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나비
대문을 찾지 못해 한참을 빙빙 돌다가 겨우 찾아서 들어갔다. 집이라기보다는 그냥 방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방과 맞닿아 있는 비탈진 언덕에는 얼어붙은 이끼가 가득했다. 서늘한 냉기가 소향의 방으로 그대로 스며들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아무리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기생이라 하지만 죽을 마음마저 먹었던 사람을 이렇게 음기 가득한 곳에 내버려 두는가 싶어 행수에게 노여운 마음이 들었다. 최소한 소향이 마음을 회복하기 바란다면 햇빛 잘 드는 방이라도 하나 내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본이는 새로 일하러 온 사람인 양 허름한 옷에 머리를 단정히 하고 약사발을 손에 쥔 채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한번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자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다행히도 소향이는 벽을 보고 누워서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라도 관심 없다는 듯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씨, 약 드세요. 이 약 드시고 나면 몸도 마음도 달라지실 겁니다.”
소향이가 처음 듣는 목소리에 흘끔 바라보더니 다시 벽을 보고 눕는다. 마치 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묵묵부답이다. 본이는 그런 소향이의 옆에 앉아 슬퍼 보이는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뒤통수도 표정을 가졌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검은 머리밖에 없는 뒤통수에서도 이러한 감정이 느껴지니 자신의 뒤통수를 매번 보살펴 주던 시월이가 생각났다. 더는 약을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어나 건강을 찾아야 서방님이 돌아오셨을 때 건강한 모습으로 뵐 것 아니냐는 입에 발린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나절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그 일이 며칠 반복되자 결국 소향이가 몸을 일으켜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이냐? 왜 사람 옆을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인데. 내가 목이라도 맬까 봐? 걱정하지 말아라. 나 목매지 않을 것이야. 서방님 돌아올 때까지 살아 있을 거니까 나 좀 혼자 있게 놔두라고.”
소향의 얼굴도 조원구의 얼굴 못지않게 말라서 턱 선이 뾰족하게 드러나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눈 밑이 늘어져 있었다. 한때는 장안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을 치마폭에 휘어 감았다는 소향이가 시든 꽃이 되어 고개를 늘어트리고 있다.
“제 이야기 하나만 들어주시면 원하시는 대로 귀찮게 굴지 않겠습니다.”
“뭐? 이야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내가 지금 네 이야기나 듣고 있을 사람으로 보이니? 나는 너랑 대거리할 기운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대거리하지 마시고 그냥 들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소향은 무언가 한마디를 더 하려는가 싶더니 이야기만 들어주면 정말 귀찮게 굴지 않을 것이냐며 그럼 그냥 빨리하고 나가라며 손짓했다.
이 이야기는 구라파에서 전해져 오는 전설입니다. 아씨가 아실지 모르겠는데 구라파에는 예전에 덕국이라고 불렀던 독일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 독일의 바덴이라는 지방에 젊은 백작이 이웃 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 중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성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가게 되지요. 그곳에는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살아가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아름다웠고 젊은 백작은 한눈에 부인에게 반해 아주 뜨거운 사랑을 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젊은 백작은 사랑하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네 개의 눈이 있는 한 당신을 바덴으로 데려갈 수 없다오. 네 개의 눈이 사라지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오겠소’라고요. 네 개의 눈이란 자신의 부모를 뜻하는 말이었지요. 백작은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당신을 데려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습니다.”
시큰둥했던 소향의 태도가 바뀌어 어깨가 본이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서? 그래서 그 오라 뭔가 하는 백작 부인은 어찌 되었나?”
“궁금하세요?”
“아니 뭐 나처럼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겠지. 전설이라며?”
이야기 계속 들어보세요. 집으로 돌아간 백작은 반대할 줄 알았던 부모로부터 수개월 뒤 뜻밖에 허락을 쉽게 받았습니다. 기쁨에 들떠 오라뮨데 백작 부인을 찾아온 젊은 백작은 그곳에서 참혹한 광경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백작이 말한 네 개의 눈을 자신들의 사랑에 방해되는 아이들의 눈으로 오해한 오라뮨데 백작 부인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아이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죄의식으로 몸져누운 채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백작의 눈에 오라뮨데 백작 부인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남자를 위해 자신의 아이를 포기한 그 무시무시하고 처참한 사랑 앞에서 백작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되자마자 백작은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아주 멀리멀리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여자로부터 도망칩니다.
소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이는 소향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틈을 타 고양이 걸음으로 소리 나지 않게 방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행수가 본이를 찾는다며 행랑어멈이 여관엘 찾아왔다.
“도대체 뭘 어찌했기에 소향이가 밤새 통곡을 하다가 아침나절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단 말이냐. 아무래도 소향이 이것이 한강에라도 가서 뛰어내린 것 아닌가 싶다.”
당황한 본이는 행수의 질책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본이가 보기에 소향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만한 상태로 보였다. 그 정도의 자존심이면 이야기의 뜻을 알고 다음 날이면 사랑보다 중요한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할 줄 알았다.
“너도 너지만 위태로운 소향에게 너를 보내 시험하고자 한 내 잘못이 더 큰 것 같구나. 이야기 기생이라는 것이 자칫하면 일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생은 그저 술자리에서 적당히 기분만 맞추어 주고 놀면 그만이다. 기생이 예전처럼 약방기생 노릇을 할 것도 아니고 네 재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시켜본 일인데 아닌 것 같다. 너는 다른 권번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혹여라도 소향에게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그저 네 잘못 보다는 너를 보낸 내 잘못이려니 생각해라.”
“하지만 행수님!”
“되었다. 나가거라.”
행수 기생의 쌀쌀맞은 표정에 본이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