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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May 31. 2020

나답게 육아 #7. 아이와 좋은 관계 맺기

나는 답정너 엄마였다. 

 꼭 외출할 일이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친정어머니께 아이를 잠시 봐주십사 부탁드렸다. 그리고 일을 마친 후 친정에서 아이를 태워 바로 집으로 가려는 나에게 엄마가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해서 잠시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맡기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시간을 타이트하게 잡아 움직였더니 두 시가 넘도록 점심을 먹지 못했었다. 20년이 넘은 친정 식탁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식탁 유리 아래 꽂혀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성함이 프린트 되어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조금 놀라 이게 뭐냐고 엄마께 여쭤봤다. 그러자 호스를 목에 꽂고 누워만 있는 것은 살아도 사는게 아니라 생각되어 그 상황이 되면 거부하기로 미리 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지면서 아버지는 왜 이런 걸 혼자 결정하시냐고 하자 엄마랑 두 분이서 상의해서 결정하셨단다. 속이 상해서 결국 한마디 했다. “이런 건 자식도 알아야 하는거잖아요.” 


  목 구멍 어디쯤 덜 씹고 넘긴 빵이라도 걸린 듯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왜일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 감정은 뭘까? 청소기를 돌리며, 설거지를 하며 내도록 생각에 생각을 했다. 한 가지는 두려움이었다. 부모님이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것이라 것. 나는 아직 온전히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했는데, 아직도 괜찮았다가 어느 순간은 원망하길 반복하는데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사랑한다고 하기 전에 떠나시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었다. 병원, 목에 삽입하는 호스, 연명치료 그리고 죽음. 이 모든 것은 나와는 멀리 있는 줄 알았다. 아니 멀리 있길 바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 죽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너무나 쉽게 죽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도. 가시더라도 부모님과의 관계가 좀 더 내가 바라는 이상향에 가까워 진 후 가시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일까. 언젠가는 그 날이 올거란 걸 알면서도 더 다가가지 못하고 더 안아드리지 못하는 내가 미련한걸까. 죽음을 떠올리지 않으면 내가 후회할까봐, 가슴을 뜯으며 아파할까봐 걱정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피하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를 반성하게 한다. 그래서 불편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런 ‘중대한 문제’를 아버지 혼자 또는 어머니와 두 분이서만 결정하는 부모님의 의사결정 모습이 싫었다. 어릴 적 어떤 땐 “다 큰 게” 어떤 때엔 “애들은 알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한 시간 전엔 어렸던 내가, 한 시간 후엔 다 컸는데 나이 값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며 나는 “권위”라는 것을 질색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청소년 때는 그 시기 특유의 반항심이 더해져 선생님이라는 기성세대를 불신하며 살았다. 대학생일 때에는 “나는 왜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가” 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뭔가 불편했으니까. 좀 더 자라서는 관공서 등에서 과하게 불친절할 때에는 서슴없이 민원을 넣었다. 이런 나 자신을 지나치게 정의를 찾거나 원칙주의자인가 하며 씁쓸하게 생각해 볼 때도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뭔가가 편하지 않았다는 뜻일거다. 

 조금만 더 통찰력이 있었다면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텐데. 이런 내 행동과 생각 그리고 불편은 정의가 아니었다. 원칙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존중” 받고 싶었던거였다.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내가 생각하는 존중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경상도식으로 무뚝뚝한 부모님들은 바쁘니까, 아이가 걱정하길 원하지 않아서, 괜한 말이 새어 나가는게 싫으니까 자식인 내가 물어볼 때면, 알고 싶어 할 때면, 부모님의 결정과는 다르게 하고 싶을 때에도 “애들은 몰라도 된다.”, “부모가 그렇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해라. 토 달지 말고.”, “니가 뭘 안다고.”등의 말을 들었다. 그럴 때면 난 속으로 “어른이 되자.” 생각했었던 거 같다. 어른이 되면 그러면 엄마 아빠가 그렇게 내가 말하지 못하실테니까. 그리고 내가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기 시작하자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와 여전히 나는 자식이므로 부모의 말에 순응해야 하는 부모님 사이의 갈등은 더 커졌다. 이젠 나도 말할 위치가 되었다고 생각한 나도 말과 표현이 꾹꾹 눌러 놨던 반동으로 무척이나 거칠게 나왔고, 내가 먼저 돈 얘기를 꺼낸 적이 없음에도 엄마는 갈등이 심해질 때면 (부모님이 쓰신 마이너스통장을 갚았던) 돈을 일부라도 줄테니 집에서 나가서 혼자 살라고 하셨다. 회사를 출근해 울면서 회사 근처 보증금 500만원짜리 올전세집을 찾은 적도 있다. 아버지가 나에게 조언이라도 할라치면 이젠 나도 그 정도쯤은 다 아는 성인이라고 아버지의 말을 우습게 여겼다. 


