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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May 13. 2020

나답게 육아 #4. 산후조리, 육아 그리고 갈등

아이 키우는 것만도 버거운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시작은 조리원이었던 거 같다.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임신 전부터 내가 부탁을 하지도 않았는데 “난 네가 애를 낳아도 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엄마 셨기에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임신했을 때에도 축하 인사보다는 “왜 지금?”이라고 물으셨고, 입덧으로 3개월까지 음식을 못 먹다가 엄마가 싸주시던 김밥이 먹고 싶다던 말에도 묵묵부답이셨던 엄마였다. 물론 임신 시기에 대해서는 당시 갓 병명을 진단받은 나에 대한 걱정도 있었겠지만. 나는 임신과 관련해서는 엄마가 편하지 않았다. 시어머님이 “내가 산후조리해줘도 되는데 네가 불편하겠지?”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라 어머님께 산후조리를 부탁한다는 전화를 했었다. 시댁으로 들어가네, 우리 집에서 조리를 하네 이렇게 저렇게 말이 오가다가 결국 우리 집에서 조리를 하는 것으로 되었는데 마침 조리원 퇴소 날이 대학원 졸업을 위한 영어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를 먼저 집에 데려다 놓고 남편과 선수 교체하듯 집을 나와 친정엄마가 태워주신 차를 타고 영어시험을 치고서 들어왔는데 몸이 안 좋다는 느낌이 왔다. 뭔가...... 이상했다. 빨리 눕고 싶은 마음. 집에 들어서는데 와 계셨던 시어머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아이고 너는 청소도 안 된 바닥에 애를 눕히고......”로 시작하셔서는 뒷 베란다로 나를 데리고 가셔서 큰 냄비에 담겨 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건 언제 어떻게 먹고 끓여놔라.”와 주방 가스레인지에서 또 뭔가를 말씀하셨다. “어머니 저 잠시만 화장실만 다녀올게요.” 하는데도 “내 말 듣고 가.” 하시는데 그 순간 배가 아프면서 다리를 타고 뜨끈한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훗배앓이였던 거 같은데 그렇게 배가 아프면서 찐득한 혈액이 다량 흐르는 것은 출산 후 열흘 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거라 몹시 당황했었다. 서둘러 화장실을 갔고 주차하고 뒤늦게 집으로 들어오신 친정엄마가 피가 흥건한 바닥을 닦는 사이 나는 남편을 불러 갈아입을 옷을 부탁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친정엄마도 바닥을 치우고 나면 가시라 하였으니 시어머님을 일단 집으로 가시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결정이 그 후 그렇게 오래도록 내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게 할 일의 서막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는 앞 뒤 순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써 뒀던 글을 찾아보면 정확한 순서가 기록되어 있을 텐데. 어쨌든 지금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떠오르진 않는다. 그간 그걸 곱씹으며 지내지 않았다는 반증 같아 잊음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이다. 아무튼 어머님이 댁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왠지 기분이 싸했다. 그날이었나? 다음 날이었나? 어머님이 기분이 나쁘신지 모르겠으니 안부 전화를 드려보자고 해서 전화를 드렸는데 화가 나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일에 대해서 어머님께 직접 들은 게 없으니 왜 화가 나셨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내 짐작에 며느리가 아들을 통해 집에 가라고 했다는 것이 맘이 상했던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는 지옥이었다.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려 했으나 오지 말라고 하셔서 편지를 보냈다. 하루 만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갑자기 젖이 말라 그것도 모른 체 신생아에게 빈 젖을 물렸었다. 아이는 이틀을 굶었고, 그게 또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 일이 있고 한 달이 넘어 시어머님 생신을 맞아 찾아뵈었지만 내가 시댁 거실에 있는 동안 베란다에 나가 계신 시어머니를 보며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순 없었다. 이혼을 할까? 이민을 갈까? 이대로 살아야 하나?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할까? 이 년은 죽도록 아팠고, 이후 이 년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아팠다.


