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둘 24화

미지와의 조우를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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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준

아이가 세상에 나왔고, 나는 어설프고 살짝 겁이 많은 초보 엄마가 되었다. 자연 진통을 원했던 건방진 나는 장장 27시간이라는 기록적인 분만 과정 앞에서 무통주사에 무릎을 꿇고 꽤나 만족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아주 겸손해졌다는 것. 그 하루 이상의 하루는 정말 꿈 같고 환상 같다. 내 꿈들에 악몽이 많은 걸 고려한다면 그 의미가 어떤 건지 짐작이 될지도. 끝나지 않는 하루. 끝나지 않는 기다림. 끊임없이 파도처럼 되돌아오는 통증. 내 안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힘겨움. 세상을 보기 위한 발버둥.


다른 산모들이 말하는 약간의 수치와 기타 다른 불편함 같은 건 실상 내가 집중하는 부분과는 역시 달랐다. 일단 진통이 길어지자 금식이 더 힘들었다. 물조차 한모금 못 마시게 해서 말라 죽어가는 판국. 양수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저 생리통 수준에 불과해서 계속 누워있는 게 더 고역이었다. 분명 앉아있거나 돌아다니면 진행이 더 빨라질 것이 느껴지는 데도 모든 것은 그저 ‘시스템대로’만 돌아갔다. 왜 일찍 병원에 왔는지 후회막심이었달까. 그것이 설령 진실로 필요한 것들이었다 해도, 나에겐 아무런 설명도 선택권도 없었다. 모든 과정은 산모의 편의보단 의료진의 편의에 쏠려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대학병원이 그렇지 뭐, 돈 내는 대로 대우받는 거겠지 뭐, 라는 현실을 들이댄들, 아이를 낳는 그 자체의 고통보다 환경과 무심함에 더 신경이 곤두서야 하는 거라면,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든 두 번 다시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을 거란 결론에 이르렀다.


또 달랐던 건 그에 대한 의지. 길고 긴 대기 시간 속에서 결국 버팀목이 되는 건 옆에 붙어있는 남편 뿐이다. 나는 고통에 겨워 허덕일 뿐 화를 내진 않았고, 그 역시 침착하고 차분하게 곁에 있어줄 뿐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우리고, 다른 많은 출산의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만큼은 허상에 불과하다. 어쩌면 물리적 고통이 억울함을 더 키웠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허상의 이미지들이 좀 야속하기도 했다. 매체가 선전하는 불필요한 공포, 저속한 유난스러움, 신성불가침의 영역. 물론 그것은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의 수만큼 각기 다른 차원의 고통이고, 모든 엄마들의 생애만큼 각기 미세한 결의 차이가 나는 경험들이다. 그러니 그것을 어느 한 장면으로, 한 문장으로 수렴할 수는 없다. 그 어느 것 하나 폄하할 수 없지만, 또한 신성화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정말 그저,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고 동시에 가장 원초적인 공동의 경험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실은, 그 누구에게도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다만 오로지 확신하는 것은, 이 경험과 같은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 뿐이다.

이 거대한 우주와 별들 사이에서 진정 미지와의 조우를 하게 된다면 또 모를까.

그렇더라도, 외계를 내 안에 품었다 처음 그 새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고통도, 그 어떤 현실도 녹여버릴 가장 강렬한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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