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火
낮에 갑자기 그가 휴가를 못 나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접하고 밥을 먹다 얹히는 참으로 딱하고도 한심한 일을 겪었다. 머리가 아파오고, 어질어질해지고, 몸에 기운이 빠지고. 당연히 기분은 더럽게 나빴는데… 그를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게 미치도록 싫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 매달리는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왜 이래, 무슨 멜로 드라마 여주도 아니고. 겨우 이깟일로 지금 쓰러질 거 같다고 느끼는 거냐고. 좀 어이 없을 정도로 감상적인데다, 연극적인데다, 허세 같고, 또 한편으론 이게 진심이라 해도 나약해빠진 의존적 여성의 대표 주자 같고. 순간적으로 대략 서, 너 개쯤의 자아가 부딪히면서 머릿속이 엉망이 됐다.
그리고 수업도 가기 싫은 게 추가 요인이 되면서 실제로 몸에 나타나는 증세는 더 나빠졌고. 그걸 느끼면서도 내가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고작 이런 일로 이런 감정에, 이런 감정 때문에 이런 신체적 징후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냥 꾀병이잖아.
더불어 실제로 느끼는 두통과 어지러움 외에, 오히려 더 앓아누우면 좋을지도 모른다는 욕망이 혼재하고 있었다. 아마 스스로를 비난하고, 실제의 고통에 대해서도 인정해줄 수 없었던 것도, 결국 나 스스로 그런 욕망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겠지.
내가 용기를 낼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내가 적극적으로 반항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내가 거부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병이라는 신체적인, 물리적 증거가 되는 증상으로 주장하고 변호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정말 참고 참았지만 이것이 한계라는 걸 단번에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걸 원했던 거다. 역시 극적인 걸 좋아하는 탓이겠지. 병들어봐야 결국 제일 괴로운 건 나인데. 멍청하게도 나는 여전히 비련의 여주 역할을 해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처럼
싫다, 싫다, 그를 보지 못하는 건 싫다.
고 징징대고 있는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그래, 그렇구나.
싫겠구나, 아주 많이.
당장 주저앉아 울고 싶을 만큼 싫겠구나.
라고 물끄러미 봐주는 시선도
때때로, 이따금씩 올라왔다.
물론 그건 나의 모습을 하고 있기보다, 꿈속의 존재들의 형상을 하고 나를 토닥거렸지만. 마음에 평안을 얻었다고, 새로운 경지를 느꼈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내 모든 부분을 가감없이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건, 쉬이 되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 왕창 떠들고 나니, 그리고 그의 전화를 받고 나니, 마음은 풀리고, 안정을 되찾았다. 아직 머리가 이곳저곳 콕콕 쑤시는 건 남아있지만. 이 통증을 확인하고서야 내 일부는 아, 진짜 아팠던 건가? 하고 어쩐지 긁적긁적, 수긍을 해보인다.
이런 식으로 그가 내 삶, 내 자아에 얼마나 촘촘히, 얼마나 깊숙히, 얼마나 광범위하게 들어와있고, 펼쳐져있고, 엮어져 있는지를 새삼 감각하게 될 때면
(마치 거미줄의 한 부분을 건드리면 전체가 진동하며 새삼 그 윤곽을 혹은 경계를 모두 인식하게 되는 것처럼.)
신기하고 기쁜 동시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