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IDI Jun 08. 2024

셋째 날 | 삭신이 다 쑤신다

새벽 운동, 무작정 걷기 #03


2024년 6월 7일 금요일



오메, 오늘은 확실히 삭신이 다 쑤신다. 솔직히 계단 조금 오른 것과 걸은 것 밖에 없는데 이렇게 온몸이 다 쑤신다고? 아니 팔뚝은 왜 아파? 상체 운동이라고는 한 게 없는데? 생각해 보니 어제 운동기구 깨작깨작 거린 것이 이런 근육통을 유발하는 것 같다. 나한테 근육이란 게 있었...? 아니, 더 잘 생각해 보면 생전 쓰지 않던 근육을 갑자기 움직여서 그런 듯하다.


확실히 피곤했는지 오늘은 한 4시쯤 핸드폰 시계를 봤고, 잽싸게 조금만 더 자기로 결심했다. 물론 한번 깬 이상 깊은 잠은 안 되겠지만 어디선가 눈만 감고 있어도 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주워들은 적이 있다.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잠시 눈을 붙인 뒤에 45분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강아지 영양제 챙겨주기 - 가글 하기 - 눈곱 떼기 - 땀복으로 갈아입기 - 머리 돌돌 감아 집게핀으로 고정하기'를 차례대로 진행했다. 겨우 셋째 날이지만 나름대로 루틴이 생겼다.









그나저나 어깻죽지가 당기는 것이 남다르네. 왠지 옆구리도 아픈 것 같고. 젠장, 그 운동기구가 있는 코스를 피해 가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그건 얌생이지... 왜? 내가 내 맘대로 하는 건데 그게 왜 얌생이야? 몰라 그냥 그건 얌생이야. 자아분열은 잠시 넣어 두고 일단 출발하자.



맞다! 타임스탬프! 아파트 계단을 내려서다가 급히 뒤돌아섰다.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기는 뭣해서 문짝?앞에서 사진을 찍고 진짜로 출발한다. 오늘은 오른쪽으로!


- 나이가 들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새롭게 깨닫는 점들이 생긴다. 혹은 변화한 점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생각보다 무언가에 금방 질린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환경이나 상황이 변하는 것에 민감한 편이라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싫증'을 잘 안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



나의 '싫증'을 방지하기 위해 어제와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의도치 않게 도로변에 가까운 쪽이다 보니 공원 깊숙한 곳보다 사람이 많이 보였다. 조금 후회스러울 뻔했지만, 그래... 솔직히 그리 많은 것은 아니잖아? (무슨 '어둠의 자식'인 마냥 사람 없고 으슥한 데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겁도 많으면서.)









나름대로 걷는 동안에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들을 어떻게 기록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생각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달리 형체도 없고 한 곳에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사부작사부작거리는 땀복 소리는 내 귀에만 이리 큰 것일까? 내가 지나갈 때마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이 소리가 들린다면 꽤나 시끄럽겠는 걸? 걸을 때 손을 흔들지 말아야 하나? 그래도 소리는 나는데? 에이, 뭐 설마 이게 잘 들리겠어? 거 참 걱정도 팔자라더니...



정말이지 잠깐 사이에 적어도 수십 가지의 생각이 흘러가는 듯하다. 흘러 지나가버리는 생각들을 한데 모아보려고 어플을 켜기로 했다. (몇 주 전에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어플을 알게 되었다. DAGLO, 일명 다글로.) 일단 어플에서 녹음 버튼을 누른 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니 상당히 어색하다. 왠지 모르게 오글오글거린다고 할까나. 핸드폰을 손에 쥐고 몇 마디 중얼중얼하다가 이내 일시정지를 누르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세상 참 쉬운 게 없네.









그래도 중간중간 나름대로 뚜렷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조금씩 녹음을 해봤다.  - 근데 이걸 '생각'이라고 하는 게 맞나? 느낌? 인식? 정보? 뇌? 뉴런? 마땅한 단어를 잘 모르겠다. 그나마 '생각'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직관적이라고 여겨진다. -



사람마다 어떠한 자극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누구든지 자신이 보고 듣거나 느끼는 일종의 모든 정보에 대해서 '생각'이란 것을 거치게 되리라. 근데 생각이 원래 이렇게까지 많은 게 맞는 건가? 새삼스레 '생각'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이렇게 기록하다 보니 그 방대한? 양에 놀랐다.  


어디선가 걷다 보면 생각이 없어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지... 나만 이런가? 기록하겠다고 너무 인식을 해서 그런가? 근데 인식을 안 한다고 해서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도 아닌데? 생각이 그냥 절로 드는 것이지, '생각을 하겠어!'라고 결심하고 생각하는 게 아닌데? 잉? 뭐야, 나 지금 뭐라는 거야. 









