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먹는다는 것은

화 火

by 하이디 준

난생 처음, 선지국을 먹었는데, 문득 다시 생각하니, 다른 사람이 권했더라면 먹지 않았을 것을, 단지 그가 제안했기 때문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먹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그런 변화들도, 그에 대한 내 신뢰의 정도를 증명하는 건가 싶다. 그 무엇도 아닌, 다만 그를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


그런 것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다는 데에 기대감이 어리는 반면, 그에게는 이런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경고음도 함께 울린다. 조금은 모순적인 반응. 그를 믿는다면서도, 동시에 그가 내 믿음을 지켜줄 거란 믿음은 정작 없다는 걸까. 그럼 대체 뭘 믿는다는 말인지.


나는 단순히 유해진 내 성향을 다시 그 사람 덕분으로 돌리고 있는 걸까. 그래서 그를 믿지만 믿지 않는다는 이상한 어법이나 구사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나는 조심하는 것뿐이야.

삶이 때론 지독하게 잔인해질 수 있단 걸 아니까.

그건 사람의 탓이라고 돌리기엔 끔찍할 수도 있단 걸 아니까.

계획도, 의도도 없었지만, 누구든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순 있다.

휩쓸려가고 마는, 사고 같은 것.


나는 무모하길 꿈꾸고, 때론 충동적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겁이 많아 아주 조심스러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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