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얼깁스, 터리사 H. 바커 지음 / 더퀘스트 펴냄
두 달에 한번 있는 신경과 진료에서 나는 일분 컷 환자다. 치료약도 없는 병에 증세 완화용 약을 먹는 나는 궁금한 것도 없고 그저 약의 용량에 대해 상의할 뿐이다.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는 내게 전정 신경이 망가진 것은 한쪽 다리가 잘린 것과 같아서 회복이 아니라 관리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컨디션이 좋으면 몇 달쯤 괜찮다가 어느 날 새벽 문득 몸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듯한 느낌에 눈을 뜨면 다시 어지럼증이 시작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약은 멀쩡한 쪽 전정 신경을 눌러 양쪽에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한쪽 다리 잘렸다고 다른 쪽 다리도 잘라서 똑같이 만드는 게 전정 신경염에 흔히 쓰는 약이다. 거기다 추가로 극심하게 어지러우면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추가로 먹는다.
일분이면 나가버리던 내가 이번에는 담당 선생님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다.
'친정어머니가 마흔아홉에 유방암에 걸리셨고 저는 서른셋에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어머니가 육십 대에 전정 신경염을 앓기 시작했고 저는 오십 대입니다. 그리고 칠십 대이신 어머니의 치매가 심합니다. 알츠하이머 유전자인 APOE-4 복제본을 가지고 있는지 검사해보고 싶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담고 말했다.
'알면 뭘 할 수 있나요? 공연히 검사비만 쓰시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 알면 뭘 할 수 있을까? 마인드 식단을 하고 유산소 운동을 하며 지적 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유지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비용에 상관없이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는 의지는 금방 꺾이고 말았다. 검사비가 생각처럼 많지는 않았다. 십오만 원이면 할 수 있는 검사지만 지금 내 상태에 과연 검사가 도움이 될까? 장마철 습기 머금은 집을 잠식하는 곰팡이처럼 불안에 휩싸인 내가 지금 치매 유전자의 존재를 알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 선생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치매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은행업무나 세금 등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겠다며 아버지에게 넘겼다. 이미 한참 전부터 증세는 진행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치매가 시작되기 전에 불안과 우울에 한동안 무기력했었다. 슈퍼 입구에 서서 그곳에 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황망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와 관계에서 분노를 자주 터트렸고 뇌 mri 사진에서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체불명의 통증과 심해진 어지럼증에 어쩔 줄 몰라했다. 청력은 점점 소실되고 불안에 떠는 날들도 있었다.
어머니는 평생 불안에 시달렸다. 사업하는 아버지는 편집적으로 꽂히는 것에 돈을 쏟아붓는 스타일이었고 생활비를 넉넉하게 내놓지는 않았다. 어차피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살림살이에 돈을 쓰는 것을 그렇게 반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냉장고를 바꾸고 세탁기를 들이는 일조차 반대했다. 휘황찬란한 자개장을 들이고 아버지가 연신 차를 바꿔댈 때마다 어머니는 분노에 차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낙천적이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면서도 불안이 심했고 그 불안은 육체화되어 언제나 아팠다. 나는 어머니의 뇌신을 사러 약국에 자주 다녔다.
나는 외모가 거의 어머니의 판박이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어머니의 불안이 없었다. 비가 오려고 하면 우울감에 시달리는 정도였지만 그건 우울감이지 우울증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갱년기에 우울증이 뭔지 겪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불안과 마주하고 있다. 어머니의 불안이 폭발했던 시기는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 세입자기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아버지가 사업을 정리하시고 사 층짜리 건물을 구입했다. 일층에는 식당과 상가 두 개가 있고 이층에는 당구장, 삼층에는 헬스장이 있고 사 층에 살림집이 있었다.