  부모로서 가져야 하는 권위는 그런 권위가 아니라고, 아이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녀인 너의 의견도 존중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보고 크지 못한 탓인지, 내 지난 시간에 대한 박탈감 때문인지 엄마가 된 나는 매우 엄격하고, 통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거지. 알러지 비염이 심한 아이가 코 치료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코 치료기 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는 치료기 사용을 싫어하니까 당연히 고개를 잘래잘래 흔든다. 그럼 그 순간 “너는 재채기를 하고 코가 막혀 잠을 자지 못할 정도면서 네가 할 수 있는건 왜 안하니?”라고 말을 한다. 혹은 그 순간은 참더라도 잠시 후 아이가 코가 막혀 잠을 못자겠다고 칭얼거리면 “엄마가 하라고 했지? 너가 안했잖아. 너가 안한거에 대한 책임은 너가 지는거야.”라고 적기도 부끄러울만큼 매정하게 말을 한다. 그러니까 나는 형태만 질문으로 한거지, 답정너인거다.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민주적으로 자라보지 못해서 내게 민주적인 엄마는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도 더 이상은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것을 탓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탓 할 시간이 없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더 좋은 관계,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아이도 나처럼 꾹 꾹 속마음을 누르고 ‘어른이 되면 두고보자.’ 하며 자라 곪은 상처로 힘들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모를 땐 그냥 부딪혀 보는거지, 가장 먼저 오는 파도부터 타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아이는 옷을 편한 것만 입는다. 그리고 큰 글자, 큰 그림, 조금 독특한 디자인은 질색을 한다. 바지는 많이 붙어서도 안되고, 와이드 팬츠여도 안된다. 단색의 그림이나 글자가 없는 것을 찾고 반팔은 겨드랑이가 보여서도 안된다. 지금은 머리를 길러서 아무도 자기 눈을 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머리까지 기르고 있다. 또래 평균키보다는 조금 큰 키인데 평균보다 심하게 마른 몸매라 옷이 맞는게 없어 허리가 흘러내리지 않는 것을 입으면 늘 상하의가 댕강하다. 상상해보시라. 카키색, 회색, 검은색의 상하복을 입은 아이가 머리카락으로 잔뜩 눈을 가린 모습을. 나도 고슴도치 엄마라 내 아들 참 잘생겼는데 그러고 다니니 같이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골라 입은 옷에 한숨이 나다못해 복장이 터질 때가 있다. 예쁜 얼굴을 왜 저러고 다니나 싶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이마가 살짝 드러나게 하면 머리를 흔들어 또 눈을 덮는다. 길이가 맞는 면바지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입지 않고 고무줄의 다리 짧은 철 지난 바지만 주워다(?) 입는다. 예전에는 아이를 설득했다. 그리고 바쁠 때면 협박도 했다. 아이의 의견이 어디있나. “제발 좀 엄마 쪽 팔리게 하지마.” 라며 휙 옷을 벗기고, 머리에 끼워 상의를 거칠게 내리면 집에서 엄마가 제일 무서운 아들은 울상이 되어 울먹였다. 

아이의 의견을 들어보자(아직 존중이라고 말 할 수준은 못된다.)라고 생각하고서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엄마는 이렇게 이렇게 입으면 예쁠거 같은데 라고 말한다. 때로는 받아들여지고, 때로는 거절된다. “난 이렇게 영어가 크게 있는게 싫어요.” (아니 언제는 B하나만 크게 있는건 괜찮다며?), “어~ 엄마. 난 바지가 흘러내려서 싫어요.”(이건 너한테 몇 번이나 입겠냐고 물어보고 반품 안하기로 하고 상표 뜯은거잖아.), “색깔이 좀 그래요.”(매장가서 너랑 같이 고른 색이야.) 아이가 말을 할 때마다 괄호 속 말을 적나라하게 내뱉고 싶지만 대부분 “그렇니? 난 이거 예쁘던데.”라고 말하려고 한다. 가끔은, 아직은 가끔 조금 순화된 표현으로 말할 때도 있다. 이거 너랑 같이 가서 네가 입는다고 해서 산건데 라고. 

최근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아들을 위해서 남편은 여행 일정에서 역사책에 나오는 것들을 볼 수 있게 계획 했었는데 경주에 오자마자 점심을 먹은 후 호텔로 가자고 하는 아이로 남편의 알찬 스케쥴은 다 엎어졌다. 예전엔 아빠가 계획한 대로 움직이는 것이 결국은 너를 위해 좋을거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럼 여기, 여기, 여기만 보고 들어가자.”라며 반강제적인 타협을 시도했을거다. 그런데 <좋은 관계>를 우선으로 놓으니 유적지 하나 더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호텔 좋아하는 녀석, 호텔에서 노는게 더 좋겠지. 차를 바로 호텔로 돌려 남편이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동안 책 한 권 읽어주고는(그렇다. 이 와중에도 나는 내 욕심을 챙겼다.) 두 남자는 수영장으로 보냈다. 그랬더니 덕분에 나에겐 3시간이나 자유시간이 생겼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예전 같으면 ‘저기까지’라고 목표를 세워놓고 운동 겸 산책을 했을텐데 아무 의미 없이 공연석에 놓여진 빈 의자만 툭툭 치고 왔다갔다 하는 아이를 그냥 두고 봤다. 바쁘지 않으니까, 여행이니까,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그렇게, 아이도 나도 좀 더 편해져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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