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스 Oct 27. 2022

에필로그_일상이 내게로 돌아오다

'지금 여기'라는 선물

일상에서 남들이 다 하는 작은 일도 버겁다는 고민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세수하고 옷입고 지하철을 타는 등의 일상 자체가 너무 버겁다고 했다. 통찰력 있는 이가 답을 주었다.

-생각없이 하면 될 일까지 머리에서 다 그리느라, 실제 행동은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지쳐버린 것 같네요. 


이것은 정확히 나의 다이어트 이야기였다. 나는 반복해서 계산하고,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하루종일 나 자신과 싸웠다.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기계의 전원버튼은 내 손을 떠난지 오래. 이 친구는 내가 기상함과 동시에 켜져서 나를 어지럽게 했다. 그 결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쳐버렸다. 나는 종종  무언가 할 에너지가 없다고 느꼈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하루종일 내가 하는 생각이란 이런 것이다. 


(동료가 오전에 빵을 사옴) 먹을까 말까. 괜히 먹었다. 지금 몇 칼로리지.  점심은 조금만 먹자.

이따 저녁약속까지 2시간만 더 참자. 2시간 동안 간식 안 먹고 참을 수 있겠지. 걱정된다. 먹지 말아야 하는데. 집에 가는 일에 걸어가야 되네. 힘든데. 하지만 걸어가야 해. 

오늘 저녁엔 꼭 닭가슴살을 먹어야 해. 그러면 1400kcal 안으로 세이프야. 

망했어. 00이가 빵을 가져오는 바람에 벌써 칼로리 초과야. (그리고 아침부터 먹을 것을 복기한다)


나는 내가 이러고 있는 꼴을 보며 말 그대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말고 다른 여자들도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간식 먹을 때 시늉만 하고 먹지 않는 사람, 프로틴 스무디를 먹는 사람, 밥을 그냥 안 먹는 사람, 배가 안 고프다는 사람, 비싼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 등등. 그들은 쉽게 말했다.

ㅡ다이어트 하는 중이에요

ㅡ요즘 살이 너무 쪄서요ㅎㅎ(웃으며 말하기도 한다)


끝이야? 정말 그게 끝이야? 나도 다이어트 중인데 나는 많이 우울해. 맨날 속으로 저런 한심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먹을까 말까 속에서 전투가 펼쳐지고 있다고!

나는 궁금했다. 저들의 마음 속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지…  그러다 한 편의 시 속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는 사회학 전공 요구사항을 여전히 몰라, 왜냐하면 난 회의시간 내내 피자를 한조각 더 먹을까 고민했거든. 
-shiringking womem, Lily Myers.-


나는 너무 공감하여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ㅡ어쩌면 다들 나와 비슷할 수 있겠다.


하긴 나만 봐도 아무도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날씬함이 요구되는 업계의 종사자가 아님에도 직장에서 각종 다이어트 중인 여성을 너무 많이 보았다. 

ㅡ저녁에는 안 먹기가 너무 힘들어요. 남자친구랑 술 마시는 날도 있는데. 그래서 1일 1식을 하고 있어요.


내가 다 해보아서 알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들에게도 쉬운 일일리 없었다. 하기 싫고 힘든건 모두 똑같지 않은가. 관리를 안하는 여성은 잘 없었다. 정도의 차이, 실천력의 차이는 있어도 여성들에게 몸매관리는 디폴트값이 되어 있다. 


나는 그들이 아무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한 속내와 우울감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친구들과 맛집도 가고 맛있게 잘 먹고 웃고 떠든다. 그러나 그 중에는 먹을 때 덜 먹으려고 의식하는 사람, 내일 덜 먹기로 계획하는 사람, 이 순간을 위해 덜 먹어놓은 사람, 집에 가서 자책하는 사람, 결국 어느 순간 살을 보며 집에서 혼자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살에 대한 강박으로 고통받는 여자들은 당신의 생각보다 많다. 그녀들은 보여지는 것보다 더 우울하다. 먹는 것을 조절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안 먹겠다고 거절을 잘하는 사람도 어떤 전투를 치르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다이어트 계획이 지배하는 내 일상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일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모임에 참여했을 때도 나는 무엇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누구와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몸은 거기에 있었지만 의식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잃어버린 것은 "지금, 여기" 였다.


일상을 통제하는 규칙들로부터 해방된 뒤에 나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내 것을 되찾은 기분이다. 날씬해지고 싶다는 과한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뒤에 내 몸과 마음은 자유를 얻었다.


여성의 사회적 몸이란 참 복잡하다. 외모가 최고의 가치라고 배우지만, 외모관리에 절절 매는 여성은 비난받는다. 그 사이에서 양쪽의 기준을 다 만족시키기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내고 싶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현자들은 "지금 여기" 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는 일,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은 진실로 선물이다.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당신의 "지금 여기"를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길 바란다. 몰입과 기쁨이 당신의 삶에 함께 하길. 먹고 마시는 일이 즐거운 일로써 당신의 인생에 곁들여지기를 바라며.

                    

이전 15화 다른 몸은 존중하지만, 내 몸은 안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