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소 지음, 동양북스 펴냄
중년의 여자 아나운서 출신 유튜버가 자신의 채널에 ‘50대,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한 루틴 6가지’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다. 영상 내용을 보니 그녀뿐만 아니라 자기 계발 서적이나 영상에서 닳고 닳도록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강조한다는 것은 뻔하면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삶을 바꾸는 것은 사실 특별한 게 아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제대로 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쉽지 않아 다들 힘겨워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무기력해지기 쉬운 중년의 나이에 삶을 재부팅할 수 있는 루틴을 되새기는 것은 제법 의미 있는 일로 보였다.
그녀가 말한 인생을 바꾸기 위한 루틴 첫 번째는 ‘아침 시간’이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며 긍정적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바르게 한다. 두 번째는 ‘학습’이다.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어서 죽을 때까지 새로운 걸 학습할 수 있다. 학습은 뇌의 불꽃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므로 배우고 익히는 것을 중단하면 안 된다. 세 번째는 ‘운동’, 네 번째는 정신 건강을 위한 ‘마음 살피기’ 그리고 다섯 번째는 ‘감사 일기’ 마지막 여섯 번째는 ‘숙면’이었다.
삶을 바꾸는 루틴 여섯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두 번째 ‘학습’이다. 성장과 재조직을 통해 뇌가 스스로 신경 회로를 바꾸는 뇌 가소성은 평생 우리가 새로운 언어나 운동 기능을 학습할 수 있게 해 준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58세부터 83세까지 삼백 명을 모아 인지 실험을 했다. 피시험자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학습을 하루 한 시간에서 세 시간까지 하도록 한 후 석 달 뒤에 인지능력 검사를 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그들 모두 인지능력이 30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학습은 우리에게 젊음을 되돌려준다.
처음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것은 한자 때문이었다. 집 정리를 하다가 오래전에 사놓고 내버려 둔 한자 학습지를 발견했다. 그걸 버리기 위해서는 학습지의 빈칸을 채워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날마다 한 장씩 학습지를 하다 보니 현타가 왔다. 별 쓸모도 없는 한자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한자가 많이 사용되는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결국, 학습지는 다시 책꽂이로 돌아가고 나는 열심히 히라가나를 외웠다. 그렇게 시작한 일본어 공부는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 육 개월을 했지만, 고작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우는 선에서 멈춰있었다. ‘해커스 일본어 첫걸음’을 떼고 ‘한 걸음 더’까지 넘어갔지만, 책표지를 덮으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삼색 볼펜 몇 개를 쓰면서 외웠음에도 더듬더듬 읽기만 할 뿐 의미는 한자로 추측하는 수준이었다. 아쉽지만 그건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리고 첫 해외여행을 일본의 가고시마로 갔다. 지난번에 히로시마를 계획했다 출발하는 날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옆으로 돌리자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만 같은 어지럼증에 포기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또 그런 사태가 일어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무사히 출발할 수 있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고시마의 풍경은 제주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초밥이 정말 맛있고 온천물이 좋았다. 동생들과 조카들이랑 수다 떨며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이 좋았다. 거기서 간판을 읽고 호텔 안내지를 읽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 멈췄던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제자리 뛰기를 하는 기분이지만 이제는 목표가 생겼다. 나중에 딸네와 일본을 가게 되면 내가 나서서 일 처리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나는 어째서인지 일본어를 공부한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아는 게 부끄럽다. 더군다나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게 더 부끄럽다. 아마도 내가 공부한다고 하는 게 깔짝거리는 수준일 것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목표는 이루기 어려울 거라고 자신을 폄훼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습 능력이 좋은 사람은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외울 수 있지만 나는 어지간히 노력해도 쉽지 않은데 그마저도 열심히 하지 않으니 남들이 몰랐으면 싶은 거다. 노느니 이 잡는 공부지만 그래도 아는 단어가 늘어나면서 I am a boy 수준의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재미가 생기는 와중에 발견한 책이 김미소가 쓴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이었다.
응용언어학 박사인 김미소는 한국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마치고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의 다마가와대학에서 ‘공통어로서의 영어 센터’ 전임 교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 미국, 일본 삼 개국어를 하면서 세 나라의 문화와 언어 사이의 인과 관계를 응용언어학 박사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본 오타쿠 출신으로 일본어를 전혀 못 한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막상 몸으로 겪게 되자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일본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버거운데 한국이나 미국과는 또 다른 에두르는 화법이나 획일화된 옷차림 등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
김미소는 현지에서 언어를 배우려면 일단 책에서 나와야 한다고 권한다. 우리가 외국어 시험을 사지선다로 보면 아무 답이나 찍어도 25퍼센트의 확률로 맞출 수 있다. 그렇지만 현지의 삶으로 들어가서 몸을 부딪치면 틀릴 확률 99퍼센트의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비로소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세상에 흩뿌려져 있는 언어를 가져다 꿰어가는 것이다. 그게 실력이 되는 것이다.
응용언어학 박사답게 저자는 ‘언어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언어를 배우는 건 단순히 언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고 언어를 통해 타인을 만나고, 사회와 접하고, 문화를 익히고 때로는 좌절하고 실패하고 싸우지만 동시에 기쁨과 행복과 보람을 누리며 그 언어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홍콩에서 온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섞이면서 일본어와 일본 사회를 부감으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일본의 풍경은 선명한 색의 옷을 세탁기에 넣고 몇 번씩 물을 뺀 것 같다고 했다. 탈수가 아닌 탈색된 색감의 세상. 어떻게든 대중의 눈에 띄어 살아남겠다고 아우성치는 우리나라에서 성장한 저자에게 어색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색감만 그런 게 아니라 생활 태도도 조곤조곤해서 그게 언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고 신경 쓰인다고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에 미묘하다는 평을 하는 사람들. 공적인 부분에서는 조직에 나를 매몰시키지만 사적인 부분은 칼같이 지키는 문화를 가진 나라가 김미소의 일본이었다.
직설적인 한국과 절제된 일본을 비교하는 일은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니다. 일본 사람은 한국어를 배워 좀 더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데 충실할 수 있으며 우리가 일본어를 배우면 평소에 표현하기 어려웠던 섬세한 순간을 단어로 만날 수 있게 된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라는 의미의 ‘코모레비’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새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양성을 몸에 붙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시선의 다양성, 생각의 다양성, 가치관의 다양성 말이다.
이로서 내가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들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완고하고 편협해지는 나의 전두엽을 지키고 유연성을 기르는데 외국어 공부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물론 나한테 묻는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한 유튜버가 '해외 여행 가면 왜 좋아? 나는 국내가 너무 좋은데.'라고 묻는 댓글러에게 알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걸 듣고 웃었다. 사실 설명할 필요없는데 나는 혼자 답을 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