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는 심심하면 글을 썼다. 글은 종종 감정의 해소 창구가 되어 주었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추스르는 것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의 시간들이었다. 자존감이 떨어진 나에게 편지를 써주며 다시 기운을 차리기도 했고, 내가 겪은 부당한 일에 대해 끄적이며 남 탓, 사회 탓을 하기도 했다. (주로 이런 목적으로 글을 쓴 것 같다.) 어쨌거나 다 즐겁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일을 마치고 얼른 집에 가서 생각난 것을 적고 싶기도 했다. 글 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 적이 있었다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가 부담스러워졌다. 아마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부담스러운 이유는 스스로에게 너무도 낯부끄러운데... 바로 남에게 내 글을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부담을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쓴 글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좀 황당하곤 했다. 읽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이걸로 교수님한테 평가받는 것도 아니며, 누가 내가 쓴 내용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유명인이라 한마디 한 글자도 조심해야 하는 처지도 아닌데, 대체 난 무엇을 그렇게 부담스러워하고 누구를 그렇게 의식한단 말인가. 부담을 느낄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넌 작가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니야. 쓰고 싶은 대로 막 쓰지 왜 부담을 느껴? 진짜 웃긴 애네."
게다가 나는 작가가 생업도 아니다. 나는 작가를 생업으로 할 만큼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이것이 생업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글 쓰는 것에 나의 생계가 달려있다니. 오 생각만 해도 불안하다.
그럼 난 먹고 살 걱정에 전전긍긍하다가 글쓰기를 싫어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꿈은 같지 않을까. 낯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순 없지만 (나만 별걸 다 부끄러워하는 건지. 그러나 사람은 사실 다 비슷하지 않나.) 글쓰기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꿈을 한 번쯤 꾸어 보는 것이다. 아니 어차피 솔직해지는 김에 진짜 솔직하게, 사실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먹고 살 걱정 없이 우아하게 글만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비슷하기도 하면서 참 다르기도 하다. 브런치에서 글을 읽다 보면 "올해는 책을 낼 거다" 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일단 선포 후 자기를 실천으로 몰아가는 그런 스타일) 브런치에 통과한 후 그 사실을 자랑스레 알리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나는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이 사실을 간신히 고백했으니,차마 내 글을 보여줄 수는 더더욱 없었다. (아직도 그렇다) 아무래도 나는 평균보다 좀 더 소심한 축에 드나 보다.
하긴 기억을 떠올려 보니 나는 댓글조차 거의 달아본 적이 없다. '거의'라고 한 이유는 내가 딱 한번 댓글을 달아보았기 때문인데 바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학생을 얕잡아보는 남학생의 글에 단 댓글, 그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댓글이었다. 물론 내가 당시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학생이어서 그랬다. 난 내가 그렇게 열성팬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덕질의 힘은 이렇게나 위대한 것이다.
그런데 난 왜 하필 독후감을 쓰고 있을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저녁 술자리에서 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이런 망할 성향(소심하고 부끄러워하는 것) 때문에 독후감을 쓰고 있다.
독후감은 '나'와 한 걸음 떨어진 글일 수 있었다. 책의 내용 뒤로 숨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나는 독후감을 쓰게 된 것이다. 물론 독후감에도 글쓴이가 드러난다. 그러나 덜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거의 안 드러날 수도 있다. 물론 그럴수록 좋은 독후감은 아니게 될 것이지만.나는 나를 드러내고 싶으면서 드러내기는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독후감을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처음 내가 브런치에 지원할 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써서 보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지만, 그때도 나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쓰려고 노력했다. 뭐 객관적인 척을 했던 것 같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이렇대요." 이런 느낌. 그런데 나는 떨어졌고, 소심쟁이는 즉시 자신감을 잃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별로 읽을만한 글이 아닌가 하며 3일 정도 좌절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느 때처럼 위로의 글쓰기로 자신감을 회복한 후, 다시 도전했다. 물론 자신감은 완전하지 않았기에, 내 얘기로 글을 쓰진 못하고 친구 이야기를 빌어왔다. 그리고 또 떨어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나는 책과 영화 리뷰를 써서 지원했다.
활자중독에, 독서광이라는 식으로 나를 소개했고, (물론 책을 매일 읽지만 중독은 아닌데 좀 과장했다.) 계획서에도 앞으로 책 리뷰, 영화 리뷰를 할 것이라고 썼다.
나는 내가 만약 통과한다면, 책과 영화 리뷰는 때려치우고,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이나 실컷 늘어놓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웬걸, 나는 통과 후에도 책과 영화 리뷰밖에는 쓸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은 곧 '나'였기 때문에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길 간절히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두려워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그랬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수용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진짜 자기 모습이 비난받거나 거부당할까 봐이다. 가면이 비난받을 때 우리는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니까 그렇다. 그러나 가면이 아닌 진짜 '내'가 비난받는 것은 큰 상처가 된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상처 받을까 봐 그동안 너무 가면만 쓰고 산 것일까. 나를 드러내는 것이 내게 너무 낯선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온라인 상에서도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면은 답답하고 숨 막히는 것이다. 나는 진짜 나를 숨기고, 아무런 특징도 기억나지 않을 사람이 되는 선에서만 나를 오픈하며 살았다. 그러니 인생이 노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표현하라고.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니, 오히려 더 재밌고 즐거운 인생이 될 거라고.
일단 네 글을 자기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나는 술김에 약속했고, 그래서 내가 진짜 '아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글을 보여주어야 할 판이다. 이래서 술김에는 약속을 하면 안 된다는 건데, 어제는 너무 많은 약속을 해 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 나는 남자처럼 머리를 자르겠다는 약속도 해버렸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놈의 여성스럽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듣고 자란 것이다. 물론 친구는 여장을 하고 밖에 나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나만 손해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반응을 걱정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니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읽은 모든 글쓰기 책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한 가지는 피드백을 받아야 글이 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읽은 글쓰기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힘 있는 글쓰기'라는 책에서 저자는 꾸준히 강조한다.
기꺼이 읽어주려는 소수의 지인을 활용하라. 안전한 독자를 확보하고 친구에게 말하듯 쓰라. 공유하라. 글쓰기의 본질은 주는 것이다. -힘 있는 글쓰기, 피터 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