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거짓말

by 은예진

크레바스 건너기라는 이름을 단 매거진은 그냥 아무 거나 쓴다. 내가 지금 빙하의 갈라진 틈에 발이 끼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으니 크레바스 건너기라고 이름 지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며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이는 메거진이다.


지난밤 잠이 오지 않아 넷플릭스를 켰다가 추억의 닥터 하우스를 봤다. 거기서 닥터 하우스가 모든 환자는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장면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대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에게 가장 흔한 진료가 송아지 설사다. 수의사는 설사하는 송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우유를 끊는 것이라고 축주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축주들은 송아지가 배가 고파 우는 것을 보다 못해 수의사 몰래 우유를 먹이는 일이 종종 있다. 그 외에도 수의사가 시키지 않는 이상한 짓을 하고 시치미를 떼곤 한다. 수의사는 거짓말하는 축주들 때문에 곧잘 화를 낸다.


요즘 나는 한의원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진통제는 빈속에 마구 먹어대지만 항생제를 빈속에 먹었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상태를 경험했다. 통증이 밀려오는데 밥을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으니 억지로 밥을 먹다 제대로 얹혔다. 그 이후로 밥을 먹을 수 없어 한의원엘 갔다. 나는 다른 증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오직 소화가 되지 않는 것만 말했다. 말이 길어지면 틀림없이 한약을 지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조금 넘게 죽만 먹으며 침을 맞고 뜸을 떴다. 겨우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만 나도 모르게 모공으로 새어 나오고 말았다. 내가 소화가 되지 않아 고생한 이유는 항생제를 먹기 위해 억지로 밥을 먹어서 그렇다. 방광염으로 온갖 치료를 다해보고 시술까지 했지만 일 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거기다 전정신경염으로 어지럼증에 시달린다. 한 번 입이 열리자 줄줄이 하소연이 쏟아졌다. 이제 주워 담을 수 없게 되었다. 한의원에서 이 정도 했으면 한약을 먹겠다는 것이다.


어지러운 건 어차피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나 방광이 아프면 죽고 싶다는 말을 들은 한의사가 한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한약을 지어 두 번이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한 번은 너무 속이 쓰려 먹지 못했고 한 번은 한봉 먹자마자 전경신경염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먹을 시기를 놓쳐 먹지 못했다. 그러자 한의사는 시범 적으로 열흘 치만 먼저 먹어보고 침과 뜸을 뜨며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하고 소화불량에서 방광 쪽으로 옮겨간 침을 맞았다. 그런데 베드에 누워 침을 맞고 일어서면 어지럽기 때문에 치료실에서 병원 로비로 걸어가는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벽을 짚어야 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한의사가 많이 어지럽냐고 물었고 나는 약 먹으면 괜찮다고 집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약 이야기가 나오자 한의사는 자신이 내가 먹는 약을 알아야 한다며 복용 약의 내역을 적어오라고 했다.


전정신경염이 발병하고 나서 나는 일상을 유지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오죽하면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달았을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치고 힘이 든다. 그걸 견디기 위해 진통제를 먹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중독 수준이다. 판피린이나 비처방지역 약국에서 조제한 진통제를 달고 사는데 그런 내역을 도저히 의사에게 말할 수 없다. 내일을 끌어다 오늘을 하는 형국이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 당장 살아야 하니 말이다.


결국 잊어버린 척 시치미를 떼고 복용약 내역을 적어가지 않았다. 뇌전증 약인 가나페닌, 불안증 약인 디아제팜, 보나링정, 우울증 약으로 나왔지만 방광 통증을 줄여주는 에나폰등에 영양제는 또 얼마나 많은지 셀 수없다. 나는 내 간과 신장이 버텨내고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물론 방광염이 신장 통증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양반 잊어버렸을 거야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한의사가 약 내역 적어왔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나 같은 거짓말쟁이 많이 봤다는 듯 말한다.


'너무 많아서 안 적어왔지요?'


나는 한의사의 질문에 동문서답 우리 수의사의 이야기를 했다. 적어와 봤자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한의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더는 채근하지 않는다.


닥터 하우스의 말은 옳다. 환자들은 거짓말을 한다. 나는 도저히 의사에게 진통제 중독 상황을 밝힐 수 없다. 말하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볼 것이다. 그렇지만 진통제라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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