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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Nov 18. 2020

배부름을 느낄 수 있어야 살찌지 않는다.

배부름을 느낄 수 있는 몸, 그리고 마음.

살이 찌고 빠지는 것의 원리는 단순하다.

많이 먹으면 찌고, 적게 먹으면 빠진다.

그리고 적당히 먹으면 유지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그러면 음식을 제한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칼로리를 제한하려고 한다.    

  

적게 먹으면 빠지고, 많이 먹으면 찐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사실이지만, 이 사실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은 생각만큼 수학적이지 않다.

가령, 나는 하루에 1600kcal가 필요한 사람이니 (인바디에 그렇게 나옴) 1600kcal를 먹으면 살이 안 찔 것이고, 살을 빼고 싶다면 그 보다 적게 먹어야 한다. 가령 한 달에 2kg을 빼고 싶으면 약 7700*2kg=15400kcal, 15400÷30일 =513kcal


즉 한 달에 2kg을 빼고 싶다면, 하루에 513kcal씩 줄여야 한다. 운동을 200kcal만큼 하고, 식사를 313kcal 줄이던가, 밥 한 공기도 안 되는 200kcal를 운동으로 빼려면 1시간은 실내 사이클을 돌려야 함을 깨달은 후엔 식사로 513kcal를 줄이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이런 사고방식과 다이어트 계획을 나는 수학적인 접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이어트에서 이런 방식은 실패할 확률이 99%다. 나는 다이어트를 수학이 아니라 생리적, 심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성공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성공이라는 개념 안에는 지속가능성이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먹는 것이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원래 먹는 것은 생명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동물들은 생존하기 위해 먹어야 하고, 그래서 먹는 것은 본능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다이어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수학적이고 환원론적인 접근방식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나는 먹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후에야 이전에 다이어트에 매달리던 나의 몸 상태가 병들어 있던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도 몸소 깨달았다. 인식을 바꾸고 마음을 바로 잡자 내 몸이 적절한 반응을 하기 시작했고, 그런 몸은 또다시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선순환의 고리에 올라탄 것이다.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는 것을 이런 것이다.

나는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는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은 없고, 얼마나 먹을지에 대한 생각도 없다. 지금 있는 것, 지금 구할 수 있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 나면 배가 부르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더 먹고 싶지 않다. 이 당연한 사실, 음식을 먹고 배가 부름을 내가 느낀다는 것이 의식이 될 때마다, 나는 내 몸이 이제 자연스럽게 반응한다는 사실에 기쁘다.

  

그래서 나는 이제 폭식을 하는 일이 없어졌다. 가끔 과식을 하지만, 과식을 얼마나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그런 걸 기억하고 있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과식을 하면 다음날 저절로 첫끼를 먹는 시간이 늦춰지게 된다. 어떤 날은 3시에 첫끼를 먹기도 한다.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내가 유일하게 지키는 식사에 관한 룰이 간헐적 단식인데, 이것은 확실히 건강에 도움이 된다. 티브이에서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떠들어대는 것들 중 나는 무엇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간헐적 단식은 최고이다. 공복시간이 길면 확실히 살이 잘 찌지 않는다. 물론 살을 빼기 위함은 아니고, 건강과 속의 편안함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아주 효과적이다. 그리고 아무리 효과적이어도 힘들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게 내 지론인데, 간헐적 단식은 전혀 힘들지도 않다는 점에서 최고이다.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저절로 살이 빠지고, 계속 유지가 되는 것은, 내가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내가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적당히 먹고 배가 부르면 안 먹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아니 쉬워지고 뭐 할 것도 없다.

다이어트나 숫자놀음이 인생에서 필요 없어지게 되니까.

    

예전의 나는 라지 사이즈의 피자를 시키면 나 혼자 8조각을 다 먹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1명이 먹기에 과한 양이다. 한 판을 다 먹으면 매우 배가 부르다. 그리고 매우 불쾌하다. 5조각이 넘어가면 배가 부르고, 불쾌한 느낌이 드는데도 나는 그것을 다 먹곤 했다. 생각해보니 피자 만이 아니다.

      

과자나 빵이 집 안에 있으면 먹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약간 그런 과였는데, 이런 사람들은 계속 그것이 신경 쓰여서 다른 일에 집중을 못한다. 명백하게 심리적인 문제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있으니까 이런 부자연스러운 상태가 된 것이다. 배가 부르다는 몸의 신호를 제대로 느끼지를 못하게 되고, 느끼긴 느끼지만 둔감하며, 강박 심리가 몸의 신호를 압도하여 오히려 더 먹게 한다. 그리고 올라오는 죄책감과 후회는 마음을 더 병들게 한다.


그런데 지금은 보통 3조각을 먹는다. 과거에 ‘딱 3조각만 먹어야지’라는 한 번도 지키지 못한 다짐을 지금은 자연스럽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3조각을 먹고 나면 별로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음식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몸은 자연스럽게 배부름의 신호를 느낀다.

또 단순히 많이 먹는 걸 떠나, 피자나 고기처럼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속이 더 불편해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강박이 있을 때는 심리가 몸을 이겨버려서 그럼에도 더 먹게, 더 먹어야만 하게 만든다.      


강박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자, 나는 생리적 신호를 잘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아 배부름이 느껴지는구나.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 ’ 같은 것이 아니다.

배가 불러서, 더 먹으면 속이 안 좋아질 것 같아서, 더 먹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만 먹어야 해서 그만 먹는 게 아니라,

그만 먹고 싶어서 그만 먹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음식이어도 어떤 날은 더 많이 먹고, 어떤 날은 더 적게 먹기도 한다.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쓰는 게 중요하다.

나는 식사 제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살을 빼겠다는 목표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이것은 너무 부드러운 말이고, 다이어트 최고의 적이 다이어트이다.

살 빼려면 다이어트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내 몸이 회복되기까지 물론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리 오래는 아니었다.

오래 걸린 것은 마음의 문제,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내가 벗어나게 되기까지다.

일단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면 몸은 저절로 빠르게 돌아온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 자연스럽게, 어느새 돌아와 있다.  

    

우리가 꼭 그렇게 날씬해져야 할 필요는 없다. 다이어트가 인생 최고의 과제가 되는 건 정말 억울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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