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시쯤 눈이 떠졌다. 사실 강아지 때문에 깼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둘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탓에 새벽 5시쯤 항상 영양제를 주는데, 이 노무 시키가 가끔 3시나 4시부터 일어나서 조를 때가 있다. 그리고 나면 품에 안아 데리고 들어올 때까지 방바닥에서 뒷 발을 구르거나 넓지도 않은 집을 빨빨거리고 싸돌아다니며 시위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잡아서 모셔와야지만 잠을 청할 수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낑낑거리기 전에 잽싸게 잡아와서 이불속에 넣고 팔베개 형벌을 가했다. 조금 집요하게 찡찡거리는 것 외에는 아주 보기 드문 순둥순둥이라서 금세 다시 색색-거리며 잠에 든다. 나도 같이 잠깐 눈을 붙였다가 4시가 조금 넘어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새벽 운동... 겨우 어제가 처음 시작이었는데, '아,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벌써부터 포기하고 싶다. 아니야. 정신 차려. 일단 4시 반쯤 강아지 영양제를 챙겨준다. 내가 일어났다는 것을 눈치챈 이상 얌전히 누워있지 않는다. 귀여운 뇨슥.
그리고는 유튜브에 '걷기 자세'를 검색해 본다. 걷는 자세가 이게 맞나? 뭔가 뒤뚱뒤뚱 걷는 것 같은데, 계단은 또 뭐 어떻게 올라가야 한다고 하던데 등등 어제 걸으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알고 있다. 영상을 아무리 본들 실전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 그래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법. 어쨌든 대충 영상을 찾아서 몇 가지를 머리에 담아두었다.
5시를 넘겨서 나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가글을 하고 대충 눈곱만 뗀 뒤에 어제 그대로 행거에 걸쳐 놓은 땀복으로 후딱 갈아입었다. 저도 데려가는 줄 알고 신나서 쫓아 나오는 강아지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며 '갔다 올게'라고 속삭인 뒤에 나와 보니 오늘은 어제보다 날이 더 어두운 느낌이었다.
5시 전에 나오니 왠지 기분이 더 좋았다. 겨우 둘째 날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나를 칭찬하며 새벽 운동을 시작한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엄청난 발전이다.
일단 허리와 어깨를 펴고 뒤꿈치부터 발을 딛으면서 걷도록 노력해 본다. 영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듯. 그래도 일단 해본다. 걸을 때마다 땀복에서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나는 게 또 거슬렸다. 천 재질로 된 것을 새로 사야 하나, 아 왜 또 신발은 뒤꿈치가 벗겨진댜..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도 걸음은 계속된다.
웃긴 것은 어제는 처음이라 뭣도 모르고 기세 좋게 여러 계단길을 빼놓지 않고 걸었다. 그런데 고작 하루 경험해 봤다고 계단이 힘들다는 것을 체감한 뒤라 오늘은 은근슬쩍 계단길을 피해 가고 있는 나였다. 왠지 모르게 양심상 중간에 기다란 계단 한 코스는 남겨놓고 모두 평평한 코스로 빙 둘러 갔다. 나란 인간이 참 약아빠지고 간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평소엔 내게 잘 주지 않는 관대함을 주기로 다시 다짐해 본다. 괜찮아. 그럼 뭐 좀 어때.
중간에 운동기구도 깨작깨작 거리고 미뤄두었던 계단까지 다 오르고 나니, 역시 아까 다른 계단들은 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등을 펴고 걸어야 한다거나, 발바닥 앞쪽으로 밀면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등등 영상에서 봤던 방법들은 잊은 지 오래였다. 이 저질 체력 어쩌면 좋아. 계단 너무 싫어. 풀은 또 왜 이리 많어. 어우 벌레 극혐.
평지로 벗어나자 한결 숨이 편해졌다. 평지를 찾다 보니 도로변과 가까워졌는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생각보다 이 시간에 걷는 사람들이 꽤 있구나, 마을버스 안이 텅텅 비어있네, 버스는 사람이 안 타도 달려야 하는구나, 버스아저씨도 참 힘들겠다, 강아지들도 많네, 우리 집 개님 생각나네' 등등
- 우리 집 강아지가 노견이라 함께 걷지 못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게다가 천천히 냄새 맡는 산책을 좋아하는 우리 집 개님과 같이 운동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뜀박질도 아니고 겨우 걷기만 했는데도 제법 땀이 났다. 바로 땀복을 벗어 재끼고 샤워를 한다.
그래도 오늘은 40분 넘게 걸었네. 역시나 오늘도 이쯤 쓰고 보니 침대가 너무 간절하다. 새벽 운동 둘째 날, 어제보다 종아리가 유독 당기는 기분이다. 어김없이 내일은 또 오겠지? 조금 설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됐고, 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