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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스 Nov 06. 2022

장녀지만 둘째가 더 서러운거 인정.

차녀힙합

이 책은 둘째, 그러니까 집안에서 차녀들의 설움을 풀어낸 책이다. 지은이는 전둘연(전국둘째연합) 회장을 맡고 있는 이진송 씨이다. 그녀는 4남매 (딸딸딸아들) 중의 둘째딸이라고 하니 전둘연 회장으로서 자격이 충분해보인다.


나는 장녀다. 차녀의 울분이 웬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 동생이 무지 부러웠고만? 우리 엄마는 세상 말 잘듣고 모범적인(착각이 심함) 나를 때렸고, 내 동생은 나보다 훨씬 크~게 잘못해도 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차녀의 설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 동생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니다. 내 동생에게는 차녀의 설움이라고 할만한 것이 많이 없다. 물론 있겠지만 장녀의 설움과 비등한 정도? 그래서 동생과 나는 서로에게 특별한 억하심정없이 30대를 보내고 있다. 이 정도면 우리 모부는 상당히 공평한 양육자였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생각한다.

-둘째가 남동생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걸?

동생도 첫째가 오빠였으면 지금의 감정과 달랐을 거라는데 동의한다.



차녀란 이런 것이다. 집안에서 살짝 뒷전. 은근슬쩍한 차별.너무 사소해보여서 말하기도 뭣한 그런 차별

 음식차별. 아들을 나으려다 실패.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할까 걱정하며 고군분투하는 어린 시절. 가정 내 당근마켓. 라면 심부름. 컴퓨터 못 씀. 첫째 거 퉁치기. 등등.

둘째도 생일상 따로 해줘ㅠㅠ


차녀는 말 그대로는 둘째 딸을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더 넓게 보자면 위의 사람들이 "차녀"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차남도 형에 치여서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컸다면 차남 역시 '뒷전' 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장녀이지만 둘째가 아들이면, 그 장녀 역시 "차녀"의 정체성을 일부 갖고 살 운명이다. 작가도 말한다. "둘째가 아들? 그건 동생이 아니라 장남이야!" 다행스럽게도 나의 동생은 여자여서, 나는 "장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장녀"의 이점을 온전히 누리고 살았다. 동생아 땡큐.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온전히 첫째로서 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엄마는 나를 많이 혼내기도 했지만, 피아노, 미술, 영어, 한자, 수학 등을 보내며 나를 팔방미인으로 키우려 했다. (대실패 했지만.) 걸스카웃 못해서 한이 맺혔다는 작가가 말한 바로 그 걸스카웃도 시켜줬다. 지금으로 따지면 애플 신제품 뺨치는 각종 전집과 백과사전도 나를 위해 들어왔다. 옷도 당연히 새 옷이었고, 대학에 입학할 때는 백화점에 들려 가방과 지갑도 사주었다.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빵을 더 많이 사왔고, 동생은 "나는 소세지 빵 좋아한다고 했잖아!" 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럴 때 아빠는 밤식빵 좋아하는거 아니냐고 했는데 그건 내가 좋아하는 빵이다.


작가는 정확하게 이런 모든 경험이 둘째로서 있었다. 내 동생도 그 때마다 서운하지 않았을리 없다.

그러고 보니 몇 번, 동생이 차녀로서의 서운함을 표한 적이 있다.

"예전에 대학갈 때 엄마가 언니랑 백화점 가서 가방이랑 지갑 사줬잖아. 나도 대학갈 때 사줄 줄 알았거든. 근데 나는 안사주는거야."

"아니 너도 가서 사줬자나." 엄마는 민망하게 말했다.

"내가 울고 뭐라해서 사준거잖아!"


나는 몰랐다. 그 때 처음으로 차녀로서 설움을 느껴왔을 동생의 순간들을 생각하게 됐다. 나는 내가 억울한게 더 많다고 생각해왔었다.

역시 사람은 본인 생각하기에 좀 손해보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자기가 받은 건 모르거나 까먹고, 자기가 못 받은 것만 더 생각하고 크게 부풀리니까.

그래서 자기 생각에 좀 손해봤다 싶어야 실제로 공평한 수준이 된다. 나는 앞으로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기로 한다.


