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라는데 그것도 잘 안됩니다만
새해가 밝았다. 사실 우리의 삶은 연속적이지만, 인간은 이렇게 삶의 곳곳에 의미를 만들어놓고 스스로 걸려줘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이것을 더욱더 실감하고 체감하는 것이 나이먹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친구는 사귄지 일주일도 안 된 남자친구와 다른 지역에 여행을 가서 해를 보고 인생네컷을 찍으며 새해 첫 하루를 보냈다. 친구의 하루는 몽글몽글 설렘으로 가득차 있었다. 친구의 감정을 단정적으로 말한 것이 이상할 수 있지만 나는 100% 확신한다. 추측컨대 둘은 앞으로 함께할 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나는 가족이 되어버린 애인과 종일 집에서 새해 첫하루를 보냈다. 떡국 대신 ‘매일매일’빵집에서 갓구운 바게트에 생크림을 찍어먹는 것을 첫끼로 새해 첫하루를 시작했다. 빵집에 가는 것이 오늘 나의 유일한 외출이었고, 생크림을 바게트에 찍어먹는 것이 태어나 처음이라는게 오늘의 특별한 점이라면 특별한 점일 것이다.
나는 애인과 새해 목표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애인의 기분을 약간 상하게도 만들었다가 다시 금방 화해했다. 2023년 첫날에 애인과 헤어질 결심을 보았고 탕웨이는 녹색 파란색 옷이 여전히 잘 어울렸다. 애인이 가고 나서는 초저녁잠에 들었고 깨어나보니 1월 2일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다. 2023년에도 출근은 무섭다.
나 역시 의미를 찾기 위해 새해 첫날에 기꺼이 의미를 부여하며 어제와의 단절을 만들어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정했고, 그것을 열심히 하겠다는 뭐 대충 그런 계획들을 세워보았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시작은 잘했다.
그런데 나는 시작이 반이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 새해계획은 보통 열의에 차서 세우고 특히 나같은 부류는 목표를 정하고 계획세우는 것을 무지하게 재밌어한다. 물론 나도 안다. 멈추어있는 자동차의 바퀴는 굴리는 첫 힘이 무지 무지 중요하고, 처음에 더 큰 힘이 필요하다는 걸.
그러나 언제나 어려움은 중간에 왔다. 새로움에 기댄 동기부여가 힘을 잃을 때가 되어갈 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을 때, 내 노력이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 같을 때 어려움이 왔다.
그래서 올해 나의 신년 목표는 이런 것이다. 꾸준히 하는 것, 그냥 하는 것.
고등학교 때 학원수학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해주셨다. 너희의 수학성적은 우상향직선형태가 아니라 계단식이라고. 그러니까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하면 된다고. 어쩐지 나는 그 선생님의 말이 무척이나 신뢰가 가서 그냥 수학공부를 열심히 했더랬다. 실제로 내 성적은 평이한 선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급상승하여 종국에는 1등급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일이 계단식 혹은 이런 곡선을 따라간다. 그러니까 정말 필요한 건 눈 앞에 뭐가 보이지 않아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노력이 의미있다는 것,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진짜로 믿어야 한다.
언젠가부터 그냥 하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자주 들린다. 그러나 ‘그냥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냥 하려면 내가 하는 노력이 의미가 있고 성장을 불러일으킨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냥 할 수 있다. 그냥 계속 해 나갈 수 있다.
모두들 "거창하고 독하게" 보다 "그냥 계속" 하시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왜냐하면 우리의 노력들은 다 찬찬히 쌓이고 있는 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