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그를 사랑하던 시절

화 火

by 하이디 준

어느 한 부분을 버리고 나니, 다른 마음도 상당히 고요해졌다. 그를 그닥 그리워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스러울 정도로. 하지만 여전히 좋은 것, 즐거운 것, 기쁘고 신기하고 재밌는 것들 모두 그와 나누고 싶고, 아주 비밀스럽게나마 그의 아이에 대해 종종 떠올린다는 걸 보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맑아진 것임을 깨닫는다. 더 이상 그에게 굳이 기대려하지 않는다. 내 스스로 안정을 찾았으니, 매달릴 이유가 없다. 그가 못난 나에게 질릴 거라는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억울한 부분도 있었다. 내가 여자라는 것. 여자밖에 할 수 없는 일일지. 여자라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일지. 생리가 조금만 늦어져도 불안해야 하는 건, 사실상 시기의 문제로 언젠가는 기쁠 일이 지금은 끔찍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우스울 정도로 짜증이 났다. 제도와 사회와 편견 그리고 돈.


내 나이 스물 다섯, 여섯. 엄마가 지금의 나 같은 상태로 결혼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론 가족을 꾸리고 싶다고 반짝반짝한 꿈에 홀리기도 한다. 현실은 복잡하고 쓸데없이 지저분하기만 한데도.


무엇보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임이 확실한데도.


게다가 꿈을 꿈들, 그건 여러 번 재차 꾼다 해도, 아무리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그린다 해도, 의지로 되지 않는 미래인 걸 알고 있는데도.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운 일.

내가 홀로 상상 속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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