일단 다글로에 녹음했던 내용 중 일부를 나열해 보자면...


여름에도 새벽공기는 꽤 쌀쌀하구나, 제법 상쾌한 듯. 오메, 걸으면서 말하려니까 엄청 숨이 차네.
어제도 저쯤에 버스가 서 있었는데, 이 시간에 청소하는 게 기사님 루틴이신가? 디게 깔끔하시네.
확실히 도로변이라 사람이 꽤 많다, 공원 안쪽이 한적하니 더 좋긴 한데 걷기에는 요기가 더 편해.



앗, 이건 생각지 못한 계단인디... 의식적으로 계단은 피해 다녔건만ㅠ 왠지 모르게 양심에 찔림. 이거는 좀 올라가 줘야겠다. 일단 먼저 숨 고르기 한번 하고 Go! ...아고 숨차, 어우 계단 진짜 시러.
아고 귀여워라, 고양이가 많네. 회갈색은 처음 본 듯. 지금까지 다섯 마리쯤 봤나? 다음엔 츄르를 좀 사 와야 되나. 한 마리당 츄르 한 개씩? 아니 저기.. 네가 그럴 형편은 되고? 그럼 두 마리 당 츄르 한 개? 근데 다섯 마리니까 츄르 반개가 남는디? 그럼 공평하게 분배가 안되잖아. 아니 그리고 애들이 다 흩어져 있는데 보일 때마다 츄르 주려고 멈추면 걷는 흐름이 끊기지 않을까? 그냥 돈도 없고 귀찮은 거라고 하자. 아니 근데 너무 귀엽...




고 쪼매난 것들이 엄청 짹짹거리네. 가만 보니 머리가 좀 작은 게 엄마랑 새끼들인가? 그래도 새끼라고 하기에는 꽤 커보이는디.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같네. 저렇게 큰 성체도 엄마한테 밥 달라고 성화인 걸 보면, 모든 생명체한테 '엄마'란 참 중요한 존재인겨. 그르게 엄마가 독립성을 미리미리 키워줬어야지. 그르니까 저건 '엄마' 잘못인겨. 흥!
그러고 보니 '아빠'의 존재는 애초에 왜 논외인 거야? 몰라, 본능적으로 그래. 솔직히 새끼한테는 '엄마'란 존재가 비중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 같... 이건 내 편견인가...? 음....



와우, 쓰고 보니 더욱더 엄청나네. 이건 읽다가 지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기록들로 무엇을 하고 싶은건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어쨌든 오늘도 30분은 넘겼다. 새벽 운동(이라기보다는 마실에 가깝지만 어쨌든) 셋째 날, 약간의 꿀팁?을 남겨보자면 초반에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는 것이다. 멀리 나간만큼 돌아가는 길도 길어지니까 집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걷게 되어 있다.



사실 나의 의지력과 인내심이 얼마나 약한 지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걷다가 10분도 못 채우고 집에 들어가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터득하게 된 방법이랄까. 그리고 기록을 하게 된 것과 브런치에 '연재'를 하게 것도 새벽 운동을 지속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 (겨우 셋째 날이지만....하하하)





그건 그렇고 오늘은 유난히 글을 쓰는데 오래 걸렸다. 오전 6시에 쓰기 시작해서 오전 9시 반까지... 중간에 강아지 안약 넣어주고 아침 약 챙겨준 것 외에는 노트북 앞에 앉아서 꼬박 3시간 이상을 글만 썼다. 


나는 뭐가 이리 오래 걸리는 걸까...? 근데 그게 뭐 어때서? 안될 거 뭐 있어? 한 글자 한 글자 다 진심인 것을 어떡하라고. 쓰다가 고치고 읽고 또 고쳐야 다음으로 넘어가지는 것을 뭐 어떡해. 그게 '나'인 것을 뭐 어떡하라고.


그래 괜찮아. 뭐 어때, 잘했어.






그래, 잘했다고 말해줄래.
그렇게 말해주자. 너는 알잖아,
이게 너에게는 참 대단한 일이라는 것.
누가 뭐래도 너는 알아줘야지.
괜찮아, 나에게 잘했다고 말해도 괜찮아.
그래 정말이야, 정말 잘했어 나.








+ 나 자신을 위해서 시작한 기록이지만 '좋아요'로 공감을 표현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아요' 하나하나에 이렇게 기분이 들뜬다는 게 괜스레 남사스럽고 부끄럽지만, 솔직히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네요. 저의 사소한 일상기록을 읽어주신 당신, 정말 고맙습니다.


Have a lovely day!!



이전 02화 둘째 날 | 벌써부터 포기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