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土
모든 딸들의 최초의 영웅은 아버지이다. 그들 중 몇은 헤라클레스의 딸들도 있겠지. 영웅을 사랑하기는 쉽다. 평범한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영웅에서 악마로 추락해버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더더욱. 나의 영웅이 어느 날 영웅이기를 포기해버렸고, 그 날로 나의 유년기 역시 끝장났다. 헤라클레스가 미쳐서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이야기. 영웅 안의 괴물.
하지만 딸들은, 살아남는다면, 인내심을 기르고, 측은함을 사랑하는 법까지도 배운다.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리고 아버지를 아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사랑받고 있단 걸 새삼 자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믿지 않았던, 믿을 수 없었던 새로운 진실. 그리고 차츰 인정해간다. 내 존재를 이루는 많은 것들이, 실은 아버지로부터의 유산인 것을. 나는 기꺼이,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가 좋아하며, 그가 보이는 행동이 나에게서도 보일 거라 말한다.
그것이 내게 행복감을 줄 줄은, 꿈에도 모른 사실. 마치 아버지를 미워했던 지난 10년 가까이가, 정말 하룻밤 꿈처럼 흘러가버리게 만든 사실.
그럼에도,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용서한다는 건 뭘까. 떠올리면 여전히 쓰라린 상처는 어째야 할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
아무도 오지 않았어.
나는 그걸 기억해.
그리고 나는 그걸 기억하고 되새기는 나를 돌아본다.
아직도 미소를 지으려면 입가에 경련이 이는 얼굴을.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서는 원망 같은 것도 다 먼지가 앉아버렸다.
그럼에도 잊지 않았다. 내 안의 움푹 파인 자리엔 여전히 비가 오면 물이 고인다.
그래서 나는, 언제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가 추락한 영웅의 딸이자, 그를 증오하고 사랑한 딸이자, 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딸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도 살아남아 있다는 것을, 담담히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