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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Oct 01. 2021

남자친구의 여자친구

나는 다자연애가 가능한 사람일까.

전편에 이어.


전편에서 말했듯 내 남자친구는 얼마 전 나에게 폴리아모리를 하고 싶다는 뜻을 비췄다.

폴리아모리는 일대일 연애가 아니라, 여러 명의 연인과 관계를 맺는 다자연애를 말한다.

아주 예전에 손예진 주연의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런 것이다. 극 중에서 손예진은 남편 덕훈이 있었지만 남편을 한 명 더 두겠다고 한다. 영화는 덕훈이 어쩔  없이(손예진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게 내 앞에 지금 벌어진 일이다.



그날은 남자친구가 sns를 통해 알게 된 A라는 친구를 만나고 온 날이었다. 내 남자친구와 A는 그날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만났으며, 만나서 대화가 매우 잘 통했고, 서로 이성적인 호감도 느꼈다.

동시에 그날은 평소 동거하던 우리가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고, 우린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그날 있었던 이러저러한 일을 말하며 하루는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그의 팔베개를 고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생각과 감정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을 때의 긴장감, 분함, 억울함, 어쩔 줄 모르겠음 등이 뒤섞여 있었던 것 같다.


저번에도 밝혔지만 사실 남자친구와 나는 평소에 폴리아모리를 주제로 대화를 여러 번 했었다.

'폴리아모리'라는 주제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재로 삼으면 정말 여러 가지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주기에, 우리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폴리아모리를 자주 꺼내오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남자친구는 다른 이성 A를 만나고 와서 나에게 폴리아모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춘 것이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인가)


우리는 예전에 실제 그런 상황이 오면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궁금해했다.

쿨할 수 있을까? 진짜 이상적으로 서로 지지해주며  응원해줄까? 아니면 보통의 연인들처럼 슬퍼하거나 화를 낼까? 마지못해 알았다고 할까?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할까? 등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러나 진지하게 했었다. 그리고 결론은

"지금은 진짜 모르겠다. 닥쳐봐야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였다.


그리고 이제 진짜 그런 상황이 왔다. 드디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있을 기회가 온 것이다.

.

.

.


결국 난 거절했다.

뭐 현재의 나는 그런가 보다.

단순히 "다른 여자와 만나는 게 싫어"는 아니다.

몇 년간 함께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함께한 우리 사이에는 많은 감정, 또 생활이 얽혀 있었다.

그것들 역시 나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연인의 다자연애를 받아들인 경우 크게 세 가지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1. 그래 축하해. 네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좋다. 네 삶이 더 확장되기를 응원할게.

(비꼬는 거 아니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를 쓴 것입니다.)

2. 좀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더 넓은 관계로 확장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해보자

3. 내가 거절하면 나와 헤어질 것 같은데...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게 싫지만 헤어지긴 너무 힘들어.

-> 할 수 없이 수락


나는 3번은 정말 하기 싫었다.

아니하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그건 정말이지 너무너무 구려서 안될 일이다.  나 스스로에게 말이다.

1번은 아니더라도 2번 정도 마음은 되어야 거기에 나의 적극성이 있을 것 아닌가.

새로운 관계에 도전해보는 계기,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하며 기존의 좁고 좁은 이성관계의 정의를 확장하는 사유의 시간들.

그런데 그런 것에 도전할 마음과 여유, 상대에 대한 신뢰가

현재의 내게는 부족한 것 같다.


현재의 나는 1번도 아니고 2번도 아닌데,

내 욕망과 감정을 속이고 쿨한 척 알았다고 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나 스스로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싫다.

지금 당장 힘들지라도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 나중에 후회를 많이 한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나는 이미 너무 서로에게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헤어지는 것을 상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쩌면 그냥 알았다고 하는 것이 내가 당장은 덜 힘들 것 같은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나 스스로에게 너무 비굴한 것 같아서 그 또한 참을 수 없었다.


가득하게 느껴지는 모순들과 그의 기만을 언어화할 수 없어 나는 결국 울어버렸다.

그는 내가 울자 속상해하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그가 나를 위로해주는 순간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는데, 당시엔 왜 그런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나는 다 말해야 하는 성격이라 말을 했고, 그도 인정해서 사과를 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그의 말하기 방식이 잘못되어서 그랬다. )


현재의 내가 1번과 2번이 아닌 것은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고,

3번은 죽어도 싫어서 나는 거절을 했다. 헤어짐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해했고 받아들였고 우리의 관계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결론을 A에게 말하기 위해 통화를 하겠다고 내게 허락을 구했다.


그는 A와 전화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1시간이 넘는 통화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이틀이 지났다.


나는 A의 SNS에 또 들어가 보았다. A가 글을 남겼을 것만 같아서.

A도 나처럼 어딘가에는 자신의 마음을 써야 했을 테니까.

하루에 하나씩은 글을 올리는 A의 요즘 SNS 내용은 다 남자친구의 이야기뿐이다.

슬픔과 안타까움, 단지 이성적인 것만은 아닌 애정의 표현들.

그리고 나와 남자친구가 공유했던 감정을 A도 느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문장들.


A의 새 글을 읽을 때마다 복잡해지는 마음과

동시에 아주 약간씩 이런 감정에 익숙해지고 있는 듯한 나를 발견한다.

남자친구는 당연히 A의 SNS를 읽을 것이고, 그때 그의 마음이 어떤지도 궁금해진다.


사랑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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