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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 Aug 30. 2022

더 이상 '나'에 매몰되지 않기를

III. 멘탈 편 - '직업적 자아'의 환상에만 매몰된 내가 아니기를

  유독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에 집착했다. 아버지의 청소와 어머니의 설거지를 돕는 것보다 내 성적이 먼저였고,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는 내 돈을 모으는데 집중했고, 내 스펙 쌓는 것이 중요했고, 내 커리어가 우선이었다. 현재의 내 직업도 사랑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직업이 내 자아라고 믿었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기준으로,  자아는 어떤 대단한 업적을 쌓은 것은 아니지만 남들 보기에 나쁘지 않은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는 나를 자꾸 갉아먹었다.  관심사는 돈이나 직업적 성취 같은 외적으로 보여지는 성장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남과의 비교도 잦았다. 동기 또는 나보다 어린 친구보다 내가 부족한 점이 느껴지면 자주 자괴감에 빠졌으며, 그게  두 가지 부족한 부분일지라도, 기어이 채워 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대학 졸업  공무원으로 33살까지 살아왔다. 이렇게 외적 조건으로 주로 채워온 행복은, 조금의 변화만 있어도 심하게 흔들거렸다. 어떤 것을 성취할 때는 너무 기쁘고, 나보다 어떤 점에서 우월한 비교 대상을 만나면 심하게 다운되었다.


  그런 와중 올해 5월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첫 손주라는 이유 만으로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신 분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토요일이라고 늦잠을 자고 있었다. 이사하며 새로 쳐둔 암막커튼 덕분에 고요한 어둠 속에서 10시쯤에 겨우 눈을 떴다. 아침 일찍 아버지의 전화가 찍혀있었고, 평소 주말 아침에 일찍 전화를 하시지는 않기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도무지 거짓말 같은 그 소식에 전화를 끊고도 침대에 앉은 채로 멍하니 30분을 앉아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신다고? 물론 몸이 좋지는 않으셨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해본 적이 없는데?


  허망하고 슬프던 장례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고 나서 부모님 댁으로 돌아왔다. 문을 여니 우리 강아지 레오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황망한 마음에 레오를 안고 현관에 그대로 앉았는데, 와중에 문득 우리 레오가 벌써 12살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책 한 번 제대로 시켜준 적도 없는 것 같아서 무작정 레오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날씨가 너무 좋은 5월의 하늘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봄햇살은 따뜻하고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의 날씨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레오는 오랜만에 쿠키(두 살 때 우리 집에 온 승질있는 포메, 4살)를 두고 혼자 나와서인지 너무나도 신나 있었다. 쿠키와 같이 나왔을 때는 조용히 걷기만 했는데 이렇게 신나 하다니. 그리고 먼저 신나게 뛰어가던 레오가 뒤돌아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너무도 환하게.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나에 매몰되어 있을 동안 우리 레오는 벌써 12살이 되었고, 내가 어쩌다 겨우 한 번 나와준 산책에 이렇게나 행복한 미소를 주다니. 그 짧은 순간이 잊을 수 없는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되었다.

환하게 웃는 우리 레오


  '나'에 집착하느라 부모님 댁에 와서도 레오 산책 한 번 못 시켜준 사람이 나였다. 아니, 와서는 쉰다고 못 시켜준 게 아니라 안 시켜준 거다. 레오도 이제 할아버지라서, 얼마 남지 않았을 견생일 텐데. 우리 할아버지처럼 갑자기 가버릴 텐데. 산책 한 번에 이렇게 신나 하다니. 나는 뭘 해주기나 한 걸까. 그리고 생각은 부모님으로 이어졌다. 이제 우리 레오처럼 늙어가실 나의 부모님에게는 난 어떤 순간을 선물해드렸을까. 그런 순간을 선물해드린 적이 있기는 한 걸까? 내 친한 친구들에게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순간을 선물하는 사람이었을까? 


  그동안 나는 내가 빛나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빛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 노력은 내게 시간과 자기희생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노력 속에서 내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할 시간을 많이 잃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외적인 성공들 속에서도 자아가 온전히 채워진다는 느낌은 결국 없었다. 외적 성공이라는 것은 순간순간의 성취일 뿐 계속 그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임용에 합격한 것도 결국은 새로운 시작이었고 끝없는 과정 속 일부였다. 재테크를 통해 얼마를 벌었건 순간만 기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 이를 어떻게 재투자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모든 것은 결국 과정의 일부일 뿐이었다. 과정일 뿐인 끝이 없는 외적 성취를 이루고 나서 가족과 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찾겠다고 나서면, 애초에 그것은 끝이 없을 것이고, 소중한 시간들이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진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보았던, 한 시간 관리 전문가의 강연이 떠올랐다. 강연자는 테이블 밑에서 커다란 항아리를 하나 꺼내어 항아리 속에 큰 돌을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네"

그러자 그는 테이블 밑에서 조그만 자갈을 꺼내 항아리에 넣었다. 그리고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항아리를 흔들었다. 주먹만 한 돌 사이에 조그만 자갈이 가득 차자 그는 다시 물었다.

"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는 다시 테이블 밑에서 모래주머니를 꺼내 모래를 항아리에 넣어 주먹만 한 돌과 자갈 사이의 빈틈을 가득 채운 후에 다시 물었다.

"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은 대답했다. "아니요."

그는 맞다고 끄덕거리며 물을 한 주전자 꺼내 항아리에 부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 이 실험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한 학생이 손을 들더니 대답했다.  "당신이 매우 바빠서 스케줄이 가득 찼더라도 정말 노력하면 새로운 일을 그 사이에 추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시간관리 전문가는 즉시 부인했다. "그것이 요점이 아닙니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큰 돌 : 가족과의 추억, 친구들과의 즐거움, 내 소중한 사람들, 우리 레오와 쿠키. 출처 : MyGemma111 youtube


  이 이야기는 비단 시간 관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자아'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모두의 자아는 이 항아리 같은 존재다. 항아리에는 본디 들어 있는 것이 없다. 우리는 이 항아리를 채워가야 하며, 가장 큰 돌부터 넣어야 한다. 자아를 채우기 위한 가장 큰 돌은 가족 간의 사랑, 친구들과의 즐거움, 내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이다. 그리고 다음 자갈은 현실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돈 정도, 그리고 그다음 모래는 직업적 성취 정도일 것이다. 만약 직업적 성취를 최우선으로 넣어버린다면, 그것에 집중하는 시간 동안 우리의 큰 돌들을 넣지 못하게 된다. 직업적 성취도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우선순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항아리에 큰 돌이 아닌 모래부터 넣는 사람이었다. 가장 큰 돌인 가족, 친구, 내 소중한 사람들은 둔 채 직업적 성취만을 바란 그런 사람. 도대체 직업이 무엇인가. 결국은 아무리 내 일을 사랑한다고 해도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을 뿐인데. 돈을 벌어서 가족과 친구들과 행복하길 바란 게 핵심이었는데. 저 바다 건너 프랑스 사람들은 가족과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지 않고 열심히 야근하는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에 매몰되지 않고 '너'에게 바친 내 순간들은 모두 오롯이 기억 속의 보석들이 되었다. 우리는 나뿐만 아니라 '너'에게 바치는 순간을 늘려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짧은 순간으로, 나는 '나'에 매몰되었던 시간들을 버텨왔던 것 같다. 죽을 때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흔한 말이 있지 않은가? 너에게 바치며 행복했던 내 순간들은, 후에 스쳐 지나갈 내 주마등 속에서 빛나는 지점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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