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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DI Jun 16. 2024

열한째 날 | 정말 기다리실까?

새벽 운동, 무작정 걷기 #11


2024년 6월 15일 토요일



3시 49분. 오늘은 강아지보다 내가 먼저 눈을 떴다. 아.. 시간이 좀 애매한데? 잠시 고민하다가 이 시간에 나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그래도 4시는 넘어서 나가야지. 조금 느긋하게 준비를 한다. 밖으로 나와 보니 상당히 어두운 제법 맘에 든다.



그런데... 아파트 입구를 나오자 얼굴 위로 톡톡 물방울이 떨어진다. 오잉? 비가 온다고? 분명 어제 '지니'한테 물어봤을 때는 낮 12시에 온다고 했는뎅? 이런 된장, 그냥 비 맞으면서 한번 걸어볼까? 싶다가 일단 핸드폰을 켜고 날씨를 찾아본다. 



아니 6시까지 80%라니.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우비를 들고 나왔다. 땀복 위에 판초형 우비까지 걸치니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두 배가 되고 내 그림자는 두 배 이상으로 아주 비대해 보인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으니 왠지 뿌듯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아주 얇디얇은 빗줄기에다가 아직 땅이 젖지 않은 것을 보니 비도 이제 막 내리기 시작했나 보다.


이왕 오는 김에 펑펑? 펄펄? 아니 박박 내렸으면 좋겠다. 비가 박박박ㅋㅋㅋㅋ (아 이번엔 도저히 'ㅋㅋㅋㅋ'를 참을 수가 없다. 가끔 ㅋㅋㅋ가 주는 대체 불가한 느낌이 있는 걸...)











오늘따라 교회 앞 전광판에 움직이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꽤 여러 날 이 앞을 지나갔는데 왜 오늘따라 저게 눈에 들어올까? 근데 정말 기다리실까? 내가 아는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분은 아니다. 사실 신은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인간의 입장에서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이 찌르르한 게 제법 찔렸나 보다.



'아 몰라, 생각하면 복잡해...' 고개를 저으며 다시 걸음을 재촉해 본다. 비도 오고 그러니까 오늘은 운동기구를 패스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비가 더 내리는 것 같지가 않다. 비가 오면 손도 미끄러지고 축축하게 젖은 쇠 기구도 만지기 싫다는 핑계를 댈 수 없어졌다.


게다가 운동기구가 공원 안쪽에 있다 보니 초반에 가는 게 동선이 효율적이다. 다시 공원 안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가 보니 역시나 운동기구가 뽀송뽀송하다. 




아니 비 올 확률이 80% 라메!! 쒯... 이건 비가 것도 아니고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나뭇잎으로 빼곡하게 가려진 곳은 빗방울 흔적도 없다. 중간중간 하늘이 뚫려 있는 아래에만 빗방울의 흔적이 조금 보였다. 그조차도 다 적시지 못할 만큼 정말 비가 조~금 왔다. 이건 내가 식물이라도 감질나서 짜증이 날 것 같.... 


여전히 역기 올리기는 2세트가 딱이었다. 3세트를 시도해 봤지만 5개를 더하다가 이내 포기한다. 그래도 역기 내리기는 3세트까지 거뜬히 해낸다. 움하하하 (언젠가 팔 굽혀 펴기를 성공해보고 싶다.)










기구운동?을 끝내고 계단을 오를까 했는데, 이른 시간인 데다가 먹구름 탓인지 더욱 심하게 깜깜하다. 아니 언제는 어둠의 자식이라더니... 계단 위쪽은 더 어두워 보이는 게 아무래도 다시 공원 바깥쪽으로 나가야겠다. 어둠의 자식치고 엄청난 개복치 심장이라 어쩔 수 없다... 


넓은 산책로로 나와서 오르막길을 열심히 오르는데 불현듯 가로등 불이 싹 꺼졌다. 빛을 감지하는 시스템인가? 시간 설정이 되어 있는 건가? 아직 너무 어두운데ㅜ 일찍 나오면 이런 단점이 있구나. 그나마 다행히 넓은 도로변 길이라서 버틸만했다.






 

끝내 비는 더 오지 않았다. 20%의 확률을 뚫어버리다니. 고작 자동차 앞 유리창에 떨어진 자잘한 물방울들이 이 아침에 내린 '비'의 전부였다. 


난데없는 비 소식에, 비 맞으며 걸어볼 생각에 살짝 마음이 들떴는데... 나의 판초 우비를 마중 나오지 않다니 적잖이 서운하다. 거추장스러워도 땀복 위에 열심히 차려입은 내 성의가 무색해졌다. 쳇. 









동 입구로 향하는데 아파트 사이로 십자가가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뭐지, 아까 전광판도 그렇고 오늘 날인가? 왜 자꾸 이런 게 보이지? 기다림에 지치신 하나님의 신호인 걸까? 


...마음은 무거운데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예배로 바뀐 이후 교회에 가지 않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사실 말씀만 듣는 거라면 얼마든지 유튜브를 이용해도 되지만,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공동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운 개념이지 않은가. 나 하나만도 벅차고 미치겠는데 여러 사람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이지 괴롭다. 아니 그르니까 대체 자유의지를 왜 주셔가지고, 나는 차라리 로봇이면 좋겠는데.. 내 선택과 의지에 실천과 행동까지 산이 너무 높다. 엄청나게 찔리는 말씀이 떠오른다. '밖에 사자가 있다 하는도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우비를 벗어재끼고 얼른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우비를 벗어보니 땀복이 흥건히 젖어 있다. 땀복도 젖을 수가 있다는 것을 우비 덕분에 처음 알았다.


우비도 땀복과 같이 세탁기에 돌려서 탈탈 털어 널어야겠다. 그래 씻자. 다 씻어버리자. 가능하다면 내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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