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IDI Jun 17. 2024

열두째 날 | 우와, 대단하시다

새벽 운동, 무작정 걷기 #12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58분! 


3시 58분이면 다행이었는데, 4시 58분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3시쯤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생각보다 푹 잠들었나 보다. 수면제 덕분인 건가.


그간 나의 생체 알림 시스템을 너무나 신뢰한 나머지 한 번도 핸드폰 알람이 필요하다 느끼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미련한 짓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틀 전에 늦었다고 그르케 신경질을 부려놓고는 오늘도 늦다니... 떼잉 쯧.




이젠 어느 정도 틀이 잡힌 루틴대로 빠르게 준비해서 집을 나선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겨우 3~40분 차이에도 전혀 다른 아침 풍경이다. 새벽 4시가 캄캄하고 센치한 느낌이라면, 새벽 5시는 환하고 활기찬 느낌이다. 너무 밝은 게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 공기는 제법 선선해서 맘에 든다. 어제는 비도 오지 않고 하루종일 푹푹 찌더니 말이다. 









운동기구 쪽으로 바로 향한다. 이런 걸 '쇠질'이라고 하는 게 맞나? 물론 '쇠질'이라 하기에는 좀 초라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맛이 들렸나 보다. 오늘은 기어코 역기 올리기 3세트를 하리라. 근데 2세트 하고 나자 '안될 것 같은데?'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를 악 물고 3세트에 도전, 꺼이꺼이 해내고 말았다. 이어서 역기 내리기 3세트까지 파죽지세로 하고 나자 팔이 후들후들 떨린다. 역기 내리기는 올리기보다 수월하긴 한데 이상하게 매번 어깻죽지에서 뚝-하는 소리가 난다.






운동기구 코스를 끝낸 후 넓은 오르막길로 나가 보니 역시나 밝은 아침답게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 백발의 아저씨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조깅을 하면서 내 옆을 슥- 지나쳐 가신다. '우와, 대단하시다'라는 말이 육성으로 나왔다. 오르막길이 아주 가파르지는 않지만 거리가 꽤 길어서 올라가다 보면 무척 숨이 차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를 뛰면서 올라가시다니. 다부진 몸부터 하루이틀 뛰신 게 아닌 대단한 포스가 느껴졌다. 참 보기 좋다.


예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 프랑스 남부지역의 한 도시에 며칠간 머물면서 아침마다 호수 주위를 조깅했던 적이 있다. 10년이 채 안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그때는 이 정도로 체력이 나쁘진 않았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한국이 아니어서 가능한 점도 있었지만 더 큰 부분은 내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지금은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시커먼 땀복을 입고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썩 즐겁지 않다. 생각보다 꽤 부끄럽다.


'야, 아무도 네게 관심 없다니까' 가만 보면 이건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인 듯하다. 아마도 나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나 보다. 왜 그럴까? 특별히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아온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무엇이 부끄러운 걸까?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적어도 그동안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지금 하고 있는 새벽 운동은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면 좋겠다. '운동은 좋은 거지~'와 같은 상투적이고 추상적인 이유 말고, 진짜 '나'에게 좋은 이유를 찾고 싶다. 일단 멈춰있던 '생각'을 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 맞겠지? 몸은 괴롭고 머리는 복잡하고 속이 시끄럽지만 좋은 일 맞겠지? 산다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21일이 되면 조금 실마리가 잡히려나.






이전 11화 열한째 날 | 정말 기다리실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