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포도호텔 갤러리에서 쿠사마 야요이 관련 전시가 있었다는 포스터를 보고 무심코 지나쳤다. 나는 당시에 쿠사마 야요이가 누구인 줄 몰랐다. 동생들은 그 유명한 호박을 모르느냐고 했지만 나는 그녀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게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을 알게 되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땡땡이 호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호박이 드디어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스레드에서 미술 관련 영화를 추천받았다. 러빙 빈센트, 미스터 터너, 쿠사마 야요이 ; 무한의 세계, 프리다, 폴락, 까미유 클로델 등이었다. 나는 이중 가장 최신작인 '쿠사마 야요이 ; 무한의 세계'를 골라잡았다. 이왕이면 현대미술과 관련된 작가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이기 때문에 극적인 사건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쿠사마의 개인적 불행을 과장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쿠사마가 쓴 시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파도처럼 휩쓸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긴긴 세월 잘도 버텨왔구나
죽겠다는 마음을 먹고
목에 칼을 댄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섰다
내가 걸어온 기나긴 길
생명의 빛을 향한 열망이었던 걸까
그리고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고 싶다
죽고 싶다는 푸념은 그만큼 살고 싶다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다. 6월 들어서며 지난 일 년간 내가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시간들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다시 어지럽고 항생제를 밥먹듯이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 푸념을 길고 길게 썼다가 서랍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벽돌 틈에 지난 사랑을 묻듯 나는 힘겨운 나날에 대한 하소연을 덮었다. 그런 날들 가운데 만난 쿠사마 야요이의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고 싶다는 말이 내 마음을 울린다. 목에 칼을 댈 만큼 죽고 싶었던 마음이 실은 살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1929년생인 쿠사마 야요이는 사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데릴사위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의 집은 언제나 냉기가 감돌았다. 아버지의 불륜을 직접 목격한 트라우마로 섹스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그녀는 남근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재능을 보였지만 전쟁중에 학교를 다닌 쿠사마는 군수물품을 만들어야 했고 어머니는 그녀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쿠사마는 그림을 그렸고 전시를 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그림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외로운 쿠사마의 마음을 흔든 것은 미국 여성작가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이었다. 쿠사마는 그녀에게 편지와 함께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낸다. 조지아 오키프의 긍정적인 답장을 받은 쿠사마는 미국으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
일본 내에서 외화 반출이 금지되었던 시절 쿠사마 아요이는 자기가 그린 그림 이천점을 불태우고 기모노에 달러를 숨겨 미국으로 떠난다. 이 용감한 여인은 그렇게 뉴욕에 자리를 잡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 마쓰모토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태평양을 마주하고 파도에서 '무한의 그물'을 떠올린 쿠사마는 이후로 대담하고 적극적인 추상작품의 시대를 열었다.
뉴욕에서 쿠사마 야요이는 남성 백인 위주의 미술계에서 여성이자 아시안으로 버텨내기 위해 미친 듯이 투쟁하며 자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유명 작가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기도 하고, 온갖 해프닝을 일삼으며 자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기 어려웠다. 당시에 투신을 하기도 했으며 강박 신경증을 진단받았다.
예술의 미래는 새로움이라는 생각에 나체 페스티벌을 열어 반전 시위를 했고 그런 과정에 추문의 아이콘이 되는 바람에 그녀가 졸업한 마쓰모토의 고등학교 졸업생 앨범에서 삭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닉슨이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 사회는 더욱 보수적이 되었고 환멸과 우울에 빠진 쿠사마는 일본으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7,80년대 그녀의 삶은 환각, 우울, 자살시도로 점철되어 작품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미술작업 치료가 가능한 정신 병원에 입원하면서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1989년 CICA에서 회고전이 열리면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이후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본 대표작가로 개인전을 하면서 보다 밝은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제어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살면서 그림을 그린 그녀는 70세가 넘어서야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그녀의 호박과 무한 거울의 방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쿠사마 아요이의 삶을 보고 있으려니 고흐가 죽음에 실패하고 오래 살았더라면 쿠사마처럼 뒤늦게 인정받고 평온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한 영혼을 완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쿠사마의 모습은 고흐와 너무 유사했다. 일흔살에 죽고 싶다고 떠들어대던 나는 일흔살 부터 사랑받기 시작한 쿠사마의 삶을 보며 어쩐지 오래 사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거 아닌가 싶다. 숱하게 많은 자살 시도 끝에 결국 살아남아 계속 그림을 그린 그녀는 스스로 예술이 되었다.
언젠가 그녀의 작품들을 직접 볼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달려가리라. 그 현란한 점과 점들 사이에서 그녀의 영혼 한 조각을 들여다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