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히메현 미술관

by 은예진
Screenshot_20250609_084925_Papago.jpg

늦된 나는 오십이 넘어서 운전을 시작했고 지난 1월에 처음 해외에 나가봤다. 그 해외가 제일 가까운 일본 가고시마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지만 늦었다고 못할 건 또 아니다. 첫 여행은 동생을 따라갔지만 두 번 째는 내 힘으로 하겠다며 도전했다. 마츠야마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여행 스케줄을 짰다. 교통편과 트램 타는 방향, 번호를 자세하게 확인했다. 비짓재팬웹을 작성하고 라운지 무료 사용을 위한 카드 사용한도를 채웠으며 주차대행 서비스를 신청했다. 출발 전날 비행기 좌석을 잡으면서 여권 내용을 다시 입력할 때 긴장감이 몰려왔다. 나는 사실 일본보다 인천공항의 광활함이 더 무서웠다. 인천공항 앱을 다운로드하여 출발 비행기의 탑승구까지 확인되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말이다.


언젠가 돌아가신 최인호 작가가 자기는 도쿄의 악명 높은 지하철은 잘 타는데 우리나라 지하철은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었다. 손바닥만 한 마츠야마는 무섭지 않았는데 인천공항은 무서웠던 나는 다행히도 모든 과정을 착오나 실수 없이 잘 수행했다. 돌아오는 날 오전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은 에히메현 미술관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도슨트 양성 과정에 들어간 동생과 둘이 떠난 여행이니 미술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여정이었다.


마츠야마 오카이도 로이넷 호텔에서 트램 타고 마츠야마 시청을 지나면 다음 정거장이 미나미 호리바타역이다. 그 역에서 내리면 바로 에히메현 미술관 화살표가 보인다. 미술관이 있는 곳은 대전의 둔산대공원처럼 NHK를 비롯한 문화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멀리 보이는 마츠야마 성을 등진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은 선선했다. 이박 삼일 내내 최고 온도는 21도였으며 하늘과 바람이 쾌적했다.


1인당 1,700엔을 내고 들어간 전시는 알폰소 무샤, 우리 나라에서는 알폰소 무하라고 부르기 때문에 나는 무하라는 이름을 쓰겠다. 전시실에 들어가면 알폰소 무하의 비슷한 그림들이 펼쳐지고 사전 지식 없이 봐도 그의 그림은 상업용이었다. 미리 알폰소 무하에 대해 공부하고 갔어야 하는데 준비 없이 간 우리는 그저 무하의 작업양에 감탄했다. 포스터와 담배 광고, 달력, 유가증권 등 수도 없이 많은 상업 일러스트를 그린 무하의 노동량은 엄청났을 것으로 보였다.


일견 나는 그의 상업용 포스터에 영혼이 없다고 느꼈다.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게 17세기까지 서양미술은 이탈리아의 길드 안에서 생산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혼이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대작들은 모두 의뢰를 받아 제작한 수공예품이었다. 그런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는 영혼이 없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는 영혼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나의 무식이었다.


1860년 체코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하던 무하는 쟁쟁한 화가들 틈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우연히 친구의 부탁으로 인쇄소에서 교정을 보다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몬다의 포스터를 의뢰받았다. 재능 있는 사람에게 운이 왔을 때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알폰소 무하는 등신대 크기의 대형 포스터를 그렸고 그 포스터는 파리 시민을 열광시켰다.


20250605_094841.jpg

이 아름다운 포스터를 시작으로 알폰소 무하는 일약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상업 미술가가 되었고 엄청난 부를 일구었다. 전시된 작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지 감탄이 절로 나오고 존경심이 생긴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 이외에는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구나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작업량을 보여준다. 그 정도까지만 알고 무하의 전시를 끝냈다.


에히메현 미술관에서는 알폰소 무하전 이외에도 아제치 우메타로의 유니크한 산 사나이 시리즈와 에히메현 출신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 모두 보기 벅찰 만큼 많은 그림들이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항상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아직 공항까지 가는 버스 시간에 여유가 있었지만 우리는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미술관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와 도슨트계의 스타라는 정우철 씨가 진행하는 알폰소 무하에 대해 설명하는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는 우리가 준비 없이 전시회에 가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알폰소 무하는 50살까지 파리에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작가로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이런 식으로 소진하는 것에 갈증을 느낀 그는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체코로 돌아간다.


무하는 체코에 돌아가 자신의 뿌리인 슬라브 서사시를 그리기 시작한다. 6X8 미터짜리 대작을 일 년에 한 편씩 20편을 그렸으며 우표, 지폐, 국가 휘장등을 새롭게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를 위해 헌정한다. 파리에서 충분히 호화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간 남은 생은 자신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쳤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오래가지 못하고 독일에 점령당했으며 알폰소 무하는 제일 먼저 나치에 체포된다. 고문 끝에 풀려났지만 후유증으로 곧 사망하고 만다. 다행히도 슬라브 서사시는 나치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숨겨두어 불태워지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알폰소 무하의 장례식에는 나치의 집회 금지를 뚫고 십만 명의 군중이 몰려들어 민족 영웅의 죽음을 추모했다. 지금 '슬라브 서사시'는 체코의 보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알폰소 무하의 파리 시절까지만 보고 와서 그를 상업 화가로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야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식상한 말은 식상해서 더욱 진리다. 그렇게 다시 본 무하의 그림들에는 영혼이 차고 넘쳤다.


Screenshot_20250609_085246_Papago.jpg


이전 06화이응노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