책은 미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의 효능에 대해 골고루 다루고 있다.
정조가 수원 화성을 지을 당시 지나치게 미학적 측면에 신경을 쓰자 신하 한 명이 굳이 그렇게까지 아름다움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그러자 정조는 아름다움이 적을 물리친다는 답을 했다. 아름다움이 적을 물리친다는 것은 아마도 성벽이 수비에 쉽도록 곡선형으로 경사진 지형에 맞추어져 있으며 내구성이 뛰어난 화강암과 벽돌을 사용해 건축한 것이 아름다운 외관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조의 아름다운 것이 적을 물리친다는 말을 참 좋아했다. 실제로 우리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것은 강하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은 우리 삶을 구한다.
예술이 삶을 구한다는 이야기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소재가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일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아이들의 삶을 구원한 이야기는 볼 때마다 감동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지휘자가 된 구스타프 두다멜이 카네기 홀에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연주를 선보인 이야기는 예술 교육의 효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정규교육과정에서 우리가 미술과 음악, 체육 등 예체능 교육을 받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기본 소양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학교에서 받는 예술 교육은 인지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연극을 하는 데 있어서 가치 판단이 들어가면 그때무터 예술은 그저 기술의 연마에 불과하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배우면 곧 그걸 제대로 배웠는지 테스트에 들어간다. 예체능에 소질이 없던 나 같은 사람이 학창 시절 가장 스트레스받는 건 피리를 불고 노래를 부르며 뜀틀을 넘는 일이었다. 매번 나는 반에서 제일 못하는 축에 속하는 아이였고 실기 테스트를 받아야 할 때면 아침에 눈을 뜨고 학교에 가는 게 지옥처럼 느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도 싫었던 예체능을 지금은 돈을 내며 하고 싶다. 수영을 배우지 못한 것이 제일 아쉽고 오일 파스텔을 사고 싶어 장바구니에 넣어 놓았으며 쉬워 운 악기라고 가끔 칼림바 건반을 튕긴다. 그리고 미술관에 다니며 그림을 본다. 그걸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왜 그러는 걸까?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창작하는 과정에 우리 뇌는 신경 화학물질인 엔드로핀과 세로토닌을 분비한다. 미학적 사고방식을 갖춘다는 건 곧 자기 삶에 매 순간 존재함을 뜻한다. 살아 있는 느낌, 현실에 발붙인 느낌, 연결된 느낌이 들게 하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느끼고 감지하는 것이다. 판단과 개인적 비판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부위들이 잠잠해지고 좀 더 관대하고 조망하는 관점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예술을 적극적으로 창작하고 감상하는 것이 명상적 행위라고 이 책의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이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있어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생각할 때 나는 두 개의 영화를 떠올린다.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과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이다. 영화 ‘타인의 삶’은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가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청하며 그의 예술에 동화되어 인간성을 가지게 되는 내용이다. 외롭고 잔혹한 인물인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삶을 몰래 훔쳐 들으며 예술이라는 것에 눈을 뜨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예술의 효용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책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그러니까 비즐러가 어떻게 그렇게 변화할 수 있었는가를 뇌과학적 측면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영화 ‘패터슨’은 버스 기사를 하는 젊은 남자 패터슨의 일상을 그린 영화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사는 패터슨의 일상에 남다른 것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詩’다.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에 있지 않고 소소한 것들에 있다고 말하는 영화에서 패터슨은 그의 곁은 스쳐 가는 바람 같은 일들을 잡아 시로 머무르게 한다. 냉혈한 비즐러에게도 지루한 패터슨에게도 예술이 그들의 삶을 빛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저자는 인간은 생산적인 일꾼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감각 세계를 충분히 경험하며 살고자 하는 욕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취미와 특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걸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취미는 꼭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좋아하면 그만인 것이니 말이다.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일들이 결국 우리 수명을 늘리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극장이나 미술관에 가는 등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기 사망 확률이 31%나 낮다고 한다. 일 년에 다만 한두 번이라도 예술을 삶에 들이면 사망 위험을 14%나 낮출 수 있다. 예술이 문자 그대로 생명을 연장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취미 생활을 하며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야 한다.
우리가 꼭 어떤 성취를 내야 존재의 가치 증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듯 예술을 향유하는 일도 그렇다. 굳이 이유를 가져다 붙일 필요 없이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예술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선입견을 걷어 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바쁜 일상에 잠시 쉼이 필요한 순간, 멀리 여행을 가지 못한다면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공연이나 전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뇌에는 항상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예술은 그걸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