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면 괜찮지 뭐가 뚱뚱해. 친구들은 서로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각자 열심히 다이어트에 매진했다. 가식적이라는 게 아니다.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정말 진심으로 친구들이 전혀 뚱뚱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나의 몸과 다른 여자의 몸에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친구는 보통체중, 과체중이어도 괜찮았지만, 나는 말라야 했으니까. 사람들은 비만인 여성이 날씬한 여성이 입을 법한 옷을 입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칭찬을 연발한다.
-너무 멋있어. 너의 당당한 모습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하는 모습, 너무 아름다워.
-너무 잘 어울리고 예뻐. 사랑스러워
나는 이런 말들에서 찝찝함을 느낀다. 하지만 저 말들은 참 좋은 말이고 그 사람에게 실제 응원이 됐기 때문에, 이런걸 찝찝해하는 내가 냉정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문은 들었다. 저들의 반응은 솔직한 나의 마음과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이 뚱뚱하지만 몸매검열없이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좋았다. 그런 여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그들의 자신감있는 모습도 부러웠다. 나도 내 몸에 상관없이 저럴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뚱뚱한데 자신감있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날씬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지만, 부럽지 않았다. 솔직히 그들이 예뻐보이지도, 아름다워보이지도 않았고, 그 옷들이 잘 어울린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내가 부러운건 비만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그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나같은 소심쟁이는 꿈도 못꿀..그렇지만 내가 그런 몸이 되기는 싫다.
-정말 대단해. 너를 응원해. 그런데 내 몸이 그런 건 안될 것 같아… 난 살을 빼야겠어. 그럼 이만.
사람들이 하는 칭찬은 진심어린 응원과 “내 몸만 아니면 돼.” 가 함께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두가지 마음은 모두 진심이다. 마르지 않은 친구에게 건네는 내 말도 그러했다.
-아니야 뭐가 통통해.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이지.
나는 친구가 살이 쪘다고 푸념할 때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나는’ 그냥 살짝 통통해졌네 라고만 생각했다. 친구가 너무 좋은 사람,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 친구가 언제나 좋았다. 그렇지만 내가 친구의 몸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볼 때 괜찮다고 느끼지만 내 몸이 그래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마음의 정체가 궁금했다. 다른 사람의 몸은 존중이 되는데 내 몸은 존중이 안되는 것인가? 이건 그럼….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존중한다는 뜻인가? 내가 나 자신은 몸으로 보고, 다른 여자는 총체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인가? 이것은 일면 괜찮아 보일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자신만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니까. 내로남불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이기심을 이기고 나보다 타인을 존중한다라? 내가?
당연히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나는 다른 여자들의 몸을 존중했다기보다 그들의 몸이 어찌되든 상관없었던 것일 뿐이다. 거칠게 말해서 존중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거칠게” 라고 말한 이유는 몸 때문에 괴로운 이들에 대해 내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나는 존중을 가장한 무관심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동성애자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내 가족이 그러면 절대 안된다고 한다.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존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동성애자든 말든 관심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진짜 존중했다면 “우리 가족이면 절대 안돼지,” 라고 말할 수 없다.
존중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한 뒤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위치에서 처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를 인식하고 인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의제에 자기가 싫다는 말을 안했다고 존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관심이 마냥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모든 세상에 관심을 갖겠는가. 모든 인간이 나와 관련된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일 뿐이다.
하여간 내가 타인의 몸에 더 관대한 것은 타인의 몸을 존중해서라기 보다 남의 몸이 뚱뚱하든 말든 내 몸만 날씬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몸을 “진짜로” 존중한다면, 내 몸을 존중 안 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 몸은 되고, 내 몸은 안되는 것은 그냥 우리가 여성의 몸을 존중한 적이 없었던 것 뿐이다.
일단 이 사실을 받아들인 후에 우리에게 “진짜 존중”을 해 볼 기회가 생긴다. 나의 몸에 대해, 다른 여성의 몸에 대해. 타인의 몸을 존중하는 것은 일단 두고, 내 몸이 진짜로 존중되는가만 보면 된다. 그러면 다른 여성의 몸은 저절로 평가하지 않게 될 테니까.
여기서 여성과 남성은 차이가 있다. 껄껄이는 자기 몸은 평가하지 않고, 여자의 몸만 평가했다. 자기 몸을 평가 대상으로, 어때야 하는 그 무엇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다른 여성의 몸도, 자기의 몸도 평가대상으로 본다. 그렇기에 다른 여성의 몸엔 약간의 여지를 허용해도 자기 몸에는 더 박하다. 여성의 몸은 날씬해야 한다는 것을 전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데, 자신이 바로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자기 몸을 존중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조차 혼란스럽다. 있는 그대로 자기 몸을 마음에 들어하라고? 그러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는데? 그런게 대체 뭐야?
한마디로 정리해 줄 수 있는 해결책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있었으면 나보다 똑똑한 전문가들이 시원하게 촥 제시했을테니까. 그런데 나는 조금씩 나의 몸을 존중하는 것 같다. 100점은 없고 영원히 도달할 수도 없을 것이지만, 적어도 나의 몸에 매여 있지는 않게 되었으니까. 내 몸에 대해 생각하느라 내 공부와 직장생활, 인간관계에 방해받지 않게 되었으니까.
나도 모르는 새에 여러가지 방법들을 적용했을 테지만 상당히 직관적이고 쉬운 방법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나는 남자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썼다. 이는 내가 겪어봤던 남자들에게 배운 방법이다.
남자 동기가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하면서 예쁘고 어린 여자를 원했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솔직히 거기에 못미쳤다. 그는 정말 모를 수도 있겠지만 뒤에서는 뒷말이 나온다.
-김대리는 자기 얼굴, 자기 몸 생각 안하나봐..
맞다. 그는 자기 얼굴과 나이, 뱃살을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 동기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대체 자기 얼굴 생각 안하나?
안 한다. 바로 그것이다. 이 방법을 따라해보자. 남성들은 이미 쓰고 있는 방법이다. 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이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다. 자기 몸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신경을 덜 쓰고 “왜 내가 그런걸 고려해?” 라는 태도로 살다보면, 세상 살기 조금 편해진다. 여자들은 외모에 대한 자기검열이 심한 편이라 자신을 더 낮추어 평가하곤 한다. 그럴 때 한 번 편하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존엄성을 가진 인간 아닌가.
그게 바로 규칙 외부에 있는 주인이 갖는 자유이다. 규칙을 정하는 자는 규칙 외부에 있으면서 자신은 규칙에서 예외다. 왕이 그렇지 않은가. 권력자들도 자기는 법을 안 지키면서 국민한테만 지키라고 한다. 국민들은 왜 너는 안 지켜라고 분노하지만 그들은 속으로는 “나는 안 지켜도 돼.” 라고 생각한다. 헌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솔직히 자신을 법 외부(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경주장에서 나오면 된다. 보이지 않는 경주장이지만 인식하면 보인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는 것이다. 세상이 달라진게 없어도 내 관점이 달라지면 다르게 보인다. 그게 원효대사의 해골물 깨달음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인식한 세계에서만 살 수 있다.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여러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감과 분이 다르지 않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또한 인식에 기초한다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