  육아서를 쓰기로 준비하면서 나의 못난 점, 부족한 점을 솔직히 적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조금 창피할 뿐. 그러나 이 주제만큼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했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니까. 꺼지던 불씨 다시 키우는 건 아닐까, 붙어가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 위에서도 한번 말했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시어머님과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간 매우 소원했다. 어머니도 나도 그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미국으로 살러간 동서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동서와는 그 일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지만. 그 일이 있기 전 일주일에 한 번, 못해도 이 주일에 한 번은 찾아뵙고, 신혼 때 시아버님의 말씀을 따라 일주일에 한 번씩 안부전화를 드렸던 며느리는 이제는 없다. 나는 지금 아주 편하게 산다. 연 중 꼭 찾아뵈어야지 생각했던 날을 제외하고 나머지 날들은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아니면 남자 둘만 보낸다. 어머님은 내가 가면 반갑게 맞아주시고, 예사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 텃밭에서 나온 상추 등을 넘치게 넣어주신다. 그런 걸 보면 어머님도 괜찮으시리라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함께 이야기하고 풀어낸 시간이 아니라 각자 아프고 분노하며 지나왔기에 순전히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할 수밖에 없음을 아쉽게 느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아득한 오래전, 보았던 연극 같다. 등장인물들은 어쩜 다 그렇게 하나같이 어리석었을까. 누가 누가 더 바보짓을 하나 대결이라도 하는 것 같았던 그 연극의 최종 우승자이자, 가장 바보는 나였다.


  한 때는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었던, 그러나 이제는 묻어둘 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쓰는 이유는 “젖이 말랐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이렇게도 될 수 있어요." 이런 거. 이럴 수도 있다. 심한 갈등에 이렇게까지 몸이 반응할 수도 있고, 그 결과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가 될 수도 있다.  초조함과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자 수유에 문제가 없다고 했던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 아기는 계속해서 울었는데 나는 도대체 왜 우는지를 몰랐다. 안고 달래다가 계속 우는 아이가 이상이 있나 싶어 이틀 뒤 소아과를 갔고, 그때 알았다. 젖이 나오지 않았다는 걸. 많은 스트레스들이 그렇지만 특히 가족과의 관계는 육아의 무게를 크게 가중시킨다. 온종일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도 ’나‘를 잃어갈까 봐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고, 아이는 잘 크고 있는 것인지 불안하고 안고 업고 달래느라 몸은 지치고 힘든 것이 육아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마음으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는 가족과의 갈등은 깊은 좌절과 우울로 이어졌다. 아이를, 신생아를 이틀 남짓 굶겼다는 건 내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주었고, 그 뒤 오래도록 난 아이가 울 때마다 괴로워서 화를 내는 악순환을 겪었다. 시어머님과의 갈등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에게 빈 젖을 물리는 일도 없었을 거고,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겠지. 남편과 이혼을 생각할 일도, 그 후 오래도록 싸울 때마다 그때 일을 들먹이며 서로를 아프게 할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갈등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가족과의 갈등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삼 아쉬운 점은 그때의 나는 그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넘기지 못했었다는 점이다. 나는 작은 일에도 걱정이 많고, 고민을 많이 하며,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다하지 못한다. 인생 2회 차가 된 들 ”친정엄마도 정리만 하고 가신다고 하셨으니 어머님도 좀 가시라고 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뱉은 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똑같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으니 '너무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그때 굶다시피 하고 잠을 자지 못하고 살았다. 그렇게 걱정을 한다고 해도 상대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말을 그때의 나에게 해준들 아마도 나는 ’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내 성격이 그런데 어쩌란 말이냐.‘라고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

  당시의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분노에 휩싸여 참 많이도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어떤 날은 주말에 혼자 나와서 카페를 가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거의 매일을 내 한탄을 들어주던 사람이 있었다. 이런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주변을 보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친정이나 시댁으로부터 조언 또는 간섭을 받는 경우를 종종 듣는다. 싫다고 쉽게 끊어버릴 수 있는 게 가족이 아니기에,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하니 아쉬운 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성격이 그렇든, 입장이 그렇든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거다. 그럴 때 크건 적건 계속 드는 걱정과 좌절감과 분노에 몸을 내어 주는 것보다는 무엇이 나를 위해 더 나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나를 챙겨야 한다. 억울하고 겁이 나는 내 마음을 알아주고, 무엇을 하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질까를 생각한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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