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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Dec 19. 2021

혼자있는 주말

혼자가 더 좋다는 말

동거라는 주거형태를 취한지 5년째다. 중간에 몇 달은 혼자 살았고, 사이에 파트너는 한 번 바뀌었다. 

동거를 오래하다보니 내 일상에 혼자는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규칙적으로 또 불규칙적으로 하루에 몇 시간이 주어지기도, 주어지지 않기도 했다. 나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번 토요일, 일요일은 파트너가 아침부터 일을 하러 나간다. 덕분에 난 주말 쌩 이틀을 혼자 지내게 되었다. 

평일에 쌓인 피로 때문에 토요일은 그저 잤다. 영화를 3편 보았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 나는 조금 들떴다. 어제는 피로를 푸는 시간이었고, 오늘이야말로 뭔가 혼자 지내는 시간을 그럴듯하게 보낼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파트너가 나가고 나는 바로 일어나서 집을 치웠다. 이상하게 파트너가 있을 때는 잠이 깨고도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다. 빨래를 돌려놓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에 설거지를 하고 가스레인지를 닦았다. 내 파트너는 절대 기름때를 닦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넣었다. 

오늘 내게는 해야할 공부가 조금 있었다. 후딱 해치운 것은 다이어리에 선을 긋기 위해서다. 

이제 티비를 보며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할 차례다. 이렇게 보람찬 주말 오전이라니. 이제 12시다. 


왜인지, 그와 함께일 때 보람찬 주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실컷 늘어져서  침대에서 개소리를 하고, 각자 핸드폰을 하다가 1시에나 점심을 먹고 마는 것이다. 


나는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이건 어제부터 생각했던 계획이다. 출발할 때는 상당히 귀찮았지만 도착하니 기분이 한껏 고양됐다. 일주일 전 나는 책 한권을 예약했고, 오늘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내 예약은 취소될 판이었다. 만기일에 간신히 온 주제에 나는 도서관에 일주일에 한번씩 오기로 다짐한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빌리려던 도서를 찾고 나서도 한참을 책을 뒤적이며 서가에 머물렀다. 


한 권만 빌리기는 영 아쉬워서 더 빌릴 책을 탐색하기 위해 알라딘에서 신간을 검색하기로 한다. 저 뒤에 소파에 좀 앉아볼까. 헉 우리반 아이가 보인다. 주황이를 굳이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종종 사람을 모른척한다. 아마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종종 이러는 것 같다. 대체 우리는 왜 그러는걸까.


나는 에세이코너를 떠나 철학코너로 갔다. 책선반을 따라 제목을 훑어본다. 예전에 읽고 싶었던 책들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육식의 성정치. 도시를 걷는 여자들. 그러나 오늘은 빌리기 싫었다. 요즘 나는 외국인 저자의 책은 읽지 않고 있다. 번역된 글을 읽는 것도,  베어있는 문화적 차이들을 이해하며 따라가는 것도 피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의 나는 술술 읽는 것만 읽고 싶다는 욕구에 충실하고 있다.


결국 3권 중에 2권만 빌린다. '욕심내지 않기로 해.'

사실 책을 빌린 다음 내게는 중대한 계획이 있었다. 도서관 옆 김밥집에서 참치김밥을 사는 것이다. 

집에 가서 책을 보며 참치김밥을 먹을 생각에 나는 조금 신이 났다. 아니 사실은 프레즐 때문일수도 있다. 도서관에 출발할 때부터 내 머리는 프레즐을 자동 연상했다. 그것은 도서관 1층에 있다. 


나는 먹고 싶었지만 고민했다. 20대의 나는 살이 찔까봐 갈등했을 것이다. 30대의 나는 속이 불편해지는 것을 염려한다. 20대와 30대의 몸은 정말로 달랐다. 프레즐은 식사로 때우기엔 부족하고 간식으로 먹기엔 과했기에 결국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그러나 결국 프레즐을 사러 발걸음을 돌렸다. 여유로운 독서를 맞이할 주말의 한낮, 아무래도 프레즐이 필수품인 것 같았다. 나는 가게 앞 스탠딩 메뉴판를 보며 고민했다. 소심한 나는 메뉴를 미리 정하고 계산대 앞에서 빨리 주문하는걸 선호하는데, 직원이 날 기다리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하기 때문이다. 


카페에 들어서니 곧바로 유혹에 휩싸인다. 프레즐과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정하건대, 조금 허세스러운 감정이긴 했다. 그러나 가방 안의 따끈한 참치김밥이 식는 것은 싫었다.


앞에 있는 여자는 오리지널 스틱을 주문하자 직원은 15분이나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여자는 포기하고 크림치즈 스틱을 주문했고, 둘 중에 갈등하던 나는 15분 기다리란 소리를 듣고는 오리지널 스틱으로 마음을 굳혔다. 15분 간 카페독서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참치김밥도 15분은 따끈함을 유지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레즐은 10분도 안되서 완성됐다. 그 여자도 15분까지는 안기다려도 됐을텐데.


집에 와서 음식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빌려온 책은 손을 많이 타서 잘 펼쳐졌다. 새 책을 보며 무얼 먹기는 힘든 법이다. 새것은 뭐든지 좀 뻣뻣한 구석이 있다. 침대에서 책을 보다 잠에 들었다. 자는 사이 잠시 깨서 파트너와 카톡을 하기도 했지만 답도 못하고 잠에 빠져 들었다. 일어나니 어느새 5시. 2시간의 낮잠은 나의 몸을 개운하게 했고, 이런 호사스런 여유를 누린 것은 심리적으로 꽤나 만족감을 줬다. 나는 무려 충만함이라는 드문 감정에 휩싸였다.


'온종일 혼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꽤나 괜찮구나. '

하지만 가끔일 것이다. 나는 자주 외롭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혼자있는게 편해." "혼자가 더 좋아." 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솔직히,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는 내가 원할 때 누가 있어주길 바라고, 혼자 있고 싶을 땐 알아서 나를 혼자 두었으면 한다. 


나는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이 외로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종종 외롭기는 싫은데, 맞춰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부침과 소모는 겪지 않으려 한다. 이것을 깨달은 나는 앞으로의 삶에서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함을 안다. 현재의 나에게 이 선택은 쉬운 편인데, 미래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상상력이 부족한 내가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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