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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Sep 27. 2021

폴리아모리가 하고 싶은 연인

연인의 폴리아모리를 거절했다.

마음이 복잡하여 아무말이나 어디든 쓰고 싶은 날이다.

그러다 잊고 지냈던 브런치가 생각나 1년여만에 브런치를 열어보게 됐다.

알림에 들어가보니 300일넘게 글을 올리지 않았다는 브런치 팀의 메세지가 와 있다.

오늘을 계기로 다시 글을 올릴 수 있으려나?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며칠 전 나의 연인이 폴리아모리가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췄다. 상대도 있다.

폴리아모리는 비독점점 다자연애를 뜻하는 말로, 말그대로 다자연애이며, 비독점이다. 폴리아모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나는 이 전제에 매우 공감하는 입장이며, 타인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은 상대의 욕망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모노가미(일대일 연애, 우리가 보통하는)에 익숙한 일반 사람들의 경우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미쳤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ㅎㅎ 또는 존중하지만 나는 안되거나 그럴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기준을 알 수 없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고 싶은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다.

각자의 가치판단은 잠시 내려놓은 채,

오늘은 그냥 어디에다가라도 내 감정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일 뿐이다.

(이럴 땐 보통 sns에 짧게 쓰던데, 뭔가 써야겠어 하니 생각나는게 브런치라니, 참 사람이 안 변한다ㅎㅎ)

그래서 글이 감정적이고 내 위주이고 말이 횡설수설하고 아마 그럴 것 같다. (글이란게  다 그렇지만..)


며칠 사이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과 오갔던 말들은 정리해서 차차 풀어나가고 싶다.

우리는 근 3일간 순수대화시간으로만 15시간은 족히 쓴 것 같아서 이것을 정리해야하지 싶다.


글을 쓰지 않는 1년 사이 사유조차 멈추었던 나에게, 이번 일은 폭풍처럼 생각을 쏟아내게 했다.

오랜만에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그를 통해 얻어진 값진 사유들도 많았다. (그래서 머리가 터질것 같고 직장에서도 집중이 잘 안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하지만 오늘은, 오늘 느낀 감정에 대해서만 주로 쓰고 싶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든 것은 오늘 느낀 복잡미묘하며 참담한 심정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짧게 요약하자면, 우리는 동거중이며, 남자친구가 제목대로 폴리아모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췄다. 며칠 전 만나고 온 A라는 친구와 대화가 잘 통했고, 결이 비슷했으며, 서로 이성적인 호감(설렘 같은 거)도 약간 느꼈다고 했다.


그 후 며칠에 걸쳐 우리는 15시간 이상의 긴 대화를 했고,

지금은 정말 짧게 표면적인 결론만 말한다.


나는 거절했고, 남자친구는 그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단 우리는 둘 다 폴리아모리에 대해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미쳤나 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아님을 밝힌다. 폴리아모리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도 많고,' 만약 그러면 어떤 감정이 들까' 같은 이야기도 재밌게 나누곤 했다. 아무튼 서로 매우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평소 대화도 많고, 무엇이든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믿으며, 상대가 서로에게 솔직한 것도 진심으로 믿고 있다.

  남친이나 A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 염려되어 부연설명하면, 남친은 내가 있음을 숨기지 않았고 따라서 A도 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  A는 폴리아모리에 긍정적이고, 나도 폴리아모리에 긍정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에게 설명한 내 입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새로운 사람을 원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망이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라 하지 말아라 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니, A와 만나게 되면 나는 헤어지겠다.


이렇게 나는 공을 그에게 돌렸다. 그는 나와 관계를 맺거나, A와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 하면 되었다.

그는 내가 현재 받아들일 수 없다면 당연히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내가 훨씬 소중하기 때문에 A와는 이제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연락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끊겨버리면 상대(A)가 당황스러우니, 마지막으로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자기 입장을 이야기해도 되겠냐고.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었기에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어제 내내 우리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버렸고 결국 연락할 틈을 놓쳤다.


주말이 지났고 월요일이 되어 출근을 했다.

페이스북에 가입한 글쓰기 그룹에 뭐가 있나 둘러보는데,

페북이 내가 알수도 있는 사람이라면서 친구들 목록을 보여줬다.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거기서 나는 A를 발견했고, 손가락이 절로 프로필을 누르는 경험을 하게 됐다.

