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土
생일 한정 럭키 130% 같은 느낌일까. 지긋지긋한 올해도 그래도 보람있나보다 싶게 만드는 며칠. 심지어 오늘은 친구에게 감사 편지까지 받고 보니, 괜시리 으쓱해지는 거다. 나, 그렇게까지 나쁜 아이는 아니었나봐 하고. 선물도 선물이지만, 왜 친구의 글에 더 뭉클해지는 걸까.
아마도 나는 사실 별 뜻도 생각도 없이 행동하고 말했을 거다. 친구가 한밤에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해서 엄청 뭔가 위해줘서 그랬다기보단, 그저 내가 그렇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밤에 달려간다는 몹시 이상하고 기묘한 로망을 갖고 있어서, 그걸 내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실천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 아마 친구는 전혀 짐작도 못할테지.
다만 나는 동시에 기억한다. 내가 가장 불행하고 불안하고 겁에 질렸을 때,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는 걸. 내가 도움을 요청할 곳도, 내 부름을 들어주는 이도 없었다는 걸. 그걸 뼈저리게 실감해버린 나는, 만일 그렇게 누군가가,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혼자라고 절망하는 일이 없도록, 언제든지 달려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팠던거다.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을, 나는 베풀고 싶어한다. 나는 그 절실함을 아니까. 그 절망과 허무함을 아니까.
더불어 세상에 정말로 그렇게 다른 이를 위해 달려와줄 이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슬프니까. 그러면 나는, 과거의 나는 영영 구원받지 못할 것 같으니까. 나라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게 낭만이든 허세든 멍청한 짓이든 뭐든 간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막상 감사 받는 것도 멋쩍은 일이다. 스물 여덟 혹은 아홉이라고 축하받는 것도 머쓱한 일이다. 나, 나라는 건 정말 그리 대단치 않은데. 그러면서도 마음은 따뜻해져서, 웃음이 나니 기쁜 건 숨길 수 없는거다.
어쩌면, 엄마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의 기쁜 일엔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다른 이의 곤란하고 슬프고 어려운 일엔 기꺼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어떤 시간대라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것을 실천하는 엄마 말이다. 다른 건 다 욕해도, 늘상 나쁜 것만 물려받았다느니 불평해도, 막상 내가 감사받고 보니 아, 나 그 점은 닮아서 다행이구나. 내 가족에게도 역시 좋은 점도 있구나, 새삼 반성한다.
지금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달려갈테지.
귀를 틀어막고 웅크린 채 덜덜 떨며 울기만 했던 아이에게.
곧 괜찮아질 거라고. 모두 지나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