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미술관

by 은예진


대전을 이야기하면 성심당과 함께 이응노 미술관이 자주 거론되었다. 작년 12월에 왔다가 휴관 중이어서 아쉽게 발길을 돌렸던 미술관. 규모가 큰 대전 시립미술관 옆에 오도카니 앉아있지만 실제로는 존재감이 더 있는 미술관이다. 시립이라고 붙어있지 않지만 이응노 마술관 또한 대전시에서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을 출범시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입장료는 단돈 천 원이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미술관 건물은 흡사 안도 다다오를 연상시키지만 프랑스의 건축가 로랑 보두엥의 작품이다. 로랑 보두엥은 이응노 화백의 작품 '수壽'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으로 상징화했다. '壽'는 목숨 수壽 글자를 한지에 먹을 이용해 콜라주한 작품으로 구성적 문자 추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비스듬히 기울어진 좁은 통로를 통해 아래층으로 걸어가도록 되어 있는 전시의 진행 방향이 떠오른다. 그 비스듬한 길에서 옆을 보면 중정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어서 더 안도 다다오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위의 '수'를 보니 아래 점이 그 공간 아니었나 싶다. 5월에는 눈에 들어오는 나무며 풀이며 푸른색을 띤 것들은 모두 작품인 양 감탄하게 되는 계절이라 미술관 안팎으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2025년 1월 17일부터 12월 25일까지 이어지는 이응노 상설 전의 주제는 '이응노, 문자로 엮은 추상' 전이다. 전시는 시대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상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응노 화백이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그렸던 대나무가 보인다.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배우던 이응노 화백은 19세가 되던 해 서울로 올라가 묵죽의 대가 해강 김규진에게 문인화를 배웠다. 그 시절 그림들을 뒤로하고 나아가다 보면 1950년대 반추상 작품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응노 화백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사생( ), 작가의 주관적인 표현이 강조된 것은 사의( )라고 표현했다. 반추상 시기 그는 자신의 작품을 사생과 사의가 일치된 것이며 사생을 간략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1960년대 사의적 추상의 시기로 들어간다. 이 시기는 이응노 화백은 문자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한자는 자연물의 형상에서 탄생한 글자이고 그 글자를 이용해 다시 형상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은 이응노 화백 고유의 추상이었다.


1970년대 이제 서예적 추상의 세계에서 그의 그림은 한층 더 깊숙이 들어가며 문자는 의미를 잊고 선과 리듬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회화가 된다. 그리고 드디어 군상이 등장한다. 나는 군상 앞에서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은 거거익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만 거거익선이 아니라 그림도 클수록 규모에서 주는 압도감이 있다. 적당한 크기의 그림을 볼 때면 저런 그림이 우리 집 거실에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큰 그림 앞에서는 그런 생각 없이 보게 된다. 군상보다 큰 작품은 많이 봤지만 군상에서 받는 앞도감은 흔하지 않다. 어쩌면 군상 속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의 모습이 단독자로 선 관람자인 나를 압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타계할 때까지 이응노 화백은 계속해서 군상 시리즈를 그렸다. 한 번의 붓놀림으로 한 사람이 되는 일격의 운필이 무한히 반복되며 대형 작품을 가득 채운다.

군상


이들이 내는 무언의 속삭임이 전시관 허공을 뱅뱅 돌며 보는 사람을 현기증 나게 만든다. 나는 사람 많으면 맛있는 식당도 싫다고 손사래 치는 사람인데 어째서 이 많은 사람들 앞에 멈춰 서 있는지 모르겠다. 텅 빈 공간을 꽉 채워줄 만한 아우라를 내뿜는 그림이다.



이 층에서는 '고독 ; 문이 닫히고, 또 다른 문이 열릴 때'가 전시 중이다. 2025. 4. 22부터 6.1까지 김명주, 김병진, 김윤경숙, 박운화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김명주의 작품은 격정적인 색의 혼합에 당혹스러움을 주었고 김병진의 그림은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고 있었다. 김윤경숙의 설치 작품은 개인의 기억을 객관적 사건에 투영했다는 설명과 함께 전시된 빨간색의 작품들에서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박운화의 작품은 소소한 일상을 너무 예쁘게 보여준다. 미술 작품에서 예쁨은 무언가 고민 없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치 우리가 예쁜 여자에게 백치미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선입견 아닐까 싶었다. 예쁜 게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폄훼하게 되는 것은 허세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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