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5일 수요일
오늘은 새벽 3시 반쯤 눈이 떠졌고, 여느 때처럼 누워서 아무 의미 없이 몇 가지 유튜브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혼자산다에서 이장우가 수변공원을 뛰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알기로 이장우는 예전에 운동을 꽤 했던 사람인데도, 처음 시작할 때 숨이 찼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왠지 모르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작정 걷고 싶다는 생각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변화가 필요해서, 어딘가 답답해서, 아침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그냥? 등등 사실 딱히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벌써 바깥이 꽤 밝아 보였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니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몇 주 전에 사두고 그대로 걸어 둔 땀복도 있겠다, 그냥 이상하게 오늘 마음이 동했다. 5시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강아지 영양제를 챙겨주고 바로 땀복을 챙겨 입었다.
설마 뭐 땀이 나겠어 하는 생각에 입고 있던 옷 위에 그대로 땀복을 걸쳤다가, 다녀와서 새 옷을 꺼내 입기 귀찮겠다 싶어 브라캡이 달린 나시로 갈아입고 다시 땀복을 입었다.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아니 사부작사부작에 더 가까운 소리가 꽤 귀에 거슬리는 옷이네.
나서기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타임스탬프 어플을 깔고, 엘리베이터에서 급하게 사진을 찍어보았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 솔직히 이게 며칠이나 갈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훨씬 더 많이 들지만 그럼에도 뭐든 처음엔 착실히 임하는 편.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시작한다는 게 충동적인 듯 하지만, 사실 나는 충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과정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해 왔다. 다만 마음이 동해 실행한 것이 오늘일 뿐.
- 뜬금없이 MBTI가 떠오른다. J 성향이 높은 나에게는 '별생각 없이'라는 말이 가장 이해가 안 된다. 물론 J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단 나는 행동(실행)과는 별개로 언제나 생각은 겁나 많이 하기 때문이다. -
어쨌든 오늘 첫 운동(을 가장한 산책)은 그동안 생각만 해오던 것을 '실행'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꽤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생각한 대로 다 된 것은 아니지만... 원래 생각대로라면 집에 돌아올 때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으로 올라왔어야 했다. 하지만 첫 술에 어찌 배가 부르랴....라고 변명을 해 본다.
결론은 약 30분을 살살 걷기만 했는데도 숨이 차고 힘들어서 아파트 계단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공원 중간중간에 나오는 계단만으로도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다.
그만큼 저질체력이자 운동부족이라는 이야기. 그래도 시간을 보지 않고 쭉 걸었는데 30분이 지났길래 나름대로 뿌듯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서 노트북을 열고 이 글을 쓰기 전에 시간을 캡처했다. 오늘 처음이지만 무작정 걸으면서 나의 새벽 운동 기록을 글로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나처럼 자신과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특별한 건 없지만 그냥 어떻게든 살아내는 이야기. 어디로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솔직한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줄줄이 글을 남겨본다. 일단 지금은 당장 침대에 다시 드러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침대에 한번 눕고 나면 절대로 '나중에'란 없을 나를 알기 때문에 꾸역꾸역 자판을 두드리는 중이다. 분명 아까 걸을 때는 이것저것 쓸 이야기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니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참 개탄스럽다.
그냥 오늘은 사두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땀복을 입고 나갔다는 것과, 동네 마실이나 산책과 다름없는 30분이지만 나름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한다. (사실 빨리 눕고 싶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에 기대를 걸어본다. 과연 시작이 반일까...? 내일, 또 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