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래스 선생님이 묘사하는 우리 딸의 상황은 '기민한 아이가 겪는 성장통'이라고 보셨다. 좋게 봐 주시어 고맙지만 딸의 몸과 마음은 꽤나 많이 헝클어져 있었다.
척추 측만증과 이상근 증후군.
경험이 풍부한 물리치료사샘을 남편이 우연히 만나서 치료를 받으며 알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까지 아팠을 텐데 어떻게 생활했어요? 넌 별말이 없다. 나도 말을 잃는다.네 오랜 아픔을 알아주는 그분의 말에 네 응어리도 같이 녹는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간동안 충분히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고 비정상적으로 굳어진 근육이 제자리인 줄 모르고 잡혀있어 나비자세도 괴로운 상태가 되었다. 댄스 수업을 갔다가 몸풀기하면서 너무 아팠다고. 작년부터 정형외과를 가도 듣지 못했던 속 시원한 말을 이제서야 들었다.
고비가 이어진다.
며칠 전은 고비였다. 어쩌면 오늘도 그럴 것이다. 무의식에게 조종실 운전대를 내어 주려는 딸의 의식을 되돌려 오기 위해 유튜브 노래방을 틀어주었다.
매일같이 불러대던 노래를 똑똑한 유튜브가 알아서 연속 재생해주고 입이 기억하는 대로 힘없이 따라 불렀다. 끼어드는 광고가 행여 흐름을 막을까 봐 급히 프리미엄을 결제했다. 데이식스 플레이리스트에 이어 윤하 오르트구름, 세븐틴 돌고 돌아...... 이유없는 눈물이 또르르.
영험한 노래들은 딸을 다시 이 세상에 오게 하기도 한다.
'너의 시간속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기억하니? 너랑 같이 보았는데. 거기서 여주인공이 화면 뒤에 앉아서 자기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저 보고만 있는 상황말이야. 마치 네 의식은 그 저편을 왔다갔다 하는 듯 보이는 때가 있다.
어느 저녁은 밝고 청량한 세븐틴 노래를 브금 삼아서 네가 먹고 싶다던 된장찌개와 간간한 계란찜을 마흔 번 씹게 해서 먹었다. 목표한 만큼 먹고 나서 산책을 가자 했다. 시크하게 먹을 만큼 먹고 휴대폰을 손에 들고 소파에 척 앉았을 네가. 순한 양처럼 매 숟갈 내 지휘에 맞추어 마흔 번을 꼭꼭 씹었다.
그날 만났던 위클래스 선생님은 산책은 좀 가시나요? 하고 물었다. 그제와 그그제를 떠올려보았다. 병원, 상담 일정과 예약된 도수 치료와 근처라 들린 친정, 학교를 못 갔지만 우리의 하루는 이미 꽉 차 있던터였다. 이제서야 숨을 돌리고 산책을 시도해 본다.
몸과 마음이 같이 움직이니 조금 기운이 나는지 밤톨이를 데리고 곧잘 뜀박질을 하려는 네가 고맙지만 가슴이 아린다.
블루스크린과 버퍼링
산책하고 바로 둘째를 픽업하고 올라가니 그때까지도 밤톨이 손발을 세면대 앞에서 열심히 씻기고 있었다. 10초 컷이 1분 그 이상은 이어졌을 것이다. 밤에 샤워를 볼일을 해결하러 화장실로 가는 네 뒷모습을 두고 보기 나 혼자 마음 조렸다. 블루스크린이 너무 길게 이어져 한참을 서있으면 어떡하나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어떡하나 나는 앞서 걱정이다.
혼자가 아니야
눈이 선한 담임이 그랬다. 안그래도 그 전날 평상시랑 달리 제게 말을 했는데 제가 그 신호를 놓쳤네요 한다. 나야말로. 한 주 전에 몸이 아프다고 하여 갔던 정형외과는 뭐하러 간걸까. 뼈 이상없습니다. 근육이완제와 소염진통제를 드리겠습니다... 틀린 진단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해결책도 아니었다.
위클래스 선생님은 상담센터선생님과 따로 만나 네 상황을 더 면밀히 나누겠다고 한다. 담임과 위클래스 선생님이 한자리에 있는 곳에서 나는 작으나마 위로를 받는다. 혼자가 아니라고울려지는 가슴에 무언가가 있었다.
네 할머니는 널 위해 부적을 썼으니 우편으로라도 붙여주신다고 한다. 네가 어릴적 손편지를 선물로 드린 그 스님이 그분만의 글자로 네게 위로와 사랑이 담긴 편지를 전해 주시려나 보다.
숨은 시그널 찾기
도대체가 엄마 자격이 없는 건지 몇 번을 반복해야 더 일찍 시그널을 캐치할 수 있을는지, 아니? 더 이상은 반복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상황에 너는 얼마나 좌절스러울까. 나의 좌절은 네 손톱 때보다 작겠지.
아픔이 몸으로 먼저 오는 너라서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느 정도 안정적이었던 네가 다시금 힘을 잃은 눈을 마주하게 되다니.
국이 짜다고 소금 성분을 찾아내어 꺼낼 수 없지 않으냐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가 중요하다는 의사샘의 말이다. 오, 현명하신 말씀. 그렇다. 전문가가 주는 조언은 놀랍게도 심플하지만...
내 생각의 골이 된, 되돌릴 수 있다면 이런 저런 순간을 고치고 싶어하는 내 습관을 단칼에 자르듯. 그럼에도 고치기는 쉽지 않다.
자각하는 횟수를 늘릴 뿐이다. 네 약을 취침전으로 처방해주셨고 내게도 처방해주셨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다음 주중에 꼭 와서 경과에 맞추어 다시 조정을 하자고 하신다.
이번 주는 여력이 될까, 그냥 제낄까 고민스러웠었다. 늘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내가 사는 시간의 의미는 지나고 봐야 알 것 같은 그 한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하던 대로 다른 얘기로 때우다가 몇 주가 지나서야 그 시간의 의미를 겨우 더듬거렸다. 이번에는 때울 다른 얘기도 모르겠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았았다.
아, 네 기척이 들리네 그래일어나야겠다. 이 이야기를 이을 수 있다면 다음 주에 다시 돌아오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