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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Aug 10. 2020

나답게 육아 #12. 너의 좌절을 응원해.

반장선거에 떨어진 아들에게. 

  그 날은 연 중 1회 진행되는 자격유지 관련 교육이 있어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진행되는 교육에 참여하였다.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은 오후 1시. 내가 집으로 돌아올 시간은 정시에 마친다고 해도 5시 30분. 혼자서 4시간이 넘게 빈 집에 있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가 잘 있을까 걱정이 되어 교육 중간 페이스타임을 했는데 아이의 얼굴이 시무룩하다. 예전에 온라인 수업을 하는 사이 내가 장을 보러 갔을 때 한 것과는 사뭇 태도가 다르다. 핸드폰을 바닥에 두고 천장을 향하게 하고는 얼굴을 보이지 않기도 하고, 대답도 시큰둥. 그러면서도 연신 빨리 오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서 마음만 바쁘게 집에 왔다. 손을 씻고서 “잘 있었어?” 했더니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하며 “나 오늘 슬픈 일이 있었어. 반장선거에서 떨어졌어.” 그러면서 눈물을 뚝뚝. 


 아이고, 잊고 있었다. 오늘이 반장 선거 날이라는 걸.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도우미 친구 등의 이름으로 모두가 번갈아가며 선생님을 돕고 그 날 하루 학급의 중책(?)을 맡아보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3학년부터는 달라지는 것! 반장은 누구나 돌아가며 하는 것이 아니라 반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나 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정식으로 학교를 가자 일, 이주 지나고서 알림장에 적어 온 내용이 반장, 부반장 선거였다. 그 소식을 전하며 아이는 “엄마 나도 반장선거 나가볼까?” 했다. “음 네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봐.” 했었다. 아이는 그 주 중간에도 “oo가 그러는데 난 반장은 안 되고 부반장은 될 거 같데.”라고 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꽤 이야깃거리가 되는 거 같은데 아이 마음도 반장 선거에 나간다, 안 나간다로 왔다 갔다 했다. 내 바쁜 일상에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는데 그 주 금요일이 되어 선거를 진행했고 아이는 반장선거를 나갔다가 3표를 얻고 떨어졌다고 한다. 

 “속상했어?” 하고 물어보니 그랬다고, 그래서 학교에서도 울었단다. 친구들에게 우리 반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반장이 되겠다고 선거공약을 내걸었는데 자기를 반장으로 뽑아주지 않았으니 이젠 친구들이 말을 절대 들어주지 않겠다고도 한다. 왜 부반장이 아닌 반장선거에 나갔냐고, 몇이나 반장선거에 출마했냐고, 너를 뽑아준 친구 두 명은 누구인 것 같냐고, 떨어졌어도 그런 나쁜 말은 하는 건 아니라고, 친구들은 다른 친구가 반장이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뿐 널 싫어해서는 아니라고...... 그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냥 꾹 참고 안아줬다. “우리 아들 속상했겠네.”


 아이가 반장 선거를 나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었다. 남편은 해괴한 이야기를 다 들어본다는 표정으로 “아니 그걸 왜 나가?”라고 했다. 남편은 떨어졌을 때의 창피함, 그리고 혹시라도 반장이 됐을 때의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한 것 같다. 요즘 학교는 우리 어릴 적 초등학교 같지 않아서 반장이 되었다고 해도 엄마가 많은 일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으나 어쨌든 남편에게 아들은 ‘참 나서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이는 실제로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주목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부 미사에서도 돋보이고 싶어 하고, 전례부 등의 활동 기회가 있을 때 꼭 참여하고 싶어 했다. 발표도 열심히 하고, 우승과 순위권에 대한 열망도 있다. 남편과 달리 나는 그런 아이가 기특했다. 남 앞에 섰을 때의 긴장감을 이겨내는 아이,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아이, 메인 그룹에 속하고 선두에 속하는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작은 성취감이 아이에게 더 좋은 성취 압력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의 행동을 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같았다. “아이가 나다.”라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아들은 남편 자신이었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싫어하고, 대중 속에 묻혀 있기를 좋아하며 어떤 곳이든 뒷자리, 구석진 자리에 앉아 모나지 않게, 표 나지 않게 있다가 사적인 영역인 집이나 친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는 맘껏 편하게 행동하는 것. 그래서 아이가 손들고 발표라도 할라치면 민망해했고, 부끄러워했다. 

