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그래 글, 그림. 유유히 출간
오십 대인 그래 작가의 엄마는 봉제공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미싱사였다. 엄마가 다니던 회사에서 베트남에 공장을 지었는데 문제가 자주 발생하자 현지 공장을 감독해 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회사에서 내세운 조건은 좋았지만 가족들 때문에 다들 꺼리는 분위기였다. 그래 작가의 엄마 홍성숙 씨는 고민 끝에 회사의 제안을 승낙했다. 50대 생산직 여성이 남편과 두 자식을 놔두고 해외로 간다는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은 홍성숙 씨의 결정에 다들 걱정스러운 말을 보탰다. 그런데 그 말은 홍성숙 씨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그녀가 보살펴야 한다고 여기는 남편과 자식들 걱정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그래 작가는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엄마가 거기서 만큼은 본인 걱정을 제일 먼저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남이 하는 말 신경 쓰지 마.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애가 아니잖아.'
그렇게 홍성숙 씨는 엄마와 아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 직장인으로 베트남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환경을 만나고 삶의 지평을 넓히며 처음으로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 '엄마만의 방'은 해외여행조차 한번 해본 적 없는 그래 작가의 엄마가 베트남에 도착해서 이루어가는 작은 성장담이다. 그래 작가는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가 베트남 현지에서 좌충우돌하며 자리를 잡는 과정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마침내 안심하게 된다. 엄마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용감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엄마만의 방'은 콘텐츠 창작 플랫폼 '투비컨티뉴드'에 연재되었던 웹툰이었다.
그래 작가는 이 웹툰을 그리며 엄마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자신도 엄마에게서 독립해 나갔다. 엄마가 휴가차 한국에 들어왔다 베트남으로 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할 때 그녀가 느꼈던 묘한 섭섭함. 그 서운하고 아쉬운 감정을 들여다보며 비로소 엄마가 엄마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인정하며 마음의 키를 한 뼘 더 키웠다.
베트남에서 텃세를 부리는 직원을 이해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혼자 호텔을 예약하고 택시를 불러 여행을 할 줄 알게 된 엄마만 성장한 게 아니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비로소 엄마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음에 기뻐할 수 있게 된 그래 작가 또한 성장했다.
삶은 재미있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깜짝쇼를 하기도 한다. 홍성숙 씨는 자신이 홀로 베트남에 가서 5년 이상 머무르게 될 줄 짐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기회가 왔고 그녀는 그 기회를 잡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갱년기 여성이 그 더운 나라에서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했을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홍 주임님 파이팅!
고난과 결핍은 힘들지만 이겨내는 순간 삶은 다채로워지고 내 삶에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만약 홍성숙 씨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오십 대의 나이까지 미싱을 돌리며 살지 않았다면 결코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베트남으로 떠날 때도 좋은 조건이라는 것은 결국 급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떠났을 테고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삶의 장을 열었다.
삼십 년 미싱을 돌리며 쌓은 노하우를 베트남 직원들에게 알려주고 젊은 직원들이 미처 알지 못한 것들을 챙기는 홍 주임의 모습은 멋있었다. 일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까지 하느라 얼마나 정신없는 삶을 살았을까? 그래 작가는 그런 엄마의 노고를 기리며 응원하고 있었다.
딸의 시점에서 중년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신선했다. 중년인 나는 홍상숙 씨에게 감정이입을 하다 갑자기 딸의 눈으로 나의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쾌활하고 낙천적으로 보였으나 내면의 불안에 서서히 침식 당해 이른 치매를 맞이한 엄마. 아이를 모두 키워 놓으면 일이 하고 싶다고 노래했으나 넷이나 되는 자식을 모두 키우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던 엄마. 나는 어리석어서 엄마를 응원해보지 못했고 제대로 이해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래 작가가 기특했다. 내가 그래 작가였다면 엄마를 보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가버리면 우리는 어쩌냐고 악을 쓰는 못난 딸이 되었을 것 같다. 엄마의 성장 같은 거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 틀림없다.
'엄마, 미안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아이처럼 배시시 웃으며 나는 모르겠는데. 나는 몰라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엄마로만 보고 그녀의 삶에 관심 없었던 것에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엄마도 엄마만의 방이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