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土
결혼, 그리고 안정과 정착.
하지만 그 누구도 들어서기 전까진 알 수 없지.
그것이 폭풍과 같은 삶 속에서 간간히 수면으로 올라오는 아주 작은 빛 같은 것이란 걸.
그래서 대부분의 이들이 그것을 없느니만 못한 환상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는 걸.
한 인간이 놓아야만 하는 너무 많은 것들.
스스로 묶이기를 자처하는 짓. 알면서도 걸어 들어가는 묘한 미로.
때론, 혹은 아주 많이들,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잃는지조차 모르는 채 넘어버리고 마는 문턱.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리고 아마 나 역시, 아주 깊은 의미로는 잘 모르고 있는 거다. 나 스스로를 과신하고 있다. 그와 함께 올 행복뿐만 아니라, 불행조차 끌어안을 자신이 있다고. 아파 온 세월이 있기에, 어느 정도의 통증에는 견딜 수 있을 거라고. 과연 그럴까. 오히려 남들보다 더 빨리 쓰러져버리진 않을까. 그는 버텨낼 힘을 가지고 있을까. 의지가 되는 사람일까.
도박. 모험.
다른 이들의 삶까지 거는 아주 큰 판.
단지 알고 싶다는, 해보고 싶다는 이유만이라면 못할 게 뭐겠나.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이유라기엔 무언가를 포기하고 이런 선택을 할 만한 큰 무게가 없다. 혼자인 게 두려워서?
아니, 그를 잃고 싶지 않다는 것보다 더…
그와 함께 있을 때의 ‘나’를 잃고 싶지 않아.
내가 망가질 게 두려운 거다. 예전처럼 아무도 사랑할 줄 모르던 그 시절로 돌아가버릴까봐. 그가 날 묶어놓지 않으면,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고 말 것 같으니까.
그는 내 질서이고, 내 법인거지.
그가 있음으로 해서, 설령 그가 악마라 해도, 단지 그가 존재하고 나를 사랑함으로 인해서, 나는 그를 중심으로 잡고 설 수 있다.
나는 혼돈이지만, 그래서 자유롭고 싶지만, 실은 그렇게는 존재할 수가 없어. 홀로이면, 나는 내 속성대로 금세 나를 파괴하고 말테니까. 나는 살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그에게 묶어놓는거다.
이건 사실이야. 언제나 그런 기분이거든.
당신만 없으면, 당신이 날 사랑하지만 않으면,
나는 얼마든지 내 멋대로, 맘대로, 나쁘게 굴어도 될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