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밀물 속으로

화 火

by 하이디 준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긴 하지만, 어느 순간 아주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어둠을 실은 좋아한다는 걸. 두려워하지만, 무서워하면서도 그만큼 좋아하기도 한다는 걸. 어둠과, 고요, 침묵. 다만 그건, 새카만,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아니라, 희미한 빛으로 윤곽을 읽어낼 수 있는 어둠, 빛을 따뜻하다고 여기게끔 빛을 은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어둠이다. 그래서일까, 밤에 잠들기 싫은 건. 잠이 들면 전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세상으로 가버리니까. 어둠과, 밤과, 죽음과 함께하는 형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 따뜻함을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편이 더 좋다. 어둠이 완전히 날 삼키기보다, 나를 안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


어둠이나 바람에 안기는 게 좋다는 감각을 일깨워준건 사실 그 사람. 내가 접해온 세계와, 글과, 사람들은 대체로… 누군가의 안에 들어가고, 누군가를 안으로 들여보내 줄 때의 그 감각과 그 순간의 전후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을 아주 충격적이거나, 강렬하거나, 끔찍하거나, 경박하거나, 충동적이거나, 미칠 듯이 황홀하거나, 거칠거나, 모호하게 아름답거나, 아무튼 모든 극단적인 것들로 점철해서 내게 보여주거나 가르쳤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건 전혀 다른 것.


날카롭거나 거친 위험에서는 가장 멀어진 듯한 안전하고 평온한 감각. 천천히, 밀물이 들어오듯 차오르는 따뜻함. 부드럽게, 촘촘하게 파고드는 감각. 아득하고, 반짝이고, 일렁이지만, 전혀 모호하지 않은 또렷한 감각.


아마도 깊은, 그러나 맑은 바닷속으로 서서히, 편안하게 잠겨가는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같아서 그 이미지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건 그게 내 죽음의 이미지이기도 하다는 것. 어찌보면 사랑과 죽음이 늘 함께 연상되는 건, 그만큼 동일한 것이라서가 아닐까. 한편으론 물 속에 잠긴 그 느낌이, 태아와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죽음도 사랑도, 누군가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문이 되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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