나에게도 아들은 나 자신이었다. 뭐든 잘하고 싶고,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다. 어디 가서나 앞 쪽에 앉는 게 편했고,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그룹에 속하길 원했다. 아이를 어떤 학원도 사교육도 시키지 않지만 뒤처지는 것이 싫어서 집에서도 꾸준히 문제집을 봐줬다. 아이가 나서서 발표를 할 때면 남편이 민망해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다음 주 발표합시다.”등의 과제가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노는 아이를 보면 나는 답답해했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성장배경 속에서 부족하고 아쉬웠던 것 또는 과해서 힘들었던 것을 아이에게 주지 않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며 그렇게 각자의 ‘열심’을 살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아니다. 나도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를 위해 매일매일 데리러 가고 노력봉사를 했던 날 중 어떤 날, 다른 아이 하나가 날 보고 “oo엄마 왔다. 좋겠다.”라고 했다. 뿌듯했다. 암. 내가 이렇게 매일같이 시간을 내고 아이를 위해 봉사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마치고 나오는 아이에게 “아까 친구 누가 엄마 와서 부러워하더라.” 했더니 아이는 별 표정의 변화가 없다. 재차 너는 좋지 않니? 물어보자 아이의 대답 “엄마가 매일 와서 점심을 조금만 더 먹으라고 하니까 난 별로예요.” 머릿속에 뎅 하고 종소리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난 엄마가 내가 있는 학교든, 학원이든 자주 와 주길 바랬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와서 좋은 것보다 와서 밥 한 숟가락 더 먹으라고 해 귀찮고 불편한 게 더 컸다고 한다. 난 그러더라도 엄마가 와주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먼저 아들을 둘 키운 육아 선배는 어릴 적부터 그 바쁜 직장을 다니면서도 늘 아이 간식을 유기농으로 챙겨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조금 커서는 “나도 남들처럼 시판 과자 좀 먹어보자.”며 유기농으로 식단을 준비했던 엄마를 원망했다는 말을 듣고는 내 맘이 다 허탈했던 적이 있다. 아이는,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데도 나는 아이에게 최선의 것을 줄 때의 기준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받아서 기쁠 것이었다. 아이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설사 물어본다고 해도 아이의 말을 온전히 듣지 못하고. 


 아이가 어릴 땐 나는 온전히 아이의 세상이었다. 내가 아이의 전부였다. 내가 주저앉아있어도 내려다봐야 눈을 맞출 수 있었던 아이가 어느새 눈높이가 같아지더니 이제는 내가 바닥에 앉은 상태에서는 아이의 셔츠 깃도 하나 바르게 해 줄 수 없을 만큼 자랐다. 내가 아이의 세상이었을 땐 그게 행복한 건 줄 몰랐고,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내 어깨너머의 세상을 볼 때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가 답답하다.  이 역시 행복인 줄을 모르고. 

그래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는 늘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이 나오는, 엄마로서 살아가는 일생의 화두인 것 같다. 단지 30년 먼저 살았다는 이유로 내가 다 안다고 단정 짓고 아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고도,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내버려 두고 어떤 것이든 네가 다 경험하고 전적으로 너의 판단이라며 내버려 두지도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되, 그 선택의 결과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결정을 했을 땐 존중해주는 것. 말이 쉽지 존중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아이와 살며 알아가고 있다. 

 내 솔직한 마음은 반장 선거에 부반장으로 나가라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떤 부반장이 될 것인지의 포부를 말할 때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정리를 한번 해 주고 싶었다. 왜 내게 이런 것이 중요할까 생각해보니 내가 나의 부모님께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내가 잘하고 싶을 때 조언을 해주는 사람, 그리고 조력해주는 사람이 부재였다는 생각. 그래서 나는 그 부분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도 부단히 지도하고, 지시하고, 알려주고, 코치하려고 애썼던 거였다. 하지만 이것도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주어야 한다는 걸 안다. 아이가 마지막 순간까지 반장선거에 나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여서 내 도움보다는 자신의 생각 정리가 우선이 되어야 했다. 


 아이는 실패를 경험하고 왔다. 반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나름의 믿음과 자신감으로 반장선거를 나갔지만 큰 표 차로 탈락했고 눈물을 흘릴 만큼 실망을 하였다. 그 좌절감과 실망을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10년 인생 최대의 좌절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애널리스트 같은 냉정한 분석이나 평가가 아닐 터. 그냥 가만히 앉아줬다. 속상했구나. 네가 속상했구나. 세상에 수많은 시련과 좌절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경험하고 왔구나. 아들아, 엄마는 너의 이 좌절을 응원한다. 실패를 경험해도 돌아올 수 있는 집 있다는 것만 네가 기억한다면, 네 선택을 믿고 격려하고 있는 우리가 있다는 것을 네게 전할 수만 있다면 이 시간도 네가 너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거름이 될 거야. 앞으로도 경험할 무수한 너만의 좌절을 엄마는 응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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