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둘 28화

운명의 타륜을 잡아

토 土

by 하이디 준

계획된 일이었던 것처럼, 기록했던 세 개의 절기 중 첫 번째인 추분에, 그와 같이 살 집을 결정해버렸다. 예언일까. 예지일까. 아니면 그저 믿음과 결단이 만들어낸 우연의 일치? 미묘하게 느껴보면, 이것 역시 춤 같다. 혹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모양. 내가 움직이는 동시에, 나를 감싼 혹은 내게 걸린 모든 삶과 운명의 무언가가 함께 움직인다. 누가 당기고, 누가 시작하고, 누가 밀고 있는 건지 순서를 따질 수 없다. 둘 다 아주 균형잡힌 스텝을 밟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빙그르 도는 것처럼.


하지만 역시 그렇다면, 모든 일은 내 믿음과 내 결단만으로도 충분히 흘러가게끔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내 손으로, 내 힘만으로도, 충분히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다고.


어쨌거나 큰 건 하나가 일단락된 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일이지만. 사람이란 건 어찌해도 불행을 쫓는 동물이라. 나는 계속 그의 토라진 모습을 찜찜하게 기억해낸다. 나를 흘겨보던 그의 눈. 나를 미워하는 눈. 아주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이지만, 못 본 척 할 수 없었던 그의 표정과 말투.


나는 또 모든 걸 부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깊이라고 착각하고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우울한 그 그림자를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그도, 나도, 우리는 정말 서로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걸까? 아니, 애초에 전부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지도 않았지. 우리는, 그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결론지었지. 하지만 조금, 자신이 없어진다.


무엇보다 가족. 내 가족에 대한 그의 생각들.

어떻게 해도 떨쳐낼 수 없는, 나는 그저 반쯤은 끌어안고 반쯤은 포기해버린 그 모든 것.

그에게 이해시킬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내 안에 지닌 채, 그와 살아가도 좋은걸까.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바로 그 모든 것들 때문에, 나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도?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 속에서 점차 거칠어져 가는 그를 보며, 낯설다고, 내가 사랑한 사람이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이 풀리기 전, 추분의 전날 밤. 나는 한참 걸으며 예전처럼 울듯말듯 울먹거렸지만, 결국엔 스스로를 진정시키는데 성공했다. 그건 어쩌면 나름의 발전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 . 불안을 끌어안는 법을 배웠다고, 익혀가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면. 나는 이 불안 역시 다스릴 수 있을 거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한 것들.

내가 믿기로 한 사람.

많은 이들이 이 과정을 거친다. 싸움도 잦다.

그렇게 깨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었지.

전혀 새로운 게 아냐. 나만 겪는 일이 아냐.

그리고 나에겐 나 스스로에게 해주는 나만의 예언이 있지.

그러니까 괜찮아. 할 수 있어.

나는 내 자신을, 움직일 수 있어.

내 뜻대로 할 수 있어.

keyword
이전 27화아직도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