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셋 07화

물뱀

금 金

by 하이디 준

안에서 서서히 형상을 갖춰가는 생각, 혹은 하나의 시공간. 그것은 점차 또렷해지고 한편 몸집을 부풀려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때로는 너무나 거대해진 나머지 온몸으로 넘쳐 흐른다. 그것이 자유로워질 유일한 길은 글로써 쏟아져 나오는 것.


그러나 내가 가진 언어의 그물은 내가 바라는만큼 촘촘하지 못해서 그것을 끌어올려내지 못한다. 언어로 잡히지 않는 그 형상은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꿈틀거린다. 그것이 안에서 제 몸을 뒤트는 힘도 만만치 않다. 어찌보면 그것은 하나의 욕망 덩어리다. 터져나오고픈, 한편으론 그득그득 채워지고픈, 어찌할바를 몰라 제자리에서 소용돌이 치는 거센 힘의 덩어리. 그것은 미끈거리는 한편 질척하기도 하다. 그것의 촉감, 빛깔, 향취, 풍미, 고동까지 모조리 현실로 끌어오고 싶지만, 내 언어가 가진 아귀의 힘은 턱없이 모자라 그것이 한 번 울컥 비틀어 빠져나가면 다시 잡을 도리가 없다.


그것이 정말 생물이라면 아마도 물뱀일 것이다. 저주받은 선원이 보았던 그 아름답고 생생한 물뱀. 그러나 내 것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시에 더럽고 징그럽기도 할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단순한 생명이 아닌 욕망이기에. 참을 수 없는 공허감인 동시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리게 하는 포만감이자 구토가 일듯한 현기증이기에. 나는 내 안에서 끝없이 맴돌고 뒤틀리고 팽창하는 그것의 움직임을, 힘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있어야 함을, 살아갈 수 있음을 새삼 되뇌인다.





"Beyond the shadow of the ship,

I watched the water-snakes:

They moved in tracks of shining white,

And when they reared, the elfish light

Fell off in hoary flakes.


Within the shadow of the ship

I watched their rich attire:

Blue, glossy green, and velvet black,
They coiled and swam; and every track
as a flash of golden fire.


O happy living things! no tongue
Their beauty might declare:
A spring of love gushed from my heart,
And I blessed them unaware:"



"배의 그림자 너머에서
나는 물뱀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빛나는 흰 궤적을 따라 움직였고,
몸을 치켜들면 요정 같은 빛이
희미한 비늘 조각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배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그들의 찬란한 옷자락을 바라보았다.

푸른빛, 윤기 어린 초록, 벨벳 같은 검은빛,
그들은 몸을 말아 헤엄치며 지나가는 자취마다
황금빛 불꽃이 번뜩였다.


오, 살아 있는 행복한 피조물들이여!
그들의 아름다움은 어떤 혀로도 다 말할 수 없도다.
내 가슴에서 사랑의 샘물이 터져 나와
나도 모르게 그들을 축복하였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서사시 「노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1798), Part 4, 272-285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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