A는 게시글을 많이 올리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게시글을 내려보았다.

 

남자친구와 만나고 난 후 그녀는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을 읽고 내 심정은 복잡해졌다. 뭔가 참담까지 기분이 들었는데 왜 그런지 아직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냥 기분만 느낄 따름이다.


다른 사람 얘기를 자세히 할 수 없기에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녀는 페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힘든 점 등을 잘 이야기 하는 사람이었고,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위로하고 위로받기도 했다. 내 남자친구도 그러던 중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글을 통해 알게 된 남자친구는 A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해준 사람이었다.

여러가지 표현들이 있었지만 그대로 쓰기가 그래서 문학적 감성없이 바꾸었다. (사실 재능이 없다..)

너무 잘 통했고, 계속 함께하고 싶고, 소중한 사람이고 그런 내용들이다.


이번 사건(?)에서 이성적 호감은 플러스알파이지 메인이 아님을 나는 잘 이해하고 있다.

A의 글도 연인이나 남친으로서의 뭐 그런 설렘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남친이 말하길 A와 나도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A의 글을 보고, 나는 A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됐다. 내가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서 대화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호감과 매력을 느꼈는지, 어떤 신선함을 느꼈는지,  타인을 안다고 생각하는게 자만인줄 알면서도, 다 알것같은 느낌으로 느껴버렸다.

거기에 이성적 호감이 플러스 된 느낌까지, 어떤건지 알 것 같았다.

왜 그렇지...그날 카페에서 만난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표정을 했을지가 머릿속 영상으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냥 내가 너무 잘 알 것 같은게 내 감정을 이상하게 만든 범인일 것이다.


1. A가 내가 느낀 감정을 거의 비슷하게 느꼈다는 사실이 유쾌하지 않음과 동시에,

2. A에겐 남친이랑 대화를 나누는게 너무나 위로가 되고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1번만 알아버렸으면 복잡하지 않았을텐데, 2번을 알아서 복잡했다.

세상엔 못되 처먹은 인간들 때문에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 많고,

그런 트라우마는 쉽게 없어지지 않으며

결국 필요한 건 사람이고, 진실한 관계라는 걸 알고 있다.


꼭 어떤 일이 아니어도,

벽없이 이야기할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는 사람이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다.

결이 잘 맞는다는 것은 내 경험상 절대 단순하지 않으며, 서로 깊이 교감하는데 있어 필수적이었다.

A에게 남자친구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연인이라는 이유로 A에게 이런 관계를 막을 수가 있을까.

나의 연인은 다른 여사친과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동안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는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을 때 나에게 종종 얘기해주곤 했고, 그것은 또 우리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번 일이 이전과 다르게 다가온 것의 핵심은 서로 이성적 호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더 설명을 쉽게하자면 썸타는 느낌? 같은 것을 둘 다 느꼈다는 것이다.

와 이것(성적 호감)이 이렇게나 중요한 거였다니! 나는 새삼 깨닫고 조금 놀라버렸다.

(또 부연설명을 하자면 성적호감이 섹슈얼한 것만 얘기하는게 아니다.)


글을 이래서 써야 하는구나 방금 깨달았는데,글을 쓰면서 핵심이 그게 다가 아님을 알게 됐다.

내가 알아버린 1번의 감정, 깊고 특별하다고 생각한 감정을 다른 사람과 느꼈다는 게 싫다는 걸 알았다.

남자친구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통해 나는 A가 다른 여사친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성적호감의 측면에서도, 이루어진 교감의 종류의 측면에서도, 그 깊이에 있어서도.

그런데 그것은 나랑만 느껴야 하는 것일까. A에게도 남자친구는 소중하고 필요해 보인다.


남자친구는 오늘 A에게 전화를 해서 의사를 전달했는지 모르겠다.

남자친구는 어떻게 입장을 전달했을까. A는 남친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그리고 어떤 마음일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왠지 참담하다.

그렇다고 그에게 그냥 A랑 만나라는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복잡하고 미묘하고 참담하다.

남자친구의 욕망보다 A가 더 신경이 쓰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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