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水
나는 분홍색과 살지 않는다. 분홍색을 싫어한다고 말하면 될 일이지 왜 굳이 살지 않는다고 하느냐면, 개별적인 색 자체로서의 분홍은 내가 존중하고 가치있게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한 혈색의 선홍빛을 흠모하고, 들판에 핀 꽃이든 귀여운 아기의 장난감이나 옷이든 그것을 물들인 베이비 핑크의 사랑스러움도 안다. 다만 간단히 말하면 나는 분홍과 어울리지 않고, 복잡하게 말하면 분홍은 나를 특정한 속박에 사로잡히게 하는 원흉이다. 물론 서너살 어린 시절엔 분홍 원피스를 입고 좋아라했던 것도 같다. 누구나 다 거치는 공주 코스프레 시절도 당연히 겪었다. 다만 어떤 사소한 사건이 있었던 것인지, 혹은 점진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이제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나는 꽤 이른 시절부터 분홍색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더듬어가보면, 분홍이 나에게 ‘사회가 당연한 듯이 줘버리는 색’이라서 거부했던 것 같다. 나는 언제고 청개구리 기질이 강했으니까.
요즘은 그런 구분이 거의 없고, 오히려 “남자는 핑크”라는 주장을 들으며 누가 어떤 색을 택하든 자유롭지만, 내가 어릴 때는 여전히 물품을 성별에 따라 분배하던 시절이었다. 여자아이는 분홍, 남자아이는 파랑. 그 색상 고정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단순히 그 강요가 싫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색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싫었다. 귀여움, 소녀다움, 얌전함, 부드러움, 수동성, 사랑스러움. 심지어는 다른 여자아이들이 그 색을 좋아해서도 싫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한 ‘홍대병’ 기질에 따라,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실제로 커가면서도 내 취향이나 흥미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살짝 어긋나있긴 했다. 나는 나에게 뭘 사줄 때의 엄마가 관대한 편이면서도 왜 총이나 칼 장난감은 사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아이들처럼 자동차나 로봇 장난감만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동물 인형을 좋아했고 그 동물 인형들로 보물을 찾는 모험가 흉내를 내거나 거대한 세력들 간의 전쟁 놀이를 했다. 다분히 아빠와 했던 게임들과 같이 봤던 영화들의 영향이 컸겠지만, 본질적으로 나는 특정 틀에 순응하거나 맞춰가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그 어릴 적에도 우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기 인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런 인형을 정말 싫어한다. 물론 소꿉놀이는 또 했지만, 그조차도 엄마를 따라 살림을 한다는 느낌보다, 마법약 제조에 가까웠다. 따져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현실’에 저항하고 ‘환상’을 쫓았던 것 같다. 의외로 분홍은, 나에게 현실의 색이었던 거다.
성장하면서는 단순히 분홍만이 아니라 붉은색 전반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다. 내가 내 옷장을 관리할 수 없던 시절엔 억지로 붉은 계열을 그냥 나사 하나를 빼고 입는다는 느낌으로 걸치기도 했고, 또 간혹 변덕으로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닌 경우엔 붉은색 아이템을 하나쯤 장만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 색상 자체에 대한 정의나 내 사고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내 외형이 붉은 계열과 거리가 멀었던 탓도 컸을 것이다. 나는 여자치곤 키가 큰 편에 속했고, 신장이 큰 것 치곤 굴곡은 없다시피 해서, 실상 그 붉은 계열들이 여성의 몸에 걸쳐졌을 때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미들(아기자기함에서 관능성까지)과 완벽히 동떨어져 있었다. 붉은 색상들만이 아니라 실은 나에겐 메이크업이나 치마, 들러붙는 원피스, 하이힐 등 대부분의 여성 아이템들이 로망이 아니라 악몽이었다. 죄수복과 가면과 고문 도구와 차이가 없었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을 쉼없이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모임에서 나는 자연히 늘 제외되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별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지루한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아도 되는걸 반겼다.
내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붉은색을 의식적으로 수용했던 시기는 딱 하나다. 연애 시절. 상대를 위해, 상대의 환상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써 ‘여자’라고 생각되는 행위와 물품들을 몸에 둘러보는 노력. 하지만 더 나아가 내밀히 감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사랑을 처음 배웠던 시기이기도 해서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진중한 경험이, 세상의 틀은 거부하면서 내 성벽은 굳건히 쌓았던 나를 완벽히 무너뜨렸던 거다.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하면 자연히 그 사랑이 내가 보는 모든 세계에 스며든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붉은색을 사랑하는 경험을 했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분홍색은 간지러웠다. 내 본질이 바뀌진 않았지만, 나는 이 때 처음으로 붉은색과 화해했고, 세상에서 혼자가 아닌 느낌을 가졌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내 옷장이며 내 모든 소지품 속에는 붉은기가 전혀 없다. 마지막 남은 빨간 장우산도 언제쯤 처분할지, 혹은 상징적으로 남겨둘지 늘 고민하는 중이다. 아, 사랑은 사라지고 마음은 다시 좁아졌구나 싶다가도, 사랑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신했고, 그 다른 형태의 사랑은 나를 애써 붉은색을 참고 두르게 두지 않고, 붉은색이 없이도 나를 어여쁘게 봐줄 수 있어서, 나는 이제 내 마음을 흐르는 대로 두어도 되는 시간이 온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풀어진 마음으로, 내 아이에겐 무슨 색이든, 무슨 장난감이든 개의치 않고 일단 던져줘본다. 아이가 스스로 저만의 색상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찾은 후에도 모든 색상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