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둘 29화

달팽이 껍데기

토 土

by 하이디 준

자르고 싶어도 잘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 무거운 마음으로 생각한다. 어릴 땐 칼이면, 날카로운 칼이 되면 아주 냉정히, 철저하게, 원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끊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바보, 멍청이 취급했지.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세상 모든 것은 점액질일뿐이었다. 깨끗이 닦이지도 않고, 깔끔하게 정리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 미완의 모든 것들을 감내하는 법을 터득해야 할뿐이다. 명확하지 않고, 모순적이고 이중, 삼중적인 모든 감정들을 소화시켜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흐물흐물 무너지지 않도록, 욕지기를 느끼며 게워내지 않도록, 잘 토닥이며, 스스로를 꼭 끌어안고 있어야만 한다.


심지어는 그걸 삼키면서도 허허, 웃어버려야 하는 경지에 이르더라도, 영원히 크지 않고, 자라지 않고, 나이를 먹지 않는 고집스런 아이는, 구석에서 싫다는 말만 반복해댄다.


불행한 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이 생긴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렇게만 되면, 내 평화는 깨질 일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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