동생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나는 동생보다 쬐끔 더 잘했다. 엄마 아빠는 나를 기준점으로 두고 생각해서 동생의 성과를 좀 당연하게 여겼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도 나중에 들었다.


작가는 책에서 이런 말도 한다. 둘째가 첫째보다 잘나면 부모는 내심 첫째를 안타까워 하고, 둘째는 첫째를 안타까워 하는 그런 부모를 느낀다고.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을까?


운이 좋게도, 우리 사이엔 적당히 균형이 맞았다. 나는 동생보다 공부를 잘했지만, 동생은 동네에서 존예였기 때문이다. 공부 더 잘하면 뭐하나. 둘 중 택하라면 존예를 택하지.


운이 좋게 서로 오빠와 남동생 없이 두자매로 태어난 우리는 꽤나 공평한 양육을 받았다. 지금 와서 웃으며 깔깔거리고 얘기하는 것도 별로 한맺힌 사건들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동생이 여자여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 나는 가정 내에서는 차별을 겪지 않고 자랐다. 차별의 개별 사건 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그로 인해 형성된 성격이 성인이 되어서도 망령처럼 남아있다는 것. 


나의 친구는 장녀지만 나와 다르게 둘째가 남동생이었다. 내 친구는 이렇게 모범생일 수 없을 정도로 모범생이며 공부도 무지 잘하고 성실한 아이인데, 그녀의 모부는 쏟아부어서 되지도 않을 남동생에게 각종 지원을 해주었다. 남동생에겐 그런 지원이 당연해서였을까. 그 아이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 아 내 친구에게 해주셨으면 내 친구는 뭐라도 됐을텐데.


다른 친구는 아빠와 남동생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성인이 되어 탈출하듯 집을 나왔다. 엄마도 살기위해 방관했다. 그런데 모부딸이 성인이 되어 돈을 벌자 딸노릇을 요구한다. 집은 아들에게 다 상속해도 되겠냐고 묻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 딸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다. 나 같으면 바로 손절했을 텐데. 나는 그 친구가 너무 답답하여 속이 터질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자랐다면, 나 역시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인정받고 싶어서 더 애를 쓰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사랑받지 못한 망령은 성인 이후의 삶에도 지독한 안개를 드리운다. 내가 "당장 손절해!" 라고 하는 건 장녀로 태어나 장녀 대접 받고 자라서 도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과 애정을 당연히 제것인냥 받는게 첫째의 특권이라고 작가는 계속 말해준다.


나는 죽어도 못 받는걸 당연히 받고, 심지어 자기가 그 엄청난 특권들의 수혜자인지 모를때, 당사자는 이보다 빡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차녀들의 설움이 이것이지 않을까. 태어난 순서, 성별. 죽었다 깨어나도 바뀌지 않는 태생적인 것. 그것으로 가정 내 위치가 정해지고, 사람은 위치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가정은 정치적인 장소이다. 가장 정치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측면에서 더더욱 정치적인 장소다. 편안하고 기댈 수 있는 곳, 생각하면 힘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곳. 가정은 그런것 이라고, 나 역시 무의식중에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이 그런 곳이 아닌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어른이 되고도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 물론 안 후에도, 뿌리깊게 박혀있는 '가족'이라는 판타지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장녀로서의 설움도 솔직히 있었. 어린 시절 불공평하게 나만 많이 맞았으니까. 아직도 맺힌걸 보니 체벌은 진짜 안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이해는 한다. 그녀는 지금의 나보다 열살도 더 어렸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을 것이다. 나를 키우며, 이래선 안되는구나 배웠고 동생에겐 더 좋은 양육법을 쓴 것 뿐이다. 그리고 집안 사정도 더 나아졌고, 이것저것 가정사를 돌이켜볼 때 젊은 그녀는 막막하였을 것이다. 억울하지만 할 수 없지. 살다 보면 그런일 투성이니까.


가정 내에서 누군가는 주어도 더 주지 못해 안쓰러운 존재가 되고, 누군가는 적게 받고도 돌봄의 책임은 져야하는 존재가 된다. 아 불공평해. 이런 거 좀 어떻게 안되나. 차녀들 중녀들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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