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온라인 초등학생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같은 지역에 사는 엄마를 만났다. 내가 그니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이사를 오게 되자 같은 학년인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삼 년을 같이 다녔다.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가면서 아이들은 소원해졌지만 두 엄마는 여전히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나는 딸만 하나였지만 그니에게는 네 살 터울의 자매가 있었다. 일하랴 시어머니 모시고 사느라 맏며느리 노릇에 정신이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있는 큰아이와 인정 욕구가 강해서 공부를 제법 잘하던 둘째에게 그니는 언제나 마지막 에너지까지 쥐어짜서 퍼주는 엄마였다.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애정을 쏟아부어서 문제라고 느낄 만큼 자식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키운 두 딸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이들이 이십 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큰아이가 정신과에 다니며 입퇴원을 반복하는 사이 둘째 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해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자해와 약물 부작용에 시달리며 조증과 울증의 파도를 타는 아이들을 지키느라 그니는 가라앉는 배에서 계속 물을 퍼내는 심정으로 살았다. 하루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엄마 본인도 사라지고 싶었다고 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싶었다.
위로에 소질이 없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니의 아이들이 질병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우리 아이는 최연소로 세무사가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했다. 내가 입을 잘못 놀리면 상처를 줄 수 있으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심하기로 나 같은 엄마가 없기로 유명한 내 아이는 멀쩡한데 온갖 정성을 다 쏟은 그 집 아이들이 아픈 것은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의 병을 이해하려 했던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혼란스러웠던 이십 대를 통과하며 아이들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는 소식에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둘째 아이의 자해 상처 치료에만 사천만 원이 들었다고 했지만, 덕분에 아이가 반소매 옷을 입을 수 있을 거라며 그니가 웃었다. 구멍 난 배에 물을 퍼내며 험한 파도를 헤치는 사이 가족은 더 끈끈해졌고 이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에 아량이 커졌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끝내 얻을 수 없었던 감정의 깊이였다.
브런치에서 송지영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간발의 차이로 아이를 놓치고 참척의 슬픔을 토해내는 송지영 작가의 글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어쩌다 우리 꽃같이 예쁜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사지로 내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브런치의 글들을 다듬어 엮은 책 ‘널 보낼 용기’를 읽으며 그 의문에 해답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내 어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으랴마는 송지영 작가는 먼저 떠난 열일곱 살 딸의 죽음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어떤 부모가 자식의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겠는가? 어떤 부모가 자식의 죽음 앞에 정신 줄을 놓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가까운 이 앞에서 울어도 보고 낯선 이에게 물어도 본 그녀는 먼저 갈 수밖에 없었던 딸에게 긴 편지를 쓴다. 그 글을 쓰는 동안 같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극복해 간다.
아무리 그녀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간다고 해도 행간에 숨어 있는 슬픔은 빳빳한 새 책의 종이를 뚫고 스미어 나온다. 이만큼 차분하게 이야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아팠을지 그 통증이 얼마나 격렬했을지 어미 된 자로 조금은 아주 조금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녀가 슬픔을 극복해 나가는 방식을 보며 다시금 글쓰기와 독서의 힘을 느낀다. 슬픔에 겨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문을 닫아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송지영 작가는 자신의 슬픔을 덜어내 얹을 책을 읽고 영화를 보았다. 그 안에서 딸에게 미처 묻지 못한 질문의 답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픈 여정을 글로 써 이렇게 세상에 내놓았다. 그녀는 슬픔에 꺾이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그건 어쩌면 먼저 간 딸 서진이가 엄마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 책 ‘널 보낼 용기’는 마음이 아픈 아이와 그 부모 그리고 먼저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손을 내밀어 울고 있는 독자의 어깨를 토닥인다. 너만 아픈 것이 아니라고 여기 너와 같이 아픔을 나누어 줄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나는 가끔 결정적인 사건 앞에서 평행 우주를 떠올린다. 영화 ‘에브리원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처럼 어떤 우주에서 나는 다른 결정을 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상상한다. 그리고 지금 그런 꿈을 꿔본다. 그 우주에서는 그날 밤 오케이 마트 옥상에서 발을 돌려 내려온 서진이가 병을 극복하고 엄마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그 우주의 서지영 작가는 지금만큼 성장한 사람은 못되겠지만 딸과 여행 계획을 세우는 발랄한 엄마로 있으면 좋겠다. 부디 어떤 평행 우주 속의 서지영 씨는 책 같은 거 쓰지 않고 철없이 해맑게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