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스 Dec 20. 2021

일요일 밤의 우울

출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일요일 밤은 언제나 우울하다. 일을 하러 간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이 이렇게 우울해질 수 있다니.

내 일이 그렇게까지 싫은 것도 아님에도 일이란 자체엔 이런 지긋지긋한 속성이 있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제목이 생각난다.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으로 충분히 공감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그 내용이 아니면 어쩌지)


침대에서 파트너와 쓸데없으며 우울하고, 희망일랑 구덩이 저끝까지 집어던지는 담소를 나눴다. 이해할 수 없었다. 오후 6시까지 무려 충만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던 내가, 자정에는 죽는게 낫겠다 싶은 생각까지 하다니. 감정이란 이렇게 변덕이 죽끓듯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진짜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라는 생각은 셀 수 없이 했고, 심지어 죽을 생각을 하는 그 순간마저 나는 내가 안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스물아홉 생일, 1년후 죽기로 결심하다 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제는 라스트 홀리데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7번정도 본 것 같다.


두 작품은 우울하기 그지없던 시절에 좀 더 나은 기분으로 살아보려고 애썼던 애처로운 나의 시도들이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는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 정도 되겠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하다> 내용 스포


못생기고 뚱뚱하고 능력도 없던 여자는 이렇게 살바엔 1년 후에 죽자고 결심하고 1년간 하고 싶은대로 산다. 마지막 목표는 라스베가스 카지노. 멋지게 도박이나 한판하고 죽기로 결심한다. 1년간 여자는 누드모델로 하고 호스티스도 하고 이전과 달리 생에 적극적으로 나서본다. 디데이, 여자는 목표한대로 카지노에 갔고 결심대로 도박을 했고, 돈을 다 잃었다. 그러나 1년간 다르게 산 결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고 죽지 않기로 한다.


나는 29살에 이 책을 읽었다. 이렇게 살기는 싫은 사람에겐 확 꽂혀서 읽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이 아닌가. 깊은 감동은 없었고 재미와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어차피 죽을거면 재밌게라도 살아보는게 낫지. 그만 우울에 빠져. 나도 좀 적극적으로 살아보자.' 

학교 숙제로 받은 독후감처럼 나는 교훈을 짜내며 스스로 다짐했다. 역시나 그 순간에도 알고 있었다. 이 다짐마저 나에겐 자극이 전혀 안된다는 것을. 기분을 낫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다짐해봤을 뿐이다. 


어차피 죽을 용기도 없다. 나는 어디서 그런 약을 구하는지도 모르고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평범한 사람도 약을 잘 구하던데), 칼은 아플까봐 싫고, 떨어지는건 쫄보라 결국 못할 것이다. 

당신이 곧 죽는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사회의 선생들이 있다.

심드렁해져버린 나는 이제 그런 질문 앞에서도 감화되지 못한다. 그래서 꿈꾸는 다락방 같은 책을 싫어한다. 

추상적인 말만 늘어놓는 글. 고3 자극문구 같은 글. 오 진짜 싫다.


이 책은 다시 읽을 가치가 딱히 없지만 라스트 홀리데이는 힘들때 꺼내어 보는 영화다. 



<라스트 홀리데이> 내용스포

여자는 죽을 병에 걸려 3주밖에 못산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래서 개진상 상사가 있던 소매점에 사표를 내고 모은 돈을 다 싸들고 평생 가보고 싶었던 호텔에 간다. 이 호텔 셰프의 엄청난 팬이다. 3주밖에 안 남았다니..여자는 원래 엄청 소심한 사람이었는데, 이제 곧 죽는다니 매순간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오진이었다. 


영화는 뻔하지만 따뜻하다. 사실적일수록 좋은 작품인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씰데없이 우울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가 등을 만져주었고, 참을 수 있을 정도의 기분좋은 간지러움을 느끼며 나는 잠을 청한다. 어쨌거나 내일 출근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있는 주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