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서 여름 감옥살이의 고충에 대해서 토로하셨다. 없이 사는 사람은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지만 옆 사람을 37℃짜리 열 덩어리로 증오하게 하는 여름은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난겨울 같으면 차마 겨울을 택한다고 말씀하시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침에 길을 나서면 숨을 내쉴 때마다 콧구멍이 들러붙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과 온도 차이가 4~5℃ 이상 나는 이곳 경기도 외곽지역에서는 서울 기준의 일기예보에서 체감온도를 따로 계산하고는 한다.
겨울나기가 고통스럽기는 사람도 매한가지지만 갇혀 있는 짐승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날마다 우유를 내야 하는 젖소농가의 이번 겨울은 혹독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영하 20℃를 밑도는 추위에 운동장 바닥은 자갈밭처럼 얼어붙었다.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운 운동장을 걸어 다니며 사료를 먹어야 하니 섭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사람도 짐승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하는 법인데 제대로 먹지 못한 젖소가 성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소가 허약해졌다고 해도 하루 두 번 젖을 짜 주지 않으면 유방염에 걸리니 도리 없이 젖을 짜야한다. 그런 형편이니 겨울을 나면서 낙농가마다 쓰러지는 소가 속출했다.
쓰러진 젖소의 검안서를 발급받기 위해 동물병원에 나온 축주의 입술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냐는 인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젖소 한 마리가 하루 100ℓ 이상의 물을 먹어야 하는데 추위에 모터가 얼어붙어 밤을 꼬박 새우며 고쳤다는 분, 착유기의 맥동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우유의 체세포 수가 솟구쳤다고 하시는 분들의 입에서 하나같이 후회스럽다는 말이 나왔다.
“어쩌다 내가 낙농을 시작해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추위는 젖소도, 기계도, 축주도 지치게 하였다.
응달에 쌓인 눈은 녹을 것 같지 않았고, 겨울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우수(雨水)가 지나면서 공기가 다르다. 회양목 가지 끝에 매달린 겨울눈에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난했던 겨울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추위를 피하고자 수태시기를 조절해 놓은 농가에서 송아지를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낙농가에서 봄은 어린 송아지 울음소리에 실려 온다. 이제 겨울 동안 쌓였던 우분을 옥수수밭으로 실어내고 톱밥을 깔아야 할 때다. 인공 포유를 하는 젖소 송아지들은 사람만 보면 맹맹 거리며 우유를 달라고 조른다.
혹독한 시간을 견디고 맞은 봄은 여느 봄과 다르게 다가온다. 그것이 어디 낙농가와 이번 겨울에만 국한된 이야기겠는가. 인생의 시련 또한 누구에게는 영하 20℃로 다가오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쇠가 쩍쩍 달라붙는 극지방의 추위처럼 닥치기도 할 것이다.
시련은 거스르려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들러붙어 괴롭히기 일쑤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임을 자각하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충분히 몸을 맡길 때,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것이라고 했다.
추위도 시련도 시간 속에 흘러가기 마련이다. 추위를 견디고 이겨낸 젖소는 따스한 봄 햇살 아래서 되새김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