주님밑에 건물주라는 농담은 그저 농담일 뿐 세를 받는 일은 녹녹하지 않았다. 월세를 밀려 보증금을 까먹는 세입자가 부지기수였고 세금은 너무 많았다. 그런 와중에 당구장이 나가고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당시 엄마는 그에 대한 불안이 너무 과했다. 어쩌다 통화를 할 때면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그런 엄마의 불안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실이 길어진다고 해도 다른 층 세입자들이 있었고 당장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엄마는 거의 병적으로 불안해했다. 공감하기 어려운 자식들은 짜증을 내며 건물 팔아버리고 아파트에서 편히 사시라고 화를 냈다. 그럼 엄마는 입을 다물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제야 알겠다. 엄마의 불안은 건물의 공실 문제가 아니었다. 평생 불안했던 마음이 노화로 인해 더 심해졌던 것이다. 나는 그때 공실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마음을 헤아리며 마음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밥이라고 한 끼 나누었어야 했다. 지금 내가 불안 앞에 서서 보니 누구도 내 불안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이건 오직 내 몸과 내 정신의 문제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의 손을 잡아주며 그 불안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해준다면 숨을 한번 크게 몰아 쉴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어머니에게 해주었어야 했다. 이제 어머니는 당신의 불안과 우울을 피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눈빛만 공허하게 떠도는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그걸 깨닫고 눈물을 터트렸다.
'나 사느라 힘들어서 엄마에게 그때 당시 뭐가 필요했는지 몰랐어. 엄마 미안해.'
치매에 걸리고 엄마는 도리어 평온해졌다. 그래서인지 몸도 아프지 않다. 과민성 대장증세로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크게 아픈 곳이 없다. 엄마의 통증은 이기적이며 분노조절 장애인 아버지와 살면서 엄마를 도와주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 자식 넷을 키우느라 마음이 힘겨워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이제 대화를 할 수 있는 엄마를 잃었지만 마음 편한 그곳에서 지내는 엄마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팔십 대 중반인 아버지가 엄마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힘겨워하는 것을 보면 좀 안쓰럽지만 평생 엄마를 힘들게 했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엄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 나는 치매와 관련된 책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씁쓸하게 웃는다. 치매에 관한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나는 치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별 뾰족한 방법도 없다. 신경과 담당 선생님이 유전자 검사를 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 것처럼 치매에 관련된 책을 아무리 읽어도 치매는 그저 막막할 뿐이다.
치매를 치료하던 의사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APOE-4 유전자가 두 개라는 사실을 알았다. APOE 유전자는 혈액 속에서 특정 지질을 운반하는 일을 맡은 특정지질 단백질의 dna설계도다. 이 유전자에는 APOE-2, APOE-3, APOE-4 세 가지 이형 또는 대립 유전자가 있다. 콜레스테롤 운반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이 유전자는 아직 이유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APOE-4 대립 유전자가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부모에게서 APOE 유전자를 하나씩 받으므로 여섯 가지 조합이 가능한데 만약 APOE-4가 하나만 있다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세배 증가하고 두 개가 있으면 12배가 증가한다. 그러니까 APOE-4 유전자가 쌍으로 있다면 70대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을 확률이 50퍼센트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대니얼은 자신이 70대에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50퍼센트라는 것을 알고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후각 이상을 감지한 그는 환후각 증상이 알츠하이머의 전조임을 깨닫게 된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입장에서 그들에게 해야 하는 질문을 너무 잘 알고 있던 대니얼은 인지검사상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본인은 변화를 눈치채고 환자 진료에서 은퇴하며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준비한다.
그는 아직 경도 인지 장애 수준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생활에 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산을 오르고 마인드 식단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대니얼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미리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것을 인식하고 준비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엄마도 뇌 mri를 찍고 부분적 손상을 알았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준비했더라면 좀 나았을까? 나는 아무 쓸모없는 물음표를 찍다가 삼켜버린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의 저자 대니얼 깁스는 치매에 관련된 여러 임상 실험에 참여할 기회를 찾는 것이 용이한 신경과 의사이기에 자신의 치매 위험성을 아는 것이 유리했다. 어머니에 대한 의문이 이제 나에게로 넘어온다. 과연 APOE-4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는 걸까?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내 어머니의 친가 할머니가 치매였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으며 작은 아버지가 치매였다. 그리고 지금 어머니가 치매다. 이쯤 되면 APOE-4 유전자가 있을 거라는 짐작이 어렵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