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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Aug 30. 2024

드르륵 탁  팥빙수, 대천, 벽계천...

지난 여름 우리들의 추억

함께 더디지만 같이..


네가 몇백 일 만에 동생을 무릎 위에 앉힌 지난 일요일 밤. 그 뒷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미지근하니 따뜻해졌다. 그걸 기다렸거든.


아, 기분 좋음도 잠시, 시계를 한 주 전으로 한 번 돌려보면,


내가 밤톨이 응가할 겸 20분가량 산책하러 나갔던 그 일요일 밤 말이다. 왼쪽 눈을 비비다 빨개진 네 동생이자 밤톨이 형아가 네 방 앞에서 울고 있었다. (탓하는 게 아님! 그저 그랬다는 사실임)


"누나가 날 보살피지 않아. 날 돌봐주지 않았어." 밤톨이가 성공적으로 야외 용변!한 보람에 찬 상태였던 나는, 너그럽게 괜찮아~ 했다. 그리고는 밤톨이 형아가 태어난 해부터 누나가 안아주고 얼러주고 젖병을 물리는 사진을 뒤지고 뒤져서(참고로 최근사진에 없다.하하하)줬다. 형아는 틈나면 또 보여달라고 한다. 널 참 좋아하는 네 동생.


네가 길었던 2터널을 뚫고 나온  흐뭇하다. 2 터널이라고 한다. 3터널이 또 올거고 또 그 미로를 찾아 나오겠지. 지지난밤에는 우리랑 같이 시원한 거실에서 잠도 청했다.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역시나 표현에 능한 네 동생이 "시끄러워, 이제 말 그만해! 말 안 해줘!"(너무 다정한 소리침이지 않냐, 말 안 해줘라니! 네 살이라 엉성한 문법은 귀엽기만 하고)라며 소리치다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같은 네 학교 친구들 관찰기는 한참을 이어졌다. 어두운 밤이라 새로 업데이트된 네 친구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해 그 인상만 남아있다.


아무튼 지간에 그날 밤 부터 우리는 태양의 후예 정주행을 시작했다. 16년에 만든 드라마가 이렇게 하나도 안 촌스럽고 웰메이드라니. K드라마 위상ㅋㅋ



지난여름들의 추억들 


네 동생이 나던 해 우리는 벽계천을 앞마당처럼 찾았다. 2021년 코로나가 꼬리를 채 감추기 전이다. 그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청평 가평엔 계곡이 깨끗이 정비되어 있으니까. 찾는 이가 예쁜 계곡물과 하늘을 갖는다. 과거 무법 점거하던 상인들의 천막도 자취가 없다.


'벽계천이 그립긴 해.' 하던 너. 늦은 나이에 둥가둥가 육아에 지쳐서 주말이면 계곡을 찾아갔고 그 힘으로 그 해를 잘 넘겼던 우리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육아에 지친건 너나나나 같았지, 내 육아동지 장한 딸아.

옛다. 벽계천 하늘.. 텔레그램 사태때문에 네가 허락하는 건 풍경 사진 뿐이네.

다음 해에는 조금 더 큰 동생을 데리고 대천 해수욕장을 갔다. 풀빌라 욕조에 앗 나의 실수(그거 말야 밤톨이가 산책나가면 하는 그것. 쉿,비밀!)를 했던 네 동생 덕에 아빠는 욕조를 청소하느라 허리가 다 휘었는데.. 그것도  이젠 재미난 추억이 되었네.


밤에 아빠 등 뒤에 오토바이 타고 한 바퀴 돌고도 또 나랑 전동 스쿠터 타고 한 바퀴 돌다가 내 등뒤에서 야박스레 아빠가 더 재밌어!그랬는데.. 어떻게 그 속도로 그 번잡스런 도로를 가로지르냐며 나도 큰 용기낸거라 괜한 성화였다. 나, 혼자라면 더 빨랐을까? 널 태우고는 가속불가였긴 했지만 더 재미있었고 어제처럼 그 순간이 기억나는 걸 보니 느려도 너랑 같이 타서 더 재미있었어.



같이 가면 좀 더디지. 그래도 즐거워.


길다란 길을 달리고 하는 삼륜차 타기도 좋았지만 넷이 같이 수동 발차기로 탔던 하늘 자전거도 시원?!했다. 오르막길에서 아빠엄마는 이엉차이엉차하며 고개를 넘었다. 아기 포대기가 있어야 탈 수 있대서 전동차 대여점에서 포대기도 빌렸다. 인정도 많고.


여름은 늘 즐거운 추억 한아름, 대천 해수욕장 그리고 남이섬 근처 일박 등등. 순천과 여수는 우리 셋이 갔으니 아마도 그그전 여름휴가였던가?  김치가 갑자기 땡기네.


작년을 떠올려 보니 야간개장한 서울랜드에 손 붙잡고 아빠는 일하는 동안 우리 셋이 누볐더라. 사진첩 갤러리 덕에 생생하게 기억난다. 빛나던 조명길을 따라서 전화도 안 터지는데 무서운 거 타러 떠난 너 찾으러 다니고, 재회하고 함께 들어갔던 미로같은 놀이터에 꾸며진 이상한 나라와 앨리스. 빛에 매혹되어 한참이나 앉아 있었던 우리들.



팥빙수로 채운 이번 여름, 드르륵 드르륵


올해는 팥빙수가 주인공. 여기서는 무슨 무슨 자연을 찾아가자던 일탈의 욕구가 들끓지 않았다. 그만큼 여기는 자연과 더 가깝기도 하고 여유도 생겼다. 집콕과 에어컨 그리고 좋아하는 드라마 정주행이 천국이요, 집 나서면 고생길임알기 때문이고, 몸이 늙어 빨리 지치기도 해서.. 네 동생은 너만큼 다이나믹한 놀이를 해주지 못하나 싶어 일말의 죄책감이 나를 누를 때도 있다.


드문드문 일상이 지옥이 될 것처럼 침습하는 한 기분을 모른 체 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그건 그것대로 견딜만하다. 네가 보낸 시간과 네가 스스로 이겨낸 시간을 기억하니까, 난 그저 네가 놀랍다.


어젯밤 도란도란 너랑 얘길 나눈 건. 참 오래간만이었다. 별 말도 예고도 없이 이불 들고 우리 곁에  너도. 찌는 듯한 날 에어컨 있는 로 오라고 불러도 오지 않던 네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안 가는 걔네들이 없는 인생도 참 적적할 것이라고 나는 그랬다. 일도 없고 만날 이도 줄어든 나는 짜증 내고 미워할 이들이 없어 가끔 쓸쓸했다. 그이들이 희안하게도 더 잘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나보다고. 톰과 제리처럼. 서로 쫓고 쫓기는 삶 속, 무척이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뒤섞이는 게 사는 것 아닐까? 시끄럽다 소리치다가 훅 잠든 네 동생도. 너도. 내겐 너무 소중하다.


내 발치 제일 좋은 자리 차지하고 한잠 자는 밤톨이도. 왜 걘 꼭 그렇게 베개만 내려놓으면 내 머리 둘 곳에 처음 또아리를 틀곤 한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제일 편안한 공간에 누웠다내가 휘이하며는 그르릉 하면서 밀려나는 여름. 오, 우리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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