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기록
유난히 견디기 힘들었던 겨울, 나는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꽁꽁 언 땅이 녹고 새싹이 돋는 계절이 오면 나의 상황도 나아지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졌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나만 비껴가진 않을 거란 믿음도 있었다. 이것은 다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었다. 계절의 변화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일을 겪을 때면 더 큰 섭리에 대해 생각한다. 나쁜 일이 있다면 좋은 일도 있다는 것. 좋은 일은 좋은 일로 돌아온다는 것. 가끔 배신당해도 나는 그 섭리들을 믿는다.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만큼 오만한 일이 있을까. 우리는 서로 조금씩은 오해하며 산다. 나에게 생각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사람과 쉽게 떨쳐내는 편인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을 동시에 곁에 두며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생각한다. 어떤 오해는 나를 전부 부정하고 어떤 오해는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려준다. 나조차도 나를 다 알지 못하니 누군가를 다 알게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어떤 것의 이면을 짐작하고 틀리기도 하며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일을 멀리해 간다.
알게 되면 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 있다. 생각하면 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 있다. 그래서 나는 모르기보단 아는 사람이고 싶다. 가끔 생각들에 짓눌려 꼼짝 못 해도, 아는 걸 모르는 일 취급하고 싶어져도 아는 게 낫다. 사려 깊은 쪽과 무심한 쪽 중 언제나 사려 깊은 쪽을 택하고 싶다.
무엇을 하기 위해선 무엇을 안 하는 일도 필요하다. 나는 논비건 음식 사진은 웬만하면 전시하지 않으려 하고 비인간 동물을 구경하려는 목적만 가진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대해 소비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비건적인 것을 소비하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효력을 가진다. 무엇을 할지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지도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하지 않는 일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남들은 무엇을 안 하며 살아갈까.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그냥 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