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이 왔다

오십, 이제는 문제를 내가 내는 나이

by jeokdang

"반백살"은 나보다 다섯살이나 많은 남편을 놀릴 때 쓰던 말인데

어느 순간 조용히 방향을 틀어,

이제 나를 가리키고 있다.


십,이십,삼십,사십을 보내고

오십대 시작의 가장 어린 나이

바로 "50"이 되었다


뭔가 비장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중딩딸에게 나의 반백살에 대해 질문을 한다


“엄마가 반백 살이라니, 퐝당쓰...

나 어떻게 살아야 되냐..?”


언제나처럼 와르르 쏟아지는

지유의 생각과 말들이다


“엄마, 어릴때는 하고 싶은게 정~~~말 많잖아"

“슬라임 3천 개 사고 싶어”,

“초콜릿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싶어” 같은 황당한거.

그때는 돈도 없고 힘도 없고,

엄마 아빠 때문에 못 하는 것들이 많아서 답답했지.

근데 어른이 되면,

오육십대는 이미
돈 벌고, 애 낳고, 키우고, 취업까지 시켜놓고
비로소 “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잖아.


이제는 슬라임을 사든,

초콜릿 수영장을 가든

아무도 안 말려

근데 이상하게도,
그땐 터무니없던 꿈들이 다

사라져버린 걸 보면 좀 슬퍼.


나이가 들어서 이제서야

모든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땐 이미,

꿈을 안 꾸고 있는 거지.

아니 꿈이 어디론가 사라진거지


미래가 걱정될 때,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
대한민국은 사실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지 않는 것 같아.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다가

오육십대가 되면

“인생의 정답”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거든?

내 또래는 열공해서 대학 가는 게 정답이고

우리 언니는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집 사는 게 정답일테고
엄마아빠는 애들 대학 보내고 독립시키는 게 정답 같은

모두가 "보기가 하나뿐인 인생 문제를 푸는거지".


시험지 객관식은

보기라도 4~5개는 있는데

정작 인생은

보기가 하나인 느낌이라서 너무 슬플때가 있어


그런데 더 기막힌 건, 그 정답의 보기마저도
60-70대가 되면 사라진다는 사실이야.
더 이상 그 문제를 풀 필요!

그 자체가 없어지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뭘 해야 할지 ,

다들 헷갈리는 거 아닐까?


엄마도 반백살 되니까

어떻게 살아야 돼? 그게 고민이라는 거지?


내가 생각하기엔,

사람이 살아가려면

목표가 하나쯤 있어야 할것 같애.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어떤 사람은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라고

대답할 수도 있어.
근데 그 말만으로는 동기부여가 약한 것 같아.
"각자의 삶의 낙" 같은 게 필요해.

어떤 삶의 낙은 “아침에 길고양이 밥 주는 게 삶의 낙”인 사람도 있고
어떤 엄마들은 “아침마다 너 밥 먹이는 게 나의 낙”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각자의 목표를 이루려면,

그 목표를 밀어주는

작은 즐거움들이 늘상 필요하단 거야.


중딩인 지금 나는

그 ‘삶의 낙’이 있는 삶이야.
아직 정답을 찾고 있는 인생이니까,

답의 방향을 희미하게는 알고 있어.

학교 다니고,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유튜브 보고, 고양이 만나는 게 내 삶의 낙이니까.

그 사소한 행동들이

사실은 객관식 큰~ 보기 중 하나가 되는 셈이지.


엄마도 지금보다

더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를 거고,
유투브를 안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를 테니까.


엄마처럼 부모 세대는

“평생직장 하나를 깊게 파라”라고 말했겠지만,
50대가 되면 얕게 넓혀도 될 것 같아.


해야 할 게 별로 없다는 건,

어쩌면 자유가 생겼다는 뜻이잖아.
그때는 오히려 목표가 없으니까 좋고


엄마가 언젠가 말했잖아.

“50대 넘어가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누군가 새로운 정답을 주지 않으니까,


문제 출제자가 바로 ‘나’가 되는 거야.
주관식 문제를 낼지,

완전히 새로운 보기들을 만들지

그걸 엄마 스스로 정해야 하는거지

엄마가 이미 인생의 보기가 많아졌다는 건,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뜻이고,

그건,그 자체로 성공한 거야.


쥬- “엄마, 엄마의 삶의 낙은 뭐야?”
나(엄마)-

“아침에 알바가는 언니, 보온밥통에 도시락 싸줬더니

고맙다고 톡이 와서 좋았고.
너랑 통화하기 전 그 설렘도 낙이고

아빠가 조금 착해진 거,

그게 내 낙이야.

매일매일의 감사와 고마움이 쌓여서

‘찐행복’이 된다고 믿을려고 하지.”


그 얘기 듣고 나도 생각했어.
"아, 엄마는 이미 낙이 많구나.

아빠도 자기 방식대로 어떤 답을 찾은 거고.
엄마는 이미 보기가 많아졌으니,

그 자체로 잘 살아온 거구나'


나(엄마)- “인생의 목표가 꼭 있어야 해?”


쥬- “목표는 동기”라는 거야.
목표가 있어야 동기부여가 되고, 동기가 있어야 살 이유가 생기고,
그래야 우리는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
엄마의 지금까지 목표는 자식들 대학 보내고, 잘 키우는 거였잖아.
그 동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건데,

그 동기가 사라지면 아니 그 동기가 충족이 됬으니

이제 새로운 동기를 만들어야 하는 거지.


나는 아직 10대니까 선택권이 적어.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 아빠 밑에서 잘~~~ 자라는 것뿐이야.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말했지,

“걱정하지 마, 나 잘 자랄게”라고.
그게 지금 내가 약속할 수 있는 전부니까.


나이가 들수록 보기는 많아지는것 같애
자식들 다 떠나고, 돈도 생기고, 자유가 오면

“왜 사는가”에 대한 보기들이 늘어나.
엄마처럼 보기가 많아진다는 건 이미 성공한 상태야.
그걸로부터 새로운 문제를 출제하면 되는 거야


어떤 문제를 낼지도 내 선택이고

어떤 보기를 고르는 것도 내 책임이고,

주관식으로 내고 답을 하는것도 내 책임이고

그걸로 어떻게 사는 것도 내 책임이지
오답이든 정답이든, 일단 엄마 자신이 새로 할 일이야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지나갈 때

“아 그때 그 보기 안 골랐어야 했네”

하고 후회만 남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아직 어리니까, 지금은 ‘보기 수’가 작은 걸 받아들이고,

앞으로 잘 자라서 더 많은 보기를 만들 거야.
엄마, 그러니까 난 열심히 살게

걱정 마, ㅋㅋ.



반백살이라는건

남이 만든 정답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나이였나보다

내 마음을 아주 깔끔하게 정돈시켜준 귀한 십대의 말이다


인생의 보기가 정해져있어,

정답을 맞췄던 삶에서,


질문 자체를 내가

만들어야 되는 삶으로 바껴가고 있다


이제는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살아도 되는 구간에 들어섰다


"다음 반백살을 위해"

새로운 문제 출제자가 될 준비를 하자


부릉부릉부릉